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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2017 대선주자 릴레이 인터뷰] 도올이 묻고, 안희정이 답하다 “대통령 리더십을 혁명하고 싶다”

온라인 중앙일보 2016.10.22 09:22
안희정 충남지사는 1983년 고려대 철학과에 입학해 도올의 수업을 들었으니 그의 직계 제자라 할 수 있다. 당시 도올이 헤겔철학을 강의하면서 누누이 강조한 언설을 아직도 기억한다. “반독재운동은 자칫 독재자를 닮게 되어있으니 조심하라!”는 가르침이었다. “운동권의 선·악 이분논리를 초극해야 한다”는 안 지사의 요즘 지론도 그 맥락 안에 있다. 도올은 안 지사 대선관의 핵심을 ‘대통령이란 자리의 새로운 자리매김’으로 보았다. ‘대통령 인식론’을 둘러싼 두 사람의 논변이 치열했다. 이 장쾌한 공방이 인터뷰의 백미가 되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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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5일 도올 김용옥과 안희정 충남지사가 서울 만리동 충청남도 서울사무소 옥상에서 만나 담소를 나누고 있다. 안 지사는 인터뷰에서 “대통령 리더십에 대한 근원적 성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는 요번 겨울을 매우 조용하게 보낼 참이었다. 최근 <도올의 중국일기>(제5권까지 나옴)와 <도올, 시진핑을 말한다>를 펴낸 이후로, 요번 겨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던 계획이 하나 있었다. 유럽의 지성들이 한국문명에 대한 총체적 정보를 가지고 있질 못하기 때문에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치적 사건이나 문화적 행위에 대하여 바른 해석을 내리질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인지, 그 이미지를 전체적으로 조감하는 간략한 책자 하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파리에서 예술서적을 많이 내는 격조 높은 출판사(Les Presses du Réel)의 특별한 요청으로 나는 한국문명의 전체를, 요약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집필하기로 약속을 했다. 그리고 내년 2월까지 원고를 넘겨주기로 계약서를 작성한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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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은 인터뷰 당일 호남선 열차를 타고 상경한 제자 안희정 지사를 서울 용산역으로 마중 나갔다. 1983년 고려대 철학과에 입학한 안 지사는 도올에게 직접 철학 강의를 들었다.

그러나 사실 한국의 모든 것, 그 역사와 인종과 언어와 예술, 그리고 복잡다단한 정치적 문제의 배경을 통시적으로, 공시적으로 조망한다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문제이다. 그래서 이 참에 행복하게 국학관계 사료의 독서에 탐닉하면서 조용히 올겨울을 맞이하려 했던 것이다. 나의 학문여정을 총체적으로 부감(付勘: 문서 등의 내용을 대조하여 조사함)하면서 한국이라는 유기적 생명체의 테마 속에 나의 삶의 모든 체험을 집약시키고자 했다.

법치와 인치의 조화, 진정한 자치분권의 정치 실현하고 싶어…
국가주도형 개발독재 모델과 권위주의 통치철학을 초극해야

그런데 나의 딸 김승중 교수가 <월간중앙>에 쓰고 있는 희랍문명과 예술에 관한 논고의 데스크를 맡고 있는 한기홍 기자가 갑자기 나에게 대선후보 릴레이 인터뷰라는 그랜드 프로젝트를 제시했다. 나는 현재 스케줄이 다 짜여 있고 이미 국제적인 계약을 맺은 몸이라, 그런 버거운 그랜드 프로젝트를 떠맡을 수 없다고 간곡히 말했다. 더구나 나는 내년 3월 10일부터 LA 지역의 대학에서 7개월 동안 나의 기철학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강의를 하기로 약속되어 있다. 불란서 책 출판도 나의 조국 대한민국을 위하여 중요한 일이고, 미국대학 강의도 나의 생애에 더없이 의미 있는 에포칼한 이벤트이다. 이러한 와중에 대선후보 릴레이 인터뷰는 실무적으로 떠맡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러나 한기홍 기자는 계속 나에게 이 대선 특별기획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매일같이 전화를 걸어왔다.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선의지를 가진 행동에는 열리게 마련이다.

