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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충전소] 아찔한 빗속 추격전, 몰려오는 좀비떼 “CG가 주인공”

중앙일보 2016.10.26 01:20 종합 20면 지면보기
진화하는 충무로 특수효과
“와, 그 장면 죽이더라.”

카 체이싱 새 시대 연 ‘아수라’
석달간 2억 들여 카 액션장치 제작

디지털 좀비 만든 ‘부산행’
300개 LED 패널로 KTX 창밖 재현

100% CG 호랑이 만든 ‘대호’
털 한땀 한땀 심고 표정까지 만들어

‘명량’ 물 CG 기술 중국서 대박
함께 만든 ‘미인어’ 5000억원 수익

요즘 영화의 성패는 한 장면으로 갈린다. 꼭 극장 스크린으로 봐야 하는 영화와 이동 중 폰으로 봐도 무방한 영화도 이 한두 장면으로 나뉜다. 관객들의 치솟는 눈높이 덕에 허술한 컴퓨터그래픽(Computer Graphics·CG)은 비웃음을 사기 십상. 특히 블록버스터에서는 스타 배우나 스토리 못잖게 시각적 특수효과(Visual Effects·VFX)가 진짜 주인공이란 이야기가 나온다. 최근 국내 CG의 수준이 높아지면서 ‘CG 한류’란 말도 나오고 있다. 영화 속 눈길을 사로잡는 그 한 방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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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수라’의 카 체이싱 장면. 할리우드에서 쓰는 김블 장치 위에 차량을 올려 찍고 창에 빗방울 CG를 추가했다. [사진 포스크리에이티브파티]

◆ ‘아수라’=지난달 개봉한 영화 ‘아수라’(김성수 감독). 지옥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악인들의 혈투를 잔인하게 그린 만큼 작품에 대한 호불호는 갈렸지만 자동차 추격신만큼은 압권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총을 빼앗긴 경찰 한도경(정우성)이 빗속을 뚫고 조선족 일당의 차를 쫓는 ‘분노의 질주’ 장면은 한국 영화에서 본 적이 없는 구도와 장면 전환으로 압도적 몰입감을 선사했다.

비결은 3개월 동안 준비한 세트 플레이와 정교한 CG에 있었다. 특수효과업체 데몰리션은 국내에선 최초로 ‘카 액션 김블 장치’를 만드는 데 도전했다. 카메라가 상하 혹은 좌우로만 움직이는 차 한 대에 붙던 기존의 방식 대신 사방으로 움직이는 차 두 대를 동시에 촬영해 추격신의 긴박함을 더하는 장치다. VFX 업체 포스크리에이티브파티(4th Creative Party)는 3차원(3D) 프로그램으로 영상 콘티를 만들고, 살수차를 불러 찍은 수중 추격신을 보완하기 위해 와이퍼 위로 흐르는 촘촘한 빗방울까지 CG로 구현했다.

여기에 서울액션스쿨의 카 스턴트팀 소속인 권귀덕이 직접 조선족 ‘귀덕’으로 출연, 대역 없이 정우성과 합을 맞추면서 액션이 한층 살아났다. 대역을 쓰면 일일이 잘라 이어 붙여야 하는 장면들이 클로즈업과 줌 아웃으로 매끄럽게 연결되면서 속도감과 긴박감이 더해졌다.

정도안 데몰리션 대표는 “카 액션이 많은 할리우드의 경우 김블 장치를 자체 제작하는 게 일반화돼 있지만 국내에서 짧은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2억원의 비용을 투자한 것은 감독과 제작사의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며 “이 장비를 활용해 봉준호 감독의 ‘옥자’를 촬영했고 향후 자동 프로그래밍하는 방안을 연구 중”이라고 설명했다.
 
◆ ‘부산행’=‘아수라’가 특수효과와 VFX 시너지로 새로운 카 체이싱 시대를 열었다면 지난여름 극장가를 강타한 ‘부산행’(연상호 감독)은 인상적인 ‘좀비 떼샷’을 남겼다. 테크노댄스를 추는 것처럼 현란하게 움직이던 좀비들이 줄줄이 석우(공유)를 쫓아 열차에 매달리는 장면은 박재인 바디무브먼트컴포저와 VFX 업체 디지털아이디어의 합작품이다.

안무가로 활동하던 박재인은 고개와 발목 등을 인간과 반대 순서로 꺾는 독특한 움직임을 고안해 냈고, 디지털아이디어는 인공지능(AI) 룰에 따라 작동하는 ‘디지털 휴먼’을 만들어 덧입힘으로써 화면을 가득 채웠다. 정황수 VFX 수퍼바이저는 “경기장처럼 한 공간에 가만히 앉아 있는 군중을 표현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벽이나 장애물에 부딪히면 자동으로 방향을 틀어 움직이게 하는 건 새로운 기술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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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부산행’에서 주인공들과 대치하던 좀비들이 서로 밀치다 대전역 출입문이 무너지는 장면. 좀비들이 유리문을 뚫고 나오는 장면을 따로 찍고 밑에 깔린 더미(인체모형)를 합성했다. 좀비로 분한 배우들 외에 ‘디지털 좀비’를 추가했다. [사진 디지털아이디어]

‘부산행’에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시속 300㎞로 달리는 KTX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다. 국내 최초로 후면 영사 기술을 도입해 창문 바깥에 300개의 LED 패널을 설치하고 미리 촬영해 놓은 차창 밖 영상을 틀었다. 배우들이 연기에 몰입할 수 있을뿐더러 자연스러운 조명 효과를 연출해 냈다. 창문마다 블루 스크린을 설치해 놓고 촬영 이후 CG 작업을 통해 일일이 배경을 그려 넣었던 예전에 비해 기술력이 돋보인 사례다.

