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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 성대한 파티의 후유증…‘검은 10월’ 또 찾아오나

중앙일보 2016.10.24 00:55 종합 20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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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미국 뉴욕의 한 투자자가 ‘주식으로 돈을 모두 잃어 현금이 필요하다’며 차를 100달러에 팔겠다고 나섰다.(위 사진) 87년 10월 미국 투자자들이 주가 폭락을 보도한 신문을 읽고 있다.(아래 사진) [중앙포토]

“어느 주식 브로커와 함께 있었는데 흥분한 고객들로부터 전화가 쉬지 않고 울렸다. 주문은 오직 한 가지였다. 몽땅 팔아라!”

1929년 10월 24일 ‘검은 목요일’
1차대전 뒤 이어진 10년 호황 끝
미 증시 20% 이상 폭락, 대공황 시작

1987년 10월 19일 블랙 먼데이
5년간 주가 버블, 재정적자에 터져
시총 5분의 1 하루 만에 사라져

HSBC·씨티 ‘2016년 10월도 불안’
다우지수 최고점, 쌍둥이 적자 비슷
“교역 다변화로 충격 적다” 분석도

‘주식의 신’이라 불리는 앙드레 코스톨라니는 『돈, 뜨겁게 사랑하고 차갑게 다루어라』에서 1987년 10월 19일을 이렇게 회상한다. 이날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하루 만에 508포인트나 폭락하며 시가총액의 약 5분의 1(22.6%)이 허공으로 사라졌다. ‘블랙 먼데이(Black Monday)’라 불리는 이날의 충격은 이튿날 일본·싱가포르·영국 등 전 세계로 확산됐다. 당시 골드먼삭스의 이코노미스트였던 윌리엄 더들리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실직을 걱정했다. 어디론가 떠날 생각에 가죽재킷을 샀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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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대한 파티 뒤에는 반드시 후유증이 뒤따른다. 미 증시는 82년부터 과열 양상을 보였다. 82년 8월 800대에서 시작한 서머랠리는 5년이나 이어지며 87년 여름 2700선에 도달했다. 조정의 시기가 왔음을 직감한 투자자들은 눈치싸움을 벌였다. 하락의 불씨만 피어 오르면 투자를 거두겠다는 기류가 팽배했다. 때마침 미국의 재정·무역수지 적자 누적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87년 2월 미국·영국·서독·일본·프랑스 등 주요 5개국(G5)이 달러화를 절상하는 내용의 ‘루브르 합의’를 이끌어내자 수출 부진의 우려도 제기됐다. 또 증시 과열에 맞서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 인상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에 투자심리는 냉각됐다. 당시 블랙 먼데이의 원인 규명에 나선 브래디 특별조사위원회는 복합적인 대내외 변수와 주가 하락 시 주식을 팔도록 설계된 프로그램 매도 물량이 맞물려 증시가 폭락했다고 보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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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먼데이처럼 통제받지 않은 월가의 탐욕은 경제적 충격으로 이어진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도 투자은행(IB)이 과도한 레버리지를 통해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에 투자했다가 발생했다. 신용부도스와프(CDS)와 같은 리스크 헤지 상품이 거품의 촉매제가 됐다. 미국 증시의 10월 위기는 87년 전인 1929년에도 발생했다. 증시의 이상 과열과 갑작스러운 투자심리의 냉각, 당국의 오판은 미국을 대공황의 터널로 인도했다.

당시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을 치른 유럽의 전후 복구 사업을 지원하면서 호황을 누렸다. 공업생산은 10년 사이 두 배 가까이 늘었고 자동차도 대중화됐다. 주가의 10분의 1만으로도 주식을 살 수 있는 신용거래제도가 도입돼 주식시장은 투기장으로 변했다. 1929년 여름 주가는 연초 대비 24.15%나 급등했다. 증시가 한창 잘나가던 10월 24일 시세차익을 노린 ‘팔자’ 주문이 갑작스레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상한 낌새를 느낀 투자자들이 매도에 동참하자 주식시장은 전날 대비 20% 이상 급락했다. 대공황의 출발점이 된 ‘검은 목요일(Black Thursday)’이었다. 월가의 붕괴는 1932년 7월까지 이어지며 상장 종목의 시가총액은 89%나 감소했고 6000여 개의 은행이 파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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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두 차례의 증시 대폭락은 월가에 깊은 트라우마를 남겼다. 2016년 지금도 증시 대폭락을 걱정하는 이들이 있다. 증시 버블과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기조, 보호무역 대두, 쌍둥이 적자 폭 확대 등이 1929·87년 상황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HSBC는 이달 중순 투자자 보고서에서 “최근 증시가 87년의 블랙 먼데이 때와 유사하다”며 “주식시장에서 급매도가 펼쳐질 가능성이 임박했다”고 경고했다. 씨티그룹도 87년과 올해의 주가 흐름이 매우 유사하다는 내용의 분석 보고서를 발표했다.

