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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열대우림, 핑크 해변 … 발리 뺨치는 롬복

중앙일보 2016.10.28 00:05 Week& 4면 지면보기
| 인도네시아 한갓진 휴양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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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복 남쪽에 있는 탄중 안.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으로 꼽힌다.


인도네시아 순다(Sunda) 열도에 속한 섬 롬복(Lombok)은 ‘작고 매운 고추’라는 뜻이다. 그래서인가. 롬복에서 먹은 음식 대부분이 다부지게 매워 입안이 얼얼했다. 맵고 진한 건 음식만이 아니었다. 풍광도 깊고 진한 여운을 남겼다. 열대우림 무성한 산이 그랬고, 짙은 쪽빛으로 빛나는 바다가 그랬다. 롬복을 방문하는 한국인은 신혼여행객이 대부분이다. 한국인이 들끓는 이웃 섬 발리와 달리 한갓진 휴식을 누리려는 이들이 주로 찾는다. 해변이나 호화 리조트에서의 달콤한 휴식도 좋지만 바다와 산을 벗삼아 에코투어를 즐기기에도 좋다.

 
 


 
린자니산 폭포 트레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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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하고 고운 롬복의 모래 해변은 망중한을 즐기기 좋다.


“발리 가보셨죠? 발리에는 롬복 없지만, 롬복엔 발리 있어요.”

지난 12일 롬복공항에서 만난 가이드 수(37)가 한국어로 이렇게 건냈다. 수를 만나기 전, 가이드북과 인터넷에서도 똑같은 설명을 봤다. 해석하면 이렇다. 롬복은 발리의 풍경과 문화를 고스란히 품고 있다. 반면 발리에서는 롬복이 자랑하는 새하얀 모래사장과 산호 바다를 찾아보기 어렵다. 롬복에는 발리 힌두교를 비롯해 이슬람 문화, 토착 신앙 등 다채로운 종교와 문화가 공존한다. 반면 발리는 힌두 문화가 지배적이다.

인도네시아를 방문하는 한국인은 연 30만 명 안팎인데 이 중 절반이 발리를 찾는다. 나머지는 대부분 수도 자카르타 방문객이다. 롬복과 발리는 35㎞ 거리에 불과한 데다 섬 크기도 비슷하다(발리는 제주도 3배, 롬복은 제주도 2.5배 크기). 롬복이 늘 발리에 비교당하는 이유다. 그러나 롬복은 구태여 발리와 비교하지 않아도 매력 넘치는 섬이다. 롬복의 상징 린자니(Rinjani·3726m)산만 봐도 그렇다.

인도네시아에서 5번째로 높은 산 린자니는 분화 활동이 활발한 활화산이다. 지난 8월 초 작은 폭발이 있었고, 지난해 11월에는 상공 3㎞까지 화산재가 분출해 롬복 공항은 물론이고 이웃 섬 발리 공항까지 폐쇄됐다. 1257년에는 산 정상부 500m가 통째로 사라진 초대형 폭발이 있었다. 이때 분출된 화산재가 몇 년간 지구 상공을 덮어 ‘작은 빙하기’가 도래했다는 기록도 있다. 지금도 롬복과 주변 섬 지하 깊은 곳에 이탈리아 폼페이처럼 화산재에 파묻힌 도시가 있을 것이라고 과학자들은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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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자니산 남쪽 자락에서 만난 원숭이.

그렇다고 린자니가 마냥 무서운 산은 아니다. 1990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린자니는 수려한 경관을 자랑한다. 열대우림과 사바나 지대, 화구호까지 온갖 풍광을 품고 있다. 1257년 폭발로 산봉우리를 잃었지만 거대한 화구호 ‘세가라 아낙(Segara Anak)’을 얻었다. 수많은 사람이 사나흘을 걸어 산 정상을 밟고 오거나 저지대 열대우림에서 가벼운 트레킹을 즐긴다. 한국에서도 트레킹 전문 여행사가 여름마다 린자니 등정 상품을 판다. 짐꾼 겸 가이드가 함께 걷고 2박 혹은 3박을 텐트에서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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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자니 산 북쪽자락에 있는 센당 길레 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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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자니 산 북쪽자락에 있는 센당 길레 폭포.

