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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에서 오늘을 읽다] 87년 전 오늘, '검은 목요일'을 아십니까

중앙일보 2016.10.24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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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10월 29일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앞 재무성 건물에 몰려든 군중이 이날 주식거래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중앙포토]

1980년대 젊은 중국인 남녀의 낯선 홍콩살이를 그린 1996년 영화 ‘첨밀밀(甛蜜蜜)’에서 여자 주인공 장만옥(이요 역)은 현금지급기에서 통장 잔고를 확인한다. 열심히 일해 모은 3만 홍콩달러. 장만옥은 연인인 여명(소군 역)과 함께 기쁨을 나눈다. 장만옥은 돈을 불리기 위해 대부분의 돈을 주식에 투자한다. 홍콩증시가 오를 것으로 생각했다.

29년 전 10월엔 블랙 먼데이…아직도 '검은 10월'이 불안한 이유

그러나 1987년 10월 미국에서 터진 ‘블랙먼데이(Black Monday)’가 홍콩을 덮쳤다. 홍콩증시가 폭락하며 장만옥의 통장에는 불과 89홍콩달러밖에 남지 않게 됐다. 미국에서 발생한 증시 위기가 바다 건너 평범한 청춘들에게까지 악영향을 미쳤다고 영화는 묘사한다.

블랙먼데이로 불리는 1987년 10월19일에 미국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하루 만에 508포인트나 폭락했다. 시가총액의 약 5분의 1(22.6%)이 허공으로 사라졌다. 이날의 충격은 홍콩뿐만 아니라 이튿날 도쿄·런던·프랑크푸르트·암스테르담·밀라노·토론토 등 전세계 증시에 악영향을 미쳤다.

당시 주식시장은 눈치싸움이 한창이었다. 1982년 8월 800대였던 미 증시는 5년간이나 서머랠리를 이어가며 1987년 여름 2700선에 도달했다. 도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자유방임주의에 따른 규제 완화 흐름에 투기성 자금이 주식시장에 유입됐다. 증시의 과열 양상. 이 때문에 하락의 불씨만 피어 오르면 투자를 거두겠다는 기류가 팽배했다. 조정의 시기가 왔음을 직감한 투자자들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때마침 미국의 재정·무역수지 적자 누적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1987년 8월 미국의 무역적자 규모는 시장의 예상을 웃도는 157억 달러. 연간 1700억 달러 돌파가 확실해 보였다. 인플레이션 우려 속에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이 점쳐졌다. 1987년 2월 미국·영국·서독·일본·프랑스 등 주요 5개국(G5)이 달러화를 절상하는 내용의 ‘루브르 합의’를 이끌어내자 수출 부진의 우려도 제기됐다. 투자심리는 냉각됐다. 여기에 미국이 이란을 타격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위기가 확산한 점도 증시 하락을 부채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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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증시 ‘블랙 먼데이(Black Monday)’ 소식을 전한 1987년 10월 20일자 중앙일보 6면 기사. [중앙일보 DB]

‘주식의 신’이라 불리는 앙드레 코스톨라니는 『돈, 뜨겁게 사랑하고 차갑게 다루어라』에서 “어느 주식 브로커와 함께 있었는데, 흥분한 고객들로부터 전화가 쉬지 않고 울렸다. 주문은 오직 한 가지였다. 몽땅 팔아라!”라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당시 블랙 먼데이의 원인 규명에 나선 브래디 특별조사위원회는 복합적인 대내외 변수와 주가 하락 시 주식을 팔도록 설계된 프로그램 매도 물량이 맞물려 증시가 폭락했다고 보고했다.

주가가 하루에 2~3%씩 등락하는 등 여진은 두 달여나 지속됐다. 증시의 급속한 과열이나 냉각을 막기 위한 서킷브레이커·사이드카도 이 때 처음 도입됐다. 그럼에도 증시는 춤을 췄다. 당시 골드먼삭스의 이코노미스트였던 윌리엄 더들리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실직을 걱정했다. 어디론가 떠날 생각에 가죽재킷을 샀다”고 회고했다. 파티가 성대했던 만큼 후유증도 깊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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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첨밀밀`에는 블랙먼데이의 충격을 묘사한 장면이 등장한다. [중앙포토]

블랙 먼데이처럼 통제받지 않은 월가의 탐욕은 경제적 충격으로 이어진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도 투자은행(IB)이 과도한 레버리지를 통해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에 투자했다가 발생했다. 신용부도스와프(CDS)와 같은 리스크 헤지 상품이 거품의 촉매제가 됐다.