사실 나는 신문이나 방송을 가까이 두고 살지를 않기 때문에 시사에 어두운 사람이다. 철학자인 나는 역사의 대강을 파악할 뿐이지 그 소절(小節)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러나 인터뷰를 하려면 시사의 모든 소절에 관하여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것은 곧 내가 한국에서 최근 벌어진 모든 정치사적 사건, 내가 ‘지금사(只今史)’라고 부르는 현대사에 대하여 ‘쌩’으로 새롭게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이런 공부가 매우 구차스럽다. 모르고 한세상 살면 좋겠는데! 그 구질구질한 사건들을 내가 다 공부해야 한다니! 얼마 전 CBS 라디오 인터뷰도 그러했지만, 국민들이 나의 담론을 참신하게 느끼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내가 참신하게 새로 공부를 하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지금사에 대하여 매우 잘 아는 것 같지만 실상 무지하다. 지금이란 순간순간 넘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어제사와의 연결 맥락을 지금을 사는 인간들은 다 망각해버리고 만다. 나의 글은 내가 아무리 쉽게 써도 읽는 사람들은 항상 어렵다고 말한다. 그러나 어렵다고 말하는데도 열독율이 높은 이유가 있다.
 
‘무지의 헛바퀴’가 도는 우리나라 정치 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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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고려대 철학과 부교수로 부임해 강의하고 있는 도올. 서클 지도교수로 활동하며 한국사회의 현실과 학생들의 고민을 깊이 이해하게 됐다.

그것은 내가 무지하기 때문이다. 무지하기 때문에 사소한 사건, 개념을 파악하느라 피눈물 나는 노력을 기울인다. 모든 전문가들은 자기가 쓰는 디스꾸르(discours: 시대성을 가진 담론)를 구성하는 명사 개념이나 고유명사를 담화의 대상자들이 공유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 다시 말해서 무지의 개념이 무지한 채로 상대방의 무지 속으로 빠지고 만다. 유식한 지성인일수록 ‘무지의 공전’ 속에서 담론을 순환시킨다. 그래서 결국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아마도 우리나라 정치사의 담론들이 이러한 무지의 헛바퀴 속에서 이어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최근 나는 JTBC <차이나는 도올>을 강론하면서 현대사의 중요성을 새삼 절감했다. 중국의 지금사를 정확히 파악하는 문제가 춘추전국시대의 경전을 읽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롭게 발견한 것이다. JTBC 방송 스태프에게 이 자리를 빌어 깊은 감사를 드린다. 지금사가 곧 나의 철학의 테마라는 절절한 생각이, 나로 하여금 <도올, 시진핑을 말한다>라는 빠알간 표지의 책을 쓰게 만들었다.

그 책을 탈고한 직후에 쑤시고 들어온 한기홍 기자의 부탁은 나의 철학적 성찰을 새삼 촉구하는 계기가 되었다. 중국의 지금사는 그토록 자세히 공부한 내가 한국의 지금사를 철저히 공부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과연 포기할 수 있을 것인가? 더구나 지금사를 구성하는 가장 굵직한 동량들을 직접 대면할 수 있는 이 기회는 아무에게나 아무 때나 찾아올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아니한가?

이 그랜드 프로젝트를 떠맡기 위해서 내가 해야 할 가장 어려운 작업은 불란서 출판사와의 계약을 연기하는 새로운 계약을 맺는 일이었다. 나는 기묘한 발상을 해냈다. ‘코리아라는 문제’를 총체적으로 조감하려면 오늘의 시점을 벗어날 수 없다. 모든 역사는 현대사일 뿐이라는 크로체의 말을 굳이 들먹이지 않아도 ‘코리아라는 문제’는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생명체와도 같다. 그렇다면 내가 쓰려고 하는 책의 테마는 내년 대선이 지나고 나면 매우 낡아빠진 고물이 되고 말 수도 있다. 나는 대선 후의 새로운 코리아의 비전을 쓰고 싶다. 지금 내가 단군이나 고조선에 대한 어떠한 담론을 구성해도 내년 대선을 계기로 그 컬러가 래디컬하게 바뀔 수도 있다. 차기 대통령이 확정된 후에 ‘코리아라는 문제’를 쓰는 것이 좋겠다고 파리 출판사에 연락했더니, 그곳에서 긍정적인 답변이 날아왔다.