지난 13일 린자니산 북부 세나루(Senaru) 지역으로 향했다. 정상 등반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폭포를 보고 돌아오는 가벼운 트레킹에 나섰다. 국립공원 입장료 1만 루피아(약 870원)를 내고 가이드와 함께 걷기 시작했다. 입구를 지나자마자 초록빛 열대우림이 온 시야를 덮었다. 계단 약 450개를 내려가니 이층 폭포 센당 길레(Sendang Gile)가 굉음을 쏟아내고 있었다. 높이 약 50m에 달하는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사방으로 튀어 접근하기 어려웠다. 이끼와 양치식물이 뒤덮인 벽에서 물이 쏟아지는 장면은 신기했다. 거대한 초록 생명체가 입을 벌려 물을 토해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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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자니산 북쪽에 숨어 있는 티우 켈렙 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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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자니산 북쪽에 숨어 있는 티우 켈렙 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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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포 아래서 물놀이를 즐기는 여행자들.

센당 길레에서 계곡길을 따라 30분을 더 걸어 들어갔다. 이번에도 폭포가 나타났다. 병풍 모양의 기암괴석과 어우러진 티우 켈렙(Tiu Kelep) 폭포였다. 높이는 센당 길레와 비슷했지만 생김새가 독특했다. 실처럼 가는 물줄기 수십 가닥이 바위를 타고 내렸고, 그 위에서 사선으로 굵은 폭포가 쏟아졌다. 폭포 아래 웅덩이에서는 백인 여행객들이 수영복을 입고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이번에는 빼지 않았다. 풍덩,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소스라칠 정도로 차가웠다. 흥미롭게도 계곡 바닥에는 현무암 자갈이 반짝이고 있었다. 깊은 계곡 안의 돌멩이 하나마저 화산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듯했다.


 
자전거·마차만 다니는 무공해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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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해 섬 길리 트라왕안에는 동력 이동 수단이 없다. 마차나 자전거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롬복에는 독특한 해변이 많다. 화산재가 섞인 거뭇거뭇한 모래 해변이 있는가 하면, 붉은색 산호가 죽어서 변한 핑크빛 모래 해변도 있다. 그러나 전세계 여행객이 찾아가는 바다는 따로 있다. 롬복 본섬이 아니라 본섬 북서쪽에 다정하게 떠 있는 섬 3개, 즉 길리 트라왕안(Gili Trawangan)·길리 메노(Meno)·길리 에이르(Air)가 주인공이다.
 
길리는 작은 섬이라는 뜻이다. 롬복에서 길리라 하면 대부분 이 삼형제 섬을 일컫는다. 세 섬에는 없는 게 많다. 우선 자동차, 모터 사이클 같은 동력 이동수단이 없다. 가까운 거리는 걷고, 조금 멀리 가려면 자전거나 마차를 탄다. 또 담수가 없다. 식당이나 숙소 화장실에서 수도꼭지를 돌리면 짭쪼름한 물이 나온다. 지하수에도 해수가 섞여 있다. 그럼에도 여행자는 불편을 감수하며 천혜의 자연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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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리 트라왕안에서 바라본 길리 메노. 가운데 바다에 산호와 물고기, 거북이 많다.


세 섬 가운데 여행객이 가장 많은 섬은 롬복에서 가장 먼 트라왕안이다. 위성지도를 보면 백사장이 띠처럼 섬을 두르고 있다. 해수욕장이 따로 없을 정도로 어디에서든 늘어지게 쉬거나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 면적은 15㎢로, 여의도보다 약 5배 크다. 이 섬이 백인 여행자 사이에서 유명해진 데는 불편한 사실이 숨어 있다. 80년대에 아무 제지 없이 마약을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특히 환각 성분이 있는 마술버섯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최근에는 그나마 단속 강화로 거래가 수그러들었다고 한다.

