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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헌법, 그동안 어떻게 바뀌었나

중앙일보 2016.10.24 11:20
대한민국의 헌법은 1948년 7월 17일 제헌 헌법이 생긴 이후 9차례의 개헌을 거쳤다. 제헌 헌법은 1948년 대통령 중심제와 대통령을 국회에서 간선으로 선출하는 것이 골자였다.

1차 개헌은 한국전쟁 중인 1952년 7월 진행됐다. 당시 정부는 부산으로 피난 와 있는 상태였다. 1950년 5월 총선 결과 야당의 승리로 재선이 어려워진 이승만 대통령이 부산 일대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기존 단원제인 국회를 상하원 양원으로 바꾸고 대통령을 직선제로 바꾸는 방식의 개헌안이었다. 경찰과 군대가 국회의사당을 포위한 가운데 기립 방식으로 표결돼 통과됐다. 대통령 직선제의 정부안과 내각 책임제의 국회안을 발췌, 혼합하여 만들었다고 해서 이른바 ‘발췌 개헌’이라고 불린다.

1954년 2차 개헌은 흔히 ‘사사오입’ 개헌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승만 대통령이 장기 집권을 위해 대통령직 연임제한을 초대 대통령에 한해 철폐한다는 내용이다. 그 외에 주요 내용으로는 ▶자유경제체제 도입 ▶국민투표제 ▶순수한 대통령제 등이 있다. 이 개헌안은 당시 재적 203명 중 135명 찬성, 60명 반대, 7명 기권이었다. 개헌 정족수인 136명에 1명이 미달돼 부결이 선언됐다. 하지만 당시 집권 자유당은 “국회의원 재적 203명의 3분의2는 135.3인데 0.3이라는 소수점 숫자는 1인의 인간이 아니라 사사오입하면 135명이 된다”고 주장을 해 이틀 뒤 부결대신 가결안을 선포한다.

3차 개헌은 4.19 혁명 직후인 1960년 6월 15일 공포됐다. 내각제와 대통령의 국회 간선선출이 골자다. 3차 개헌은 기본권의 확대, 언론ㆍ출판ㆍ집회의 자유에 대한 허가ㆍ검열제 금지, 복수정당제 보장, 경찰의 중립성 규정 등도 정했다. 이 때에는 법관선거인단에 의한 법관 선출을 명문화하기도 했으나, 5.16 군사 쿠데타 이후 폐지됐다.

4차 개헌은 이승만 대통령이 퇴진하게 된 3.15 부정선거 때문에 생겼다. ‘소급입법개헌’이라 불리는 1960년 11월 29일 4차 개헌은 특별법을 만들고 혁명재판소 및 혁명검찰부가 설치돼 3.15 부정선거 관련자 및 부정축재자들을 소급해서 처벌할 수 있도록 한 헌법 개정이다. 이는 당시 ‘정부통령 선거법’이 폐지돼 3.15 부정선거 관련자를 처벌할 법 규정이 없었기 때문이다. 4차 개헌은 또한 이듬해 5.16 군사 쿠데타로 그 효과가 반감됐다.

5차 개헌은 1962년 12월 진행됐다. 대통령중심제와 국회 단원제, 헌법재판소 폐지 등이 주요 내용이다. 1961년 5.16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민정 이양 후 대통령 선출에 방향이 맞춰져 있다. 이번 개헌으로 소선거구제, 법원의 위헌법률 심사권, 헌법개정에 대한 국민투표제 채택 등이 생겨났다.

6차 개헌은 흔히 ‘삼선 개헌’이라고 불린다. 1969년 박정희 대통령의 3선이 가능하도록 헌법을 개정한 것이다. 당시 대통령의 임기는 4년이고, 한 차례 중임이 가능했다. 하지만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개헌 문제를 통해서, 나와 이 정부에 대한 신임을 묻는다“면서 개헌 특별 담화문을 발표하고, 영빈관에서 의원총회를 열어 개헌안을 밀어붙였다.

1972년 7차 개헌은 유신헌법이라는 말이 더 잘 알려져 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유신헌법을 만들고,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사실상 영구집권을 향한 포석이었다. 대통령 선출은 간선으로 하고, 국회의 권한은 대폭 줄어들었다. 유신헌법으로 이른바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헌법기관도 생겼다. 의장은 대통령이 맡았고 국민의 직접선거로 선출된 2000~5000명 규모의 헌법기관이다. 설치 목적과 상관없이 대통령 선출을 위한 간선제 기구로 오용됐다.

8차 개헌은 1980년 10월 생겨났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의 권총에 맞아 서거한 이후다. 4.19의거와 5.16 이념을 계승한다는 내용이 삭제돼고 제5공화국 출범이 명기됐다. 하지만 이 개헌은 전두환 신군부의 집권을 위한 포석이기도 했다. 전두환 정권은 박정희 정부에서의 통일주체국민회의를 폐지하는 대신, 과도 입법기관인 국가보위입법회의를 설치했다.

9차 개헌은 직선제 개헌이다. 1987년 이른바 6.29 선언 이후 국민투표를 거쳐 직선제를 골자로 한 개헌이 진행됐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4.19 민주이념 계승이 다시 명기돼고, 국회의 국정감사권이 부활했다. 대통령 직선제 및 5년 단임제 규정도 이때 생겼다.

◇역대 정권마다 나왔던 개헌론=개헌이 진행되지 않은 기간에도 개헌론(論)은 꾸준히 제기됐다. 1997년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와 김종필 자유민주연합 대표의 이른바 DJP 연합으로 대선을 승리한 당시 정부는 김대중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내각제 개헌 논의를 진행했으나 결국 개헌에는 실패했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 역시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 주기를 맞춰서 선거에 과도한 논의가 집중되는 것을 줄이는 ‘원포인트 개헌’을 제안했으나 실행은 되지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 임기 때에도 일부 참모들 사이에서 개헌 논의가 있었다.

이현택 기자 mdf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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