미국 증시의 10월 위기는 87년 전인 1929년에도 발생했다. 증시의 이상 과열과 갑작스런 투자심리의 냉각, 당국의 오판은 미국을 대공황의 터널로 인도했다. 당시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을 치른 유럽의 전후 복구 사업을 지원하면서 호황을 누렸다. 공업생산은 10년 사이 2배 가까이 늘었고, 자동차도 대중화됐다. 주가의 10분의 1만으로도 주식을 살 수 있는 신용거래제도가 도입돼 주식시장은 투기장으로 변했다. 1929년 여름 주가는 연초대비 24.15%나 급등했다. 당시 미국의 금융 전문가들은 “이전의 모든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신시대”라는 평가도 내놨다.

증시가 한창 잘나가던 10월 24일 시세차익을 노린 ‘팔자’ 주문이 갑작스레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상한 낌새를 느낀 투자자들이 매도에 동참하자 주식시장은 전날 대비 20% 이상 급락했다. 대공황의 출발점이 된 ‘검은 목요일(Black Thursday)’이었다. 월가의 붕괴는 1932년 7월까지 이어지며 상장 종목의 시가총액은 89%나 감소했다. 대규모 뱅크런(bank run·대규모 예금인출사태) 사태가 벌어지며 6000여 개의 은행이 파산했다. 돈을 잃은 투자자들의 자살도 속출했다.

밀턴 프리드먼은 『미국화폐사』에서 “통화량이 대공황을 거치며 30%나 줄어들며 은행의 돈줄이 마르고 기업들은 줄도산했다”며 “통화량의 대수축이 대공황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의 국내총생산(GDP)는 1929년 1030억 달러에서 1933년 560억 달러로 반토막 났다. 미국의 공업생산은 44% 감소하며 1900년대 초 수준으로 회귀했다. 경제적 어려움은 미국의 보호무역조치와 주변국들의 보복관세, 경제적 어려움 심화를 가져왔다. 이어진 민족주의와 파시즘 확산은 제2차 세계대전의 원인이 됐다.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대공황의 근본적인 원인을 유효수요 부족에서 찾았다. 공급과잉을 해소할 소비시장을 확충해야 하며, 이를 위해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 고용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 골자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은 ‘뉴딜정책’으로 케인스의 이론을 수용하며 대공황 탈출의 단초를 마련했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군수산업이 왕성하게 발전하면서 대공황의 터널을 벗어날 수 있었다.

과거 두 차례의 증시 대폭락은 월가에 깊은 트라우마를 남겼다. 2016년 지금도 증시 대폭락을 걱정하는 이들이 있다. 증시 버블과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기조, 보호무역 대두, 쌍둥이 적자 폭 확대 등이 1929·1987년 상황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HSBC는 이달 중순 투자자 보고서에서 “최근 증시가 1987년의 블랙먼데이 때와 유사하다”며 “주식시장에서 급매도가 펼쳐질 가능성이 임박했다”고 경고했다. 씨티그룹도 1987년과 올해의 주가 흐름이 매우 유사하다는 내용의 분석 보고서를 발표했다.

