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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영의 컬처 스토리] 동상 세우기 좋아하는 한국

중앙일보 2016.10.24 00:28 종합 28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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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요즘 장안의 구박을 받고 있는 강남스타일 조형물을 몇 주 전 서울 코엑스 앞에서 비로소 직접 보게 됐다. (사진1) 사진으로 이미 봤는데도 실제로 보니 더욱 놀라웠다. 그 거대함에. 그리고 혹시라도 못 알아볼 관광객을 위해 “GANG NAM STYLE”이라고 커다랗게 새긴 그 부담스러운 친절함에. 무엇보다도, 싸이 ‘강남스타일’의 유쾌하고 권위 조롱적인 B급 정서를, 무겁고 권위적인 매체의 대표격인 브론즈 조각, 즉 동상(銅像)으로 구현한 그 난해한 발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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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코엑스 강남스타일 조각

생각해 보니 한국의 관(官)과 단체들은 무언가를 기념하고 기억하는 것에 있어서 - 역사인물은 물론이고 심지어 케이팝까지 ? 참으로 동상을 좋아한다. 지금 생각하면 웃긴 초등학교 괴담들의 단골 소재도 동상이었다. 밤 12시가 되면 유관순 열사 동상이 피눈물을 흘린다느니,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 동상이 서로 싸운다느니. 학교마다 보급된 동상들이 대부분 조악한 수준으로 대량 제작돼 무시무시하게 생겼기 때문에, ‘위인의 정신을 본받는다’는 취지는 간데없고 괴담만 남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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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광화문 세종대왕

정성 들여 제작한 동상이라 해도 ‘꼭 동상이어야 했나’라는 의문이 솟을 때가 많다.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 중 하나는 광화문 용마루와 그 뒤로 솟은 북악산 능선의 조화인데, 그 앞에서 황동색으로 번쩍거리는, 서구식 사실주의 묘사법으로 제작된 세종대왕상(사진2)을 보면 기묘한 부조화를 느끼게 된다. 이곳이 세종로이니 세종대왕을 기억할 시각적인 무언가를 설치하고자 한 것은 알겠는데, 그것이 꼭 거대 동상이어야 했을까? 한글을 테마로 한 잔잔한 추상미술이었으면 안 되었을까? 동상이 한국의 전통인가?

어떤 사람이나 일을 기리고자 할 때 한국의 전통은 비석이나 사당이나 홍문(紅門)을 세우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구체적인 형상으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추상적인 상징으로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한편 한국의 조각 전통은 불상과 석물로 이어져 내려왔는데, 서구 고전주의 조각과 달리 반추상적이고 그래서 오히려 현대미술에 가까운 멋이 있다. 이래 저래 한국 각종 기관들이 좋아하는 사실적 기법의 동상은 한국 전통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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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 파리 기마상과 한국 기마상

한국에서 동상 붐이 일어난 것은 60-70년대 박정희 정권 시절 서구화와 민족주의 고취를 동시에 진행하면서였다. 정부 산하에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가 생겨 한국의 주요 역사인물의 동상을 여기저기에 세웠는데, 유럽 전통을 따라서 높다란 돌 받침대에 영웅적인 모습의 브론즈 입상과 기마상으로 만들어 세웠다. (사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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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4. Auguste_Rodin-Burghers_of_Calais

아이로니컬한 것은 정작 서구에서는 이런 식의 모뉴먼트(기념조형물)에 대한 반발이 이미 19세기 말부터 시작됐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오귀스트 로댕의 ‘칼레의 시민들’(1884~95)이다. (사진4)

이 브론즈 군상은 프랑스 칼레 시(市)가 주문한 것이었는데, 중세 백년전쟁 당시 영국군에 포위된 칼레 시의 일반 시민들을 살리기 위해 영국 왕에게 목숨을 내놓기로 자원하고 성문을 나선 6명의 지도층 시민을 기리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완성된 로댕의 작품을 보고 칼레 시의회는 격분했다고 한다. 로댕이 죽음에 초연한 영웅들의 모습 대신 두려움과 고뇌에 찬 인간의 모습을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더욱 파격적인 것은, 높은 받침대 대신 거의 지면과 가까운 납작한 받침대를 사용해서, 권위를 드높이는 대신 관람객과 함께 호흡하도록 한 것이었다. 결국 이 군상이 칼레 시청 앞에 받아들여진 것은 완성되고도 30년이 지나서였고, 지금은 걸작으로 인정 받고 있다.

그 후로 점점 더 많은 서구 예술가들은 국가나 관의 권위에 봉사하는 모뉴먼트를 거부하고 대신 일상에 창의적 생각과 아름다움을 불어넣고 시민들과 소통하는 공공예술을 추구해 왔다. 그런 가운데 인물이나 사건을 기리기 위해 구체적인 형상의 조각을 세우는 일은 점점 적어지고, 그런 조각으로 한다고 해도 높다란 받침대에 세우거나 거대하게 만드는 법은 거의 없이 시민들 눈높이의 작은 조각으로 세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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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5. 서도호의 공인들

그와 관련해서, 몇 년 전 한 독일 방송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무엇인가를 기억하기 위한 서구의 예술작품이 어떻게 점점 낮은 자리로 왔는가에 대한 다큐멘터리였다. 높다란 동상의 받침대가 낮아져 로댕의 낮은 받침대 조각을 거쳐 아예 받침대 없는 조각들이 나타났고 조각 대신 바닥에 깔린 글자판 등의 추상적인 매개로 기억을 유도하는 작품들도 나왔다. 마지막에 나온 것은 뉴욕 퍼블릭아트펀드의 1998년 공공미술 전시 ‘기념조형물을 넘어서서(Beyond the Monument)’에 나온 한국 작가 서도호의 역(逆)모뉴먼트 작품이었다.(사진5) 받침대 위에 위인의 조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조그만 갑남을녀의 군상이 도리어 받침대를 떠받치고 있는 ‘공인들’이라는 작품이다.

이렇게 서구에서는 전통적 형상의 동상을 비롯한 권위적 모뉴먼트를 점차 멀리해 왔는데, 도리어 한국에서 그 낡은 전통을 열심히 계승하고 있으니 아이로니컬한 일이다. 1960~70년대의 위인 동상은 과도기적 역사의 산물이라 볼 수 있겠지만, 21세기에도 한국의 관과 단체는 여전히 동상에 집착한다. 조선시대 인물의 생가나 유적 앞에, 그의 실제 생김새도 모르면서 굳이 동상을 커다랗게 만들어 어울리지도 않게 전통한옥 앞에 설치하는 게 과연 필요한 일일까? 강남스타일이나 한류 드라마까지 거대한, 그리고 전혀 아름답지 않은, 동상으로 기념해야 할까?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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