디지털아이디어가 떼샷에 강해진 것은 그들이 걸어온 필모그래피와도 무관하지 않다. 세계 챔피언에 도전하는 권투선수의 이야기를 그린 ‘챔피언’(2002·곽경택 감독)에서 군중 소스를 합성해 대규모 군중샷을 연출하기 시작해 대규모 전쟁영화 ‘태극기 휘날리며’(2003·강제규 감독)와 재난영화 ‘타워’(2012·김지훈 감독) 등을 거치면서 노하우가 쌓인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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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대호’에 등장한 100% CG 호랑이. 호랑이 대역을 맡은 배우의 움직임 위로 호랑이 그래픽을 합성해 덧입혔다. [사진 포스크리에이티브파티]

◆ ‘대호’=지난해 12월 개봉한 ‘대호’(박훈정 감독)는 100% CG로 호랑이를 만들어 내면서 크리에이처 기술력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부산 삼정 더 파크에 있던 시베리아 호랑이를 모델 삼아 카메라와 비디오로 촬영 후 애꾸눈부터 항문까지 꼼꼼한 모델링을 거쳤다. 포스크리에이티브파티의 조용석 VFX 수퍼바이저는 “형태가 갖춰지면 털을 심는 텍스처 작업과 뼈를 심는 리깅 작업 등 11가지 공정을 거쳤다”며 “눈 내리는 겨울에 피가 튀기는 장면이 많아 퍼(털) 시뮬레이션에 특히 신경 썼다”고 설명했다.

이 영화의 백미는 조선의 명포수 천만덕(최민식)과 대호가 대치하는 장면이다. 적인 듯 벗인 듯 만덕과 교감하는 대호를 보고 있노라면 그가 호랑이인지 사람인지 헷갈릴 정도다. 조 수퍼바이저는 “지리산의 산군으로 군림하는 대호는 그에 걸맞은 위용과 무게감이 필요해 최민식 배우의 얼굴을 참고했다”고 밝혔다. 여기에 모션캡처 역할로 투입된 곽진석 배우의 움직임이 더해져 “‘김대호’를 신인상과 기술상 후보에 올려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실감 나는 동물 배우가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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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명량’의 해상 전투 장면. 땅 위에서 촬영을 한 뒤 회오리치는 파도 그래픽을 더했다. 자체 개발한 프로그램을 사용했다. [사진 매크로그래프]

◆ ‘명량’=물은 털과 함께 CG 중에서도 정교함이 요구되는 고난이도 작업이다. 물의 표면과 내부의 질감이 다를뿐더러 물이 부딪히며 포말이 생기거나 배가 지나가면 굴곡이 생기는 등 변화무쌍하게 움직이는 탓이다. 2014년 개봉해 역대 최다 관객 수(1761만 명)를 기록한 ‘명량’(김한민 감독)은 특수효과사에서도 한 획을 그은 작품이다. 영화에는 조선배 12척과 왜선 330척이 등장하지만 실제 만들어진 배는 8척. 잔잔한 바다에서 피와 물을 만들어 가며 피 튀기는 해전을 찍었다.

매크로그래프의 강태균 VFX 수퍼바이저는 “현재 상용되는 FX 툴 ‘후디니’와 자체 개발한 프로그램 ‘파랑’을 병행 사용해 효율성을 극대화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이들이 참여한 ‘연평해전’(2015·김학순 감독)이 600만 관객을 돌파하고, 중국 영화 ‘미인어’(2016·저우싱츠(周星馳) 감독)가 중국 박스오피스 사상 최고 수익 30억 위안(약 5014억원)을 달성하면서 ‘물은 매크로그래프’라는 공식이 생겨났다. 강 수퍼바이저는 “‘명량’이 자연의 움직임을 표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미인어’는 판타지 요소가 강해 인어 꼬리로 바다를 내리치면 물이 치솟아 오르는 등 상상력이 많이 가미됐다”며 “물 CG 하나에서도 VFX의 발전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SFX와 VXF
특수효과(Special Effects·SFX)는 특수분장과 미니어처 등을 활용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장면 중 실제 촬영할 수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모든 기법을 의미한다. 시각적 특수효과(Visual Effects·VFX)는 영상제작 기법 중 컴퓨터 그래픽(Computer Graphics·CG)에 바탕을 둔 모든 디지털 기법을 뜻한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영상편집=최재선 영상제공=포스크리에이티브파티 choi.jae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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