나는 대선인터뷰 프로젝트를 떠맡으면서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한 잡지 매월호에 한 사람당 80매 분량의 인터뷰가 두 개 실린다는 것도 이례적인 것이지만, 그 두 개가 모두 한 명의 인터뷰어에 의하여 집필된다는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다. 그리고 이것이 잡지의 기사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중앙일보> 본지에 한 사람당 두 면이라는 어마어마한 공간을 점유하여 일간지 독자들과 만나게 된다는 사실은 특별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인터넷매체가 같이 호응하게 되니, 그 파급력은 내용만 진실하면, 엄청날 것이다. <중앙일보>는 판형이 슬림하기 때문에 30매 원고를 소화한다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다. <중앙일보>는 이러한 나의 무리한 부탁을 수용해주었다.

나는 원래 문장의 호흡이 긴 사람이고, 그래도 내가 만나는 사람이 모두 이 나라의 영도자가 될 수 있는 동량들인데, 그 정도의 특별한 대접을 안 해주면 그들이 모두 나와의 인터뷰에 응하는 재미를 느끼지 않을 것이다. 사실 지금 결정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후보가 결정된 것도 아니고 당내 경선이 구체화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초반의 작업은 한국정치사의 새로운 굿판을 만들 수 있는 절호의 찬스다. 막판에는 승부만을 생각하지, 굿판의 질감을 강구할 여백이 없다. 나는 한국정치의 새로운 판도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었다. 그것은 내가 정치에 관여한다는 뜻이 아니라, 철학자로서 민중이 참여하는 한국정신사의 새로운 국면에 기여하고 싶은 것이다.

나의 제1원칙은 이러하다: 나의 굿판에 등장하는 모든 후보자들의 내면에 간직한 사상적 성향이나 비전을, 당파나 정치적 이념이나 개인적 신념과 무관하게,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당이 아니라 사람이다. 이념이 아니라 진실이다. 레토릭이 아니라 민중에 의하여 해석되는 의미의 체계다. 이성을 뛰어넘는 감성의 저변을 전관(全觀)하고 싶은 것이다.

<중앙일보> 본지의 사람들은 나에게 인터뷰이들을 너무 띄워주지 말 것을 부탁하기도 했으나, 당파에 관계없이 띄워주어야 할 때는 띄워주어야 하는 것이 정칙이다. 사람은 띄워주지 않으면 그 사람의 본질이 드러나지 않는다. 억압받는 곳에서는 자기의 진실을 드러내지 않는다. 내가 누구를 띄워 준다고 하는 것은 오로지 냉혹한 비판을 통해서만 띄워주는 것이다. 칸트가 인간의 이성이 이성 그 자체를 비판의 심판대 위에 올려놓아야 한다는 정신으로 비판철학(Critical Philosophy)의 체계를 수립했듯이, 한국정치는 정치 그 자체를 비판의 심판대 위에 올려놓아야 한다.

제2의 원칙은 이러하다: 나의 인터뷰는 모든 양식적 파괴를 감행한다. 나의 인터뷰는 6하 원칙에 의한 리포팅이 아니다. 이것은 ‘인간의 탐구’이며, 그 탐구의 내용을 오로지 국민에게 공유되는 자산으로 만든다는 것이 원칙일 뿐이다. 그것은 사제지간의 정담이 될 수도 있고, 내가 살았던 보스턴의 소극장에서 연출되는 고급스러운 지적 드라마의 한 대화 장면처럼 느껴질 수도 있고, 치열한 사실을 추구하는 수색탐문이 될 수도 있다. 우리나라 정치사에서 대선을 앞두고 모든 대선후보의 사상성향을 당대의 대표적인 사상가가 공개적인 장 속에서 점검하는 그런 자리가 있었던가? 사르트르도 불란서 정치에 이런 식으로 참여할 기회는 없었을 것이다.
 
