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9년 미국 뉴욕의 한 투자자가 ‘주식으로 돈을 모두 잃어 현금이 필요하다’며 차를 100달러에 팔겠다고 나섰다.(위 사진) 87년 10월 미국 투자자들이 주가 폭락을 보도한 신문을 읽고 있다.(아래 사진) [중앙포토]
1929년 10월 24일 ‘검은 목요일’
1차대전 뒤 이어진 10년 호황 끝
미 증시 20% 이상 폭락, 대공황 시작
1987년 10월 19일 블랙 먼데이
5년간 주가 버블, 재정적자에 터져
시총 5분의 1 하루 만에 사라져
HSBC·씨티 ‘2016년 10월도 불안’
다우지수 최고점, 쌍둥이 적자 비슷
“교역 다변화로 충격 적다” 분석도


당시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을 치른 유럽의 전후 복구 사업을 지원하면서 호황을 누렸다. 공업생산은 10년 사이 두 배 가까이 늘었고 자동차도 대중화됐다. 주가의 10분의 1만으로도 주식을 살 수 있는 신용거래제도가 도입돼 주식시장은 투기장으로 변했다. 1929년 여름 주가는 연초 대비 24.15%나 급등했다. 증시가 한창 잘나가던 10월 24일 시세차익을 노린 ‘팔자’ 주문이 갑작스레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상한 낌새를 느낀 투자자들이 매도에 동참하자 주식시장은 전날 대비 20% 이상 급락했다. 대공황의 출발점이 된 ‘검은 목요일(Black Thursday)’이었다. 월가의 붕괴는 1932년 7월까지 이어지며 상장 종목의 시가총액은 89%나 감소했고 6000여 개의 은행이 파산했다.

실제 2013년 초 1만3412.55였던 다우지수는 지난 18일 기준 1만8161.94까지 치솟으며 역대 최고 수준을 달리고 있다. 4조5000억 달러(약 5104조3500억원) 규모의 양적완화(QE)와 초저금리가 만든 과잉 유동성이 주식시장을 떠받치고 있다. 미국 역대 증시의 주가수익비율(PER·주가를 주당 순이익으로 나눈 값)을 살펴보면 2000년 정보기술(IT) 버블 때가 가장 높고, 두 번째가 대공황 직전, 세 번째가 현재다. PER가 낮으면 주가가 과소평가됐고 높으면 과대평가됐다는 뜻이다. 미국 증시 거품을 우려하는 이유다.
이런 가운데 연준은 12월 기준금리 추가 인상을 예고하는 등 출구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칵테일 파티가 한창 달아오를 때 펀치보울(punch bowl·칵테일용 큰 그릇)을 치워버리기’라는 중앙은행의 전통적 역할에 충실하겠다는 것이다. 기준금리 인상은 과열된 증시를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지만 급락장을 부르기도 한다. 연준은 1937년 경기가 대공황의 늪에서 빠져나왔다고 판단해 지급준비율을 세 차례 연속 올렸다가 증시 폭락 등 대혼란을 자초한 바 있다.

보호무역주의도 향후 증시를 불안하게 보는 논거로 제시된다. 대공황 당시 미 의회는 자국 제품의 경쟁력을 지키기 위해 2만여 개 수입품에 20%의 관세를 매기는 ‘스무트홀리법’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영국·프랑스·독일·캐나다가 보복관세로 맞대응하면서 수출에 차질이 빚어졌다. 미국 실업률은 1930년 9%에서 1932년 25%로 뛰었다. 증시는 1930~32년 75.6% 폭락했다. 현재 미국 대선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등 세계적으로 일고 있는 보호무역 움직임이 현실화될 경우 그 파장은 작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미국 기업은 세계화의 토양 속에서 성장해왔기 때문에 보호무역 조치의 큰 피해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중국 등 제 3세계의 경제성장으로 교역이 다변화된 만큼 미국이 세계 경제를 공멸로 이끌 수 있는 보호무역 조치를 단행할 수 있겠느냐는 반론이 제기된다.
미국의 쌍둥이(재정·경상수지) 적자 심화에 대한 문제 제기도 있지만 1929·87년과는 다르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축통화로서 미 달러화의 위상이 공고해지면서 글로벌 자금이 계속 유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허인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은 국가·기업·가계의 부채가 고르게 퍼져 있어 당장 부채가 시스템 리스크로 전이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며 “미 국채에 대한 높은 수요가 원활하게 차환 발행으로 이어지고 있어 재정·경상수지 적자의 성격이 나빠지지는 않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경제에 악몽을 선사한 ‘검은 10월’의 낙인은 아직까지 남아 있다. 2016년 10월은 1929년과 87년의 10월과 다르면서도 묘하게 닮아 있다. 세계 경제에 불확실성의 계절이 오고 있다.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