실제 2013년 초 1만3412.55였던 다우지수는 지난 18일 기준 1만8161.94까지 치솟으며 역대 최고 수준을 달리고 있다. 4조5000억 달러(약 5104조3500억원) 규모의 양적완화(QE)와 초저금리가 만든 과잉 유동성이 주식시장을 떠받치고 있다. 미국 역대 증시의 주가수익비율(PER·주가를 주당 순이익으로 나눈 값)을 살펴보면 2000년 정보기술(IT) 버블 때가 가장 높고, 두 번째가 대공황 직전, 세 번째가 현재다. PER가 낮으면 주가가 과소평가됐고, 높으면 과대평가됐다는 뜻이다. 미국 증시 거품을 우려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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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6년 다우지수 추이 [자료=블룸버그]

이런 가운데 연준은 12월 기준금리 추가 인상을 예고하는 등 출구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칵테일 파티가 한창 달아오를 때 펀치보울(punch bowl·칵테일용 큰 그릇)을 치워버리기’라는 중앙은행의 전통적 역할에 충실하겠다는 것이다. 기준금리 인상은 과열된 증시를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지만 급락장을 부르기도 한다. 연준은 1937년 경기가 대공황의 늪에서 빠져 나왔다고 판단해 지급준비율을 세 차례 연속 올렸다가 증시 폭락 등 대혼란을 자초한 바 있다.

다만 요즘 미국 경제는 2%대 잠재 성장률과 5%대 실업률을 유지하고 있어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시장의 심리적 충격이 덜하다는 게 중론이다. 오히려 지난해 12월 기준금리를 9년 반 만에 인상하자 다우지수는 1만8000선으로 뛰었다. 시장은 금리 인상을 불확실성 제거와 경기회복의 시그널로 이해하고 있다는 뜻이다.

현재의 버블은 경기 과열이 아닌, 위기 극복 과정에서 생긴 것이라는 데 공감대가 모여 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자율이 미국 증시의 주요 변수지만 기준금리를 인상해도 그 여파나 충격이 클 것 같지는 않다”고 내다봤다.

보호무역주의도 향후 증시를 불안하게 보는 논거로 제시된다. 대공황 당시 미 의회는 자국 제품의 경쟁력을 지키기 위해 2만여 개 수입품에 20%의 관세를 매기는 ‘스무트홀리법’을 통과시켰다. 이 덕에 미국의 수입액은 1929년 13억3400만 달러에서 3억9000만 달러로 대폭 감소했다. 그러나 영국·프랑스·독일·캐나다가 보복관세로 맞대응하면서 수출액 역시 같은 기간 23억4100만 달러에서 7억8400만 달러로 급감했다. 수출액 감소는 일자리 증가로 이어지지 않았다. 1930년 9%대였던 실업률은 1932년 25%로 뛰었다. 기업 실적이 나빠지며 증시는 1930~32년 75.6% 폭락했다. 때문에 현재 미국 대선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등 세계적으로 일고 있는 보호무역 움직임이 현실화될 경우 그 파장은 작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미국 기업은 세계화의 토양 속에서 성장해왔기 때문에 보호무역 조치의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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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서 다우지수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결정의 여파를 뚫고 1만8347.67포인트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자 한 거래인이 전광판을 보며 한숨을 돌리고 있다. [블룸버그]

하지만 중국 등 제 3세계의 경제 성장으로 교역이 다변화된 만큼 미국이 세계 경제를 공멸로 이끌 수 있는 보호무역 조치를 단행할 수 있겠느냐는 반론이 제기된다. 한국투자증권은 보고서에서 “대공황 시절처럼 자유무역 기조가 퇴조할 수 있다는 우려와 달리 최근 교역은 연평균 3%(물량 기준)씩 증가하고 있다”며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이 활발해짐에 따라 과거와 같은 극단적인 보호무역 기조 확산을 우려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고 내다봤다.

미국의 쌍둥이(재정·경상수지) 적자 심화에 대한 문제제기도 있지만 1929·1987년과는 다르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축통화로서 미 달러화의 위상이 공고해지면서 글로벌 자금이 계속해서 유입되고 있어서다. 허인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은 국가·기업·가계의 부채가 고르게 퍼져 있어 당장 부채가 시스템 리스크로 전이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며 “미 국채에 대한 높은 수요가 원활하게 차환 발행으로 이어지고 있어 재정·경상수지 적자의 성격이 나빠지지는 않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경제에 악몽을 선사한 ‘검은 10월’의 낙인은 아직까지 남아있다. 2016년 10월은 1929년과 1987년의 10월과 다르면서도 묘하게 닮아있다. 세계 경제에 불확실성의 계절이 오고 있다.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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