“좌우 통섭하는 중앙일보만이 가능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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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은 월간중앙의 대선주자 릴레이 인터뷰 기획을 통해 “한국 정치의 새로운 판도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내가 보기에 이번 선거의 최대특징은 모든 후보가, 당파나 거저먹는 권력의 지원이 없이, 자신의 정치적 역량이나 역사의 비전을 국민에게 직접 호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어느 선거보다도 굵직한 인물이 많다는 것이다. 우리는 해방 후 줄곧 노회한 정치가들이 판을 짜는 관행에 젖어 젊은 정치인들의 역량을 과소평가하는 습성이 있다. 1970년대 이미 김영삼이 ‘40대 기수론’을 들고 나왔다는 엄연한 사실도 망각하고 있다. 박근혜 후보만 해도 박정희 대통령의 따님이라고 하는 도저히 검증될 수 없는 카리스마의 백업을 받았다. 이제 이러한 백업의 시대는 종료된 것이다.

자아, 이 기획시리즈의 첫 장은 충남도지사 안희정을 위한 것이다. 그런데 안희정 얘기는 하나도 안 나오고 딴 얘기만 하고 있으니 독자들도 어리둥절하고 안 지사도 화가 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안희정은 나의 제자다! 내가 직접 가르친 인물이다. 그래서 나는 안 군에게 양해를 구해야겠다. 자네가 첫 주자로 뽑힌 죄로 자네 분량은 이 전체 기획의 서장으로서의 성격에 양보해야겠네! 나는 이 특별기획 시리즈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원리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단 말일세. 혼선을 미리부터 막아야 하니까! 난 사실 오래전에 <동아일보>에 연재되었던 ‘최일남이 만난 사람들’과 같은 칼럼의 구수한 맛을 잊지 못한다. 최일남 이후로 우리나라 언론계에 그러한 ‘탈각의 느낌’이 드는 구수한 문장이 사라졌다. 나의 문장은 항상 문·사·철을 통합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대선기획 특별시리즈는 어떤 특정한 후보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정치판도 전체를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노력이다. 이러한 기획은 <중앙일보>가 좌·우를 통섭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후보들은 내가 나섰기 때문에 인터뷰에 응하겠다는 자발성을 보여주었다. 그만큼 나의 어깨에 주어진 사명은 막중하다. <중앙일보>의 전폭적인 지원에 감사하며 <월간중앙>의 기발한 착상과 노고에 심심한 사의를 표한다.

또 한 가지! 나는 평생 80여 권을 초과하는 책을 상재했지만 단 한 번도 비슷한 주제를 반복하지 않았다. 항상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왔다. 요번 인터뷰도 신문에 200자 원고지 30매짜리 기사가 나가고, <월간중앙>에 80매짜리 글이 나간다. 그런데 30매짜리는 80매짜리의 요약이 될 수 없다. 글이란 그 나름대로의 생명력을 지닌 것이다. 80매짜리와 30매짜리는 전혀 다른 생명체라고 보면 된다. 같은 인터뷰이지만 30매짜리를 쓰는 방식과 80매짜리를 쓰는 방식은 전혀 다를 수밖에 없다. 내용도 다를 수 있다. 인터뷰 내용은 보통 300매에서 500매에 이르는 분량이다. 그것을 30매로 압축 시키는 작업은 나에게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이다. 나는 30매는 보통 2, 3시간이면 완성한다. 그런데 인터뷰 30매는 최소한 이틀 이상을 꼬박 정진한다. 독자들은 <중앙일보> 기사와 <월간중앙> 글을 별도의 장르로 인식해주었으면 한다. 그만큼 나의 노동의 양도 많다. 한 달에 최소한 220매를 써야 하니까. 컴퓨터를 아직도 모르고 만년필을 잡고 있는 나의 손목은 시큰거리고, 시력은 점점 희미해져 가고만 있다. 그래도 죽는 그 순간까지 20대의 푸릇함과 꼿꼿함을 잃지 않고 살 것이다.

나는 1982년도에 고려대학교 철학과 부교수로 부임하였고, 안희정 군은 1983년도에 고려대학교 철학과 학생으로 들어왔다. 안 군은 논산군 연무읍에서 태어났고 나는 천안읍내 병원집에서 태어났으니 같은 충청남도 기백이 뻗쳐 있다. 많은 사람이 충청도 사람 하면 ‘충청도양반’이라 하여 가장 두리뭉실하고 색깔이 없는 사람들로 착각하지만, 사실 우리나라의 가장 대쪽 같고 고집 세고 시류에 저항하는 인물들이 많은 고장이기도 하다. 하여튼 장항선 주변으로, 언뜻 추사나 윤봉길, 박헌영, 김옥균, 김좌진, 유관순 같은 인물을 나열할 수 있겠지만, 또 우리나라 연예계로 말하자면 코미디언이나 개그맨이 가장 많이 배출된 지역이기도 하다. 대쪽과 웃음은 상통하는 인간의 양면일 수도 있다.
 
