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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빽스트리트저널] ⑮ 왜 힐러리가 이기는가

중앙일보 2016.10.25 00:02
 안녕하세요. 빽스트리트저널입니다. 미국 대선(11월 8일)이 며칠 안 남았습니다.
 
 200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교수가 최근 뉴욕타임스 고정칼럼에 왜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당선돼야 하는지에 대한 글을 써서 소개합니다.//
 
 “힐러리 클린턴은 최악의 후보다.” 이 끝모를 선거전이 시작했을 때부터 평론가들이 해 온 말이다. 2000년 대선 때의 앨 고어 이래, 정직하지 못하다는 주장(통상 근거가 없는 것으로 드러나지만)부터 개인 스타일의 문제까지 언론의 비아냥을 이렇게 많이 들은 후보도 없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힐러리는 민주당 경선을 비교적 쉽게 이겼고, 세 차례의 토론에서 상대를 KO시킨 지금은 11월 대선에서 큰 표차로 이길 가능성이 높은 유력한 인물로 떠올랐다. 어떻게 이게 가능한가.
 
 평론가들의 의견은 ‘힐러리는 그냥 운이 좋았다’는 쪽으로 몰린다. 공화당이 트럼프를 후보로 내놓지 않았다면 힐러리가 크게 지고 있을 거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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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나는 다른 의견이다. 힐러리가 이기고 있는 것은 어쩌면 그가 근본적인 정치적 강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평론가들이 보지 못하는 강점들 말이다.
 
 우선, 공화당이 선택할 수 있었던 그 다른, 더 강한 후보는 누구였나? 트럼프가 공화당 경선에서 이긴 건 그가 공화당 지지기반이 원하는 것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지난 수십년간 공화당 선거 승리의 동력이었던 인종 적대주의 쪽으로 물꼬를 튼 것이다. 트럼프가 다른 점은 그의 경쟁자들이 은근히 암시하던 걸 큰 소리로 대놓고 말했다는 것 뿐이다.
 
 그리고 공화당의 주류 후보들은 트럼프보다 훨씬 더 트럼프 같았다. 많은 사람들이 경선 토론 당시 마르코 루비오의 처참한 퍼포먼스를 기억할 것이다. 그는 ‘이 픽션을 걷어버리자’는 말을 고장난 녹음기처럼 계속 반복했다. 사람들이 잘 모르지만 그 말은 오바마 대통령이 일부러 미국을 약하게 만들었다는 정신나간 음모론을 강조한 것이다. 이게 트럼프의 막말보다 뭐가 나은가. 루비오가 자기 말을 스스로 믿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몰라도. 하지만 바로 그 진정성의 결여가 루비오의 약점이었다. 
 
 사실 이건 공화당 주류의 전반적인 문제다. 과연 그들 중에 얼마가 감세(減稅)가 만병통치약이라고 믿는가. 기후변화가 거대한 거짓말이고, ‘이슬람 테러리즘’이라고 말하는 것이 IS를 무찌를 수 있는 방책이라고 생각하는가. 이런 것들을 믿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그 무리에 들어가려면 필요한 조건이다.
 
 루비오에 대해 한 마디 더 하자면, 트럼프의 소아적인 공세에 무너진 루비오가 어떻게 벵가지 청문회 11시간 동안 냉정함을 잃지 않고 오히려 청문위원들을 바보처럼 보이게 만든 클린턴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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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평론가들이 정치적 소질을 칭찬할 때 그들이 염두에 두는 것은 특정 후보의 능력이 아주 협소한 전형(典型)에 부합하는지 여부다. 영웅적인 리더, 등 두드리며 맥주를 함께 마실 수 있는 평범한 사람, 뛰어난 웅변가 등등. 힐러리는 이 어떤 카테고리에도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너무 정책 중심적이고, 여성적인 것은 물론이며, 평범한 사람이라고 하기엔 너무 말을 못하고 준비된 발언들은 소구력이 떨어진다.
 
 하지만 수백만 시청자가 지켜본 올 가을 대선후보 토론에서 그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침착했고, 거의 불가사의할 정도로 냉정했고, 철저히 준비됐고, 정책 사안에 대한 지식도 손색이 없었다. 치밀한 전략에 의해 움직이기도 했다. 토론 승리의 여파는 토론 당일보다 며칠이 지나고 의미를 곱씹어 본 뒤 더 크게 다가왔다.
 
 그리고 힐러리가 토론에서 보여준 강점들은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데 있어 긴요한 강점들이다. 나는 이 말을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미국의 일반 국민들도 이같은 점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당연시 여겨지는 그의 경쟁력과 스트레스 받는 상황에서 냉정함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 모여 스타로서의 퀄리티를 만들어낸다는 것. 그것이 일반적인 의미의 카리스마는 아니라 할 지라도 말이다.
 
 힐러리가 이번 대선과정에서 보여준 것 중에 공화당 주류가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것도 있다. 힐러리는 그가 내세운 정책현안들에 대해 진정으로 애정이 있다. 그리고 본인이 제시한 해법을 믿는다. 
 
 분위기만 따라가자면 우리는 힐러리를 야망에 가득 차 있고 계산적인 사람으로 봐야 한다. 그리고 거시경제 등 특정 사안에 있어서는 때때로 냉혈한처럼 비치기도 한다. 하지만 힐러리가 여성인권이나 인종차별, 가족지원 등에 대해 얘기할 때는 그의 확신과 열정이 느껴진다. 그는 다른 당의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진정성이 있다.
 
 따라서 이제 힐러리가 운이 좋아서 오늘날 그 자리에 있다고 하는 픽션이야말로 걷어버리자. 그는 엄청난 사람이고 항상 그래왔다. 

 박성우 기자 bla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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