지난 14일 롬복 본섬 북서부에 있는 방살(Bangsal) 항구에서 스피드보트를 탔다. 보트는 15분 만에 트라왕안에 도착했다. 바다 쪽에는 알록달록한 선베드가 깔린 카페가 줄지어 있었고,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안쪽에는 숙소와 다이빙 숍이 모여 있었다. 길을 점령한 건 마차와 자전거였다. 거리를 활보하는 배낭여행객 대부분은 유럽이나 호주에서 온 백인이었다. 항구 근처 카페에서 수박주스를 마시며 현지인에게 물고기가 많은 곳을 물었더니 무심하게 손가락으로 바다를 가리켰다.

“저기 사람들 모여 있는 곳 보이죠? 거기까지만 가면 물고기와 거북이가 아주 많아요.” 굳이 배를 타고나가는 스노클링 프로그램을 이용할 필요도 없단다. 이 말만 믿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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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리 트라왕안, 길리 메노 앞바다에는 바다거북이 많이 산다. 스노클링을 하다가 만난 초록거북.


얕은 바다에는 죽은 산호가 하얗게 깔려 있었다. 50m 정도를 헤엄쳐 나가니 알록달록한 산호가 보이기 시작했고, 이어 화려한 외모의 열대어가 떼지어 유영하는 모습이 보였다. 거북은 좀체 보이지 않았다. 낭떠러지처럼 갑자기 바다가 깊어지는 지점까지 가서야 수면 위로 숨을 쉬러 올라온 초록거북 한 마리가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열심히 팔을 휘저었다. 근처에 어른 상반신 만한 거북 4마리가 더 있었다. 거북들과 어울려 한참을 노느라 숨이 가빠오는 것도, 바로 옆에 시커먼 심해가 있는 것도 잊어버렸다.

배를 타고 섬을 빠져나왔다. 숙소가 있는 셍기기(Senggigi) 해변으로 가는 길, 낙조가 서쪽 바다를 붉게 물들였다. 낮에는 보이지 않았던 발리 최고봉 아궁산(Agung·3031m)과 작은 산들이 희미하게 형상을 드러냈다. 가이드가 틈을 놓치지 않는다. “발리에서는 아궁산이 섬 동쪽에 우뚝 솟아 있어서 롬복이 안 보이지만 롬복에서는 발리가 잘 보입니다.”

롬복 남쪽에도 근사한 해변이 많았다. 특히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으로 꼽히는 탄중 안(Tanjung Aan)이 인상적이었다. 낮은 언덕에 올라서니 절벽에 둘러싸인 원형의 만(탄중은 만 혹은 곶이라는 뜻이다)이 내려다보였다. 여태 롬복에서 본 모든 바다가 기억나지 않을 만큼 비취색이 강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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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복 서쪽 해변에서 바라본 해질녘 발리 섬. 발리 최고봉 아궁산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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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자니산 정상 화구호를 본따 만든 나르마다 힌두사원. 롬복 중심가 마타람에서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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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복 남부에는 전통생활을 유지하며 사는 사삭족 마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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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복에서 꼭 먹어봐야 할 ‘사테’. 다른 지역 사태보다 매운 맛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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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전통 음식 ‘박소’. 갈비탕에 어묵, 두부가 들어 있다고 보면 된다.


 
여행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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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셍기기 해변에 새롭게 개장한 카타마란 리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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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마란 리조트는 풀빌라를 갖추고 있어 허니문에 제격이다.

롬복은 6~9월이 건기, 11~4월이 우기다. 우기 최고 기온은 평균 31도이고, 오후에 소나기가 지나가는 정도다. 화폐는 루피아(1만 루피아 약 870원), 전기는 한국과 같은 220V를 쓴다. 한국에서 롬복으로 가는 직항편은 없다. 보통 자카르타를 경유한다. 발리에서 국내선 항공편을 타거나 스피드보트를 타고 롬복으로 가는 방법도 있다. 가루다인도네시아항공(garuda-indonesia.com)이 인천~자카르타 노선을 매일, 인천~발리 노선을 주 6회 운항한다. 인천~자카르타·발리 7시간, 자카르타~롬복 2시간. 롬복에서는 셍기기 해변에 숙소를 잡는 게 좋다. 올해 셍기기 해변에 카타마란 리조트(katamaranresort.com)가 개장했다. 전용 해변과 넓은 수영장이 있어 가족 여행객이 이용하기 좋고, 풀빌라 객실도 있어 신혼여행에도 제격이다.

글·사진=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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