안희정을 처음 만났던 1980년대 초반 고려대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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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 지사는 1983년 고려대에 입학해 95년 2월에야 뒤늦게 졸업장을 받았다. 졸업식장에서 부모님, 부인 민주원 씨(맨 왼쪽)와 장남 등이 함께했다.

안 군은 16살 때 고등학교를 때려치우고 트로츠키나 레닌처럼 혁명을 해야겠다고 서클을 차렸다고 했는데 그의 나이로 계산해보면 그때가 바로 광주민중항쟁의 피눈물이 대한민국 전역에 뿌려지던 시기였다. 5·18의 참상을 겪은 논산의 시골학생이 시국이 이 모양인데 공부를 해서 무엇 하나, 혁명을 해야지 하고 결의를 실행에 옮겼다는 사실 자체가 돈키호테적 발상이기는 하지만, 얼마나 자기가 살고 있던 역사의 현주소에 충실한 지성이었는가 하는 것은 새삼 확인할 필요가 없다. 당시 나는 어디 있었나? 1980년에 나는 보스턴 케임브리지 하버드 대학의 박사 반 마지막 코스를 밟고 있었다. 5·18의 소식을 들은 하버드 대학의 10명 남짓한(그때는 한국유학생의 수가 근소했다) 학생들이 모여 우리가 가만히 있을 수 있느냐 하고 미국정부에 항의할 방도를 논의했다. 그래서 항의서한을 미 대통령 지미 카터에게 보내기로 하고, 우선 보스턴시청 앞 분수대에서 데모를 하기로 했다. 그래서 우선 데모 신고를 하고 5월 23일 아침에 플래카드를 들고 모이기로 했는데, 그 항의의 내용은 결국 한미연합사령관이 한국 군대의 이동을 허락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당시 보스턴 지역의 지한 인사로서 미국언론에 영향력이 있었던 그레고리 핸더슨의 자택을 방문하여 한국에서 돌아가고 있는 정세에 관하여 유용한 정보를 얻었다.

그때 이미 공수여단의 미치광이 병사들이 도청 앞 분수대에 여학생들을 묶어놓고 그 젖가슴을 두부 도려내듯 잘라내는 등 온갖 만행을 저질렀다는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이야기들이 보스턴의 한인 학생가에 떠돌았다. 그런데 보스턴시청 앞 데모를 하는데도, 의논에 참석한 학생들은 사진 찍히면 귀국해서 잡혀가거나 교수취업에 결격 사유가 될 수도 있으니 얼굴을 가리는 두건가면 데모를 하자고 했다. 나는 조국에서 동포가 대량 죽어가는 판에 뭔 그 따위 자잘한 생각을 하냐 하고 맨얼굴로 데모를 하자고 했다. 하여튼 그것조차 합의를 못하고 각자 알아서 행동하기로 했다. 나는 이날 사이언스 라이브러리라는 학교건물 한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장편의 비분망국시를 썼는데 불행하게도 이사 중에 그것을 잃어버렸다. 두고두고 애석하게 생각한다.

그 다음날 시청 앞에 나가보니 가면을 쓰고 나오겠다던 학생들은 나오지도 않았다. 그런데 인근의 보스턴 대학 학생과 터프츠 대학 학생이 참석해주어 그나마 체면을 유지했다. 우리 데모는 <뉴욕타임스>에도 실리지 못하고 로컬신문인 <보스턴글로브>에 작은 기사로 실렸다. 하여튼 미국에서 데모하는 것도 벌벌 떨던 하버드 유학생들과 고교생 안희정의 모습은 분명 치열한 대비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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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시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의 고향인 충남 논산의 한 딸기작목반을 방문, 수확한 딸기를 부인 권양숙 여사에게 권하고 있다.