실제 2013년 초 1만3412.55였던 다우지수는 지난 18일 기준 1만8161.94까지 치솟으며 역대 최고 수준을 달리고 있다. 4조5000억 달러(약 5104조3500억원) 규모의 양적완화(QE)와 초저금리가 만든 과잉 유동성이 주식시장을 떠받치고 있다. 미국 역대 증시의 주가수익비율(PER·주가를 주당 순이익으로 나눈 값)을 살펴보면 2000년 정보기술(IT) 버블 때가 가장 높고, 두 번째가 대공황 직전, 세 번째가 현재다. PER가 낮으면 주가가 과소평가됐고 높으면 과대평가됐다는 뜻이다. 미국 증시 거품을 우려하는 이유다.

이런 가운데 연준은 12월 기준금리 추가 인상을 예고하는 등 출구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칵테일 파티가 한창 달아오를 때 펀치보울(punch bowl·칵테일용 큰 그릇)을 치워버리기’라는 중앙은행의 전통적 역할에 충실하겠다는 것이다. 기준금리 인상은 과열된 증시를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지만 급락장을 부르기도 한다. 연준은 1937년 경기가 대공황의 늪에서 빠져나왔다고 판단해 지급준비율을 세 차례 연속 올렸다가 증시 폭락 등 대혼란을 자초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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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요즘 미국 경제는 2%대 잠재성장률과 5%대 실업률을 유지하고 있어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시장의 심리적 충격이 덜하다는 게 중론이다. 오히려 지난해 12월 기준금리를 9년 반 만에 인상하자 다우지수는 1만8000선으로 뛰었다. 시장은 금리 인상을 불확실성 제거와 경기회복의 시그널로 이해하고 있다는 뜻이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자율이 미국 증시의 주요 변수지만 기준금리를 인상해도 그 여파나 충격이 클 것 같지는 않다”고 내다봤다.

보호무역주의도 향후 증시를 불안하게 보는 논거로 제시된다. 대공황 당시 미 의회는 자국 제품의 경쟁력을 지키기 위해 2만여 개 수입품에 20%의 관세를 매기는 ‘스무트홀리법’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영국·프랑스·독일·캐나다가 보복관세로 맞대응하면서 수출에 차질이 빚어졌다. 미국 실업률은 1930년 9%에서 1932년 25%로 뛰었다. 증시는 1930~32년 75.6% 폭락했다. 현재 미국 대선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등 세계적으로 일고 있는 보호무역 움직임이 현실화될 경우 그 파장은 작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미국 기업은 세계화의 토양 속에서 성장해왔기 때문에 보호무역 조치의 큰 피해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중국 등 제 3세계의 경제성장으로 교역이 다변화된 만큼 미국이 세계 경제를 공멸로 이끌 수 있는 보호무역 조치를 단행할 수 있겠느냐는 반론이 제기된다.

미국의 쌍둥이(재정·경상수지) 적자 심화에 대한 문제 제기도 있지만 1929·87년과는 다르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축통화로서 미 달러화의 위상이 공고해지면서 글로벌 자금이 계속 유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허인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은 국가·기업·가계의 부채가 고르게 퍼져 있어 당장 부채가 시스템 리스크로 전이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며 “미 국채에 대한 높은 수요가 원활하게 차환 발행으로 이어지고 있어 재정·경상수지 적자의 성격이 나빠지지는 않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경제에 악몽을 선사한 ‘검은 10월’의 낙인은 아직까지 남아 있다. 2016년 10월은 1929년과 87년의 10월과 다르면서도 묘하게 닮아 있다. 세계 경제에 불확실성의 계절이 오고 있다.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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