내가 82년 고려대 교수가 되었을 때는 5·18의 상흔이 전혀 아물지 않은 상태로 나라 전체가 피를 줄줄 흘리고 있던 시절이었다. 교수로 부임한 안암교정은 매우 칼칼한 북풍이 휘몰아치는 싸늘한 겨울의 분위기였다. 내가 1960년대 고려대를 다닐 때는 학생서클실이 홍보관 앞 너른 마당에 나지막한 병영식으로 줄지어있는 판자촌이었다. 나무판대기로 지은 영락없는 판자촌이었다. 그 판자촌 칸칸에 수십 개의 학생서클이 들어차 있었다. 사실 우리가 ‘판자촌’이라고 부른 이 서클실이야말로 우리시대의 모든 낭만이 서려있는 지성의 보금자리였다. 나는 유단자래서 태권도부에 소속되어 있었지만 다양한 독서토론 모임을 들락거렸다.

그런데 어느 새인가 이 판자촌을 다 때려 부수고 그 앞에 학생회관이라는 매우 못생긴 시멘트건물을 지었다. 내가 교수로 부임했을 때 이 건물의 반지하에 해당되는 곳에는 커다란 학생식당이 자리 잡고 있었고 계단을 올라가면 오른편으로 교수식당이 있었다. 내가 대학생이던 60년대에는 호상(지구본 위에 호랑이가 조각되어 있는 큰 돌조각) 곁에 있는 아담한 단층건물이 식당이었는데, 그 식당의 반이 학생식당이었고 반이 교수식당이었다. 그런데 교수식당은 항상 하이얀 면포가 덮여있어 그 대비가 현저했다. 나는 그때도 교수식당과 학생식당의 구분을 아예 없앴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좀 래디칼한 생각이었으나, 나는 교수가 되어 그 시절의 생각을 저버릴 수 없어 대부분 학생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그리고 학생회관은 가운데로 계단이 뻥 뚫려있고 주변난간으로 서클실이 배치되어 있었는데 2층 이상을 올라가는 교수는 거의 없었다.

한사니, 한맥이니 하여튼 ‘한’ 자 붙은 이념서클이 많았는데 당시 서클은 지도교수가 없으면 등록이 되지 않았고, 등록이 안 되면 쥐꼬리만한 보조금이나마 받을 수가 없었고, 합법적인 활동이 되질 않았다. 물론 서클실도 배정받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념서클은 너무도 문제가 많아 교수들이 지도교수로서 이름 걸어주는 것을 회피했다. 봄학기 초만 되면 학생들이 교수실 앞에 와서 지도교수 해달라고 엉엉 우는 것이다. 나는 이야기를 들어보고 지도교수를 기꺼이 해주었다. 70년 대를 편안하게 외국에서 공부만 했던 나는 전두환이 특별히 무섭게 느껴지지도 않았고, 역사의 고통에 동참하지 못한 죄책감이 있었기 때문에, 지도교수 사인을 기꺼이 해주었다. 새로 미국에서 부임한 한복 입은 교수가 지도교수 잘 해준다는 소문은 금세 쫙 퍼졌다.

나는 83년 봄 농악대를 비롯하여 11개 문제 서클의 지도 교수가 되었다. 나는 지도교수를 허락해주면서 꼭 토론이나 행사 때 나를 참석시키라고 했다. 나는 이렇게 해서 한국사회를 배우기 시작했다. 어느새 나는 학생회관 2층을 수시로 넘어 다니는 유일한 교수가 되었다. 총장실에서도 학생들 데모 소식을 알려면 나를 불렀다. 나는 학생들 과외활동의 책임을 지고 있는 지도교수로서 학생들과 함께 데모대열에 서곤 했다. 최루탄을 같이 뒤집어쓴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나는 김충렬 교수의 방 옆에 아주 쾌적한 방을 배정받았으나, 서관 뒤쪽 좀 후미진 곳에 좀 컴컴하지만 빈 창고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곳은 작은 방이 세 개나 있는 콤플렉스였다. 나는 학교에 교섭해서 이 창고를 나의 교수실로 쓰게 해달라고 했다. 허락이 떨어졌다. 나는 이 방을 운치 있게 꾸렸다. 그리고 2개의 방에는 학생들이 수시로 들락거리며 공부할 수 있게 해주었다. 어느덧 나의 교수실은 학생들의 세미나실이 되었다. 나는 그곳에서 비로소 민중민주파(PD), 민족해방파(NL)의 맹아라 할 수 있는 매우 생소한 담론들의 다양한 논리들을 교육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도식적 개념을 기반으로 한 사유가 머리에 잘 들어오질 않았다. 바로 그 침침한 방에서 나는 데모를 열심히 하던 안희정 군을 만났던 것이다. 그것은 운명이었다.

내가 지난 10월 5일, 안 지사를 만난 곳은 용산역이었다. 안 지사가 서울로 올라온다길래, 내가 마중 나가기로 했다. 나의 제자가, 고등학교 때 혁명 서클을 만든 자가 험난한 세월을 죽지 않고 살아남아, 충남도정을 책임지는 도지사가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나에게는 매우 경이로운 팩트였다. 나는 제자를 격려하는 뜻으로 일부러 역으로 나가기로 했던 것이다. 호남선을 타고 올라오는 것도 안 지사는 호남인에 대한 배려를 의도했을지도 모른다. 플랫폼에서 시작된 우리의 대화는 만리동에 있는 충청남도 서울사무소에서 이어졌다. 내가 이미 본지에서 밝혔듯이 안 지사는 어려서부터 이념 서클에서 다져진 매우 단단한 철학적 사유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매사가 매우 촘촘히 다져진 논리적 그물망 속에 얹혀 있다.
 
“안희정은 언변으로 낭패 볼 사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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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 지사는 도올과의 대화에서 “법과 제도가 국민을 배반하지 않는다는 신뢰를 얻어내는 힘이 지도자의 덕성”이란 소신을 밝혔다.

그는 매우 말을 빨리 한다. 그리고 빨리 하는 말이 모두 치밀하게 완벽한 문장을 구성하고 있다. 그는 어떠한 경우에도 언변으로 낭패 볼 사람은 아니다. 노무현과 같은 말실수가 없다. 어떠한 경우에도 대적자를 악으로 휘몰지 않는다. 그는 운동권에서 성장하였지만 운동권이 가지고 있는 선·악의 이분논리를 초극하고 있다. 사실 80년대 의식화 논리라는 것이 순수한 마르크스주의적 사변체계냐, 레닌주의의 현실적 강령체계냐 하는 것으로 갈리는 것이지만 그 모두가 한국의 청년들에게 일종의 로맨티스트적인 상향의 계기를 제공해준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러한 낭만주의에서 순수한 휴머니즘으로 초극한 자들은 선·악의 이원론을 벗어났지만, 아직도 세상을 선·악의 모순관계로만 파악하는 자들은 종교적 질곡에 함몰되고 만다. 사회혁명은 사라지고 이념의 질곡에 갇힌 종파적 맹신주의에 매장되고 마는 것이다. 그것은 종교적 광신보다 더 저열하다. 안 군의 주장의 핵심, 세대교체가 아닌 시대교체의 본원은, ‘대통령 되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의 새로운 자리매김, 즉 ‘대통령 인식론’에 있다는 것이다.

“한국정당의 계보로 본다면 제가 민주당 후손인 것을 누가 모르겠습니까? 민주당 후손이기 때문에 저는 김대중과 노무현, 그 집안의 정통을 잇는 장자가 되어야만 합니다. 아무리 부모의 역사가 부끄럽다 해도 자기 부모를 버리는 자식은 동네사람들이 결코 용납하질 못합니다. 그러나 제가 도전을 하겠다고 하는 것은 김대중과 노무현을 산출한 이승만과 박정희 시대의 패러다임까지 모두 완전히 초극해야만 한다는 결의를 보이는 것입니다. 이것을 뛰어넘지 않는 이상, 우리 민중들의 고초가 풀릴 길이 없습니다.”
 
그게 바로 세대교체 아닌 시대교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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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들의 일반적 의식구조 속에서 실제로 리더십의 표준은 박정희 모델 하나밖에 없어요. 보고 배운 게 그것 하나밖에 없거든요. 선생님께서 대학시절에 헤겔철학 강의하시면서 누누이 강조하신 이야기가 있었어요. 반독재운동은 반드시 독재자를 닮게 되어있다. 조심해라! 우리민족이 독재자의 성품을 닮아가고 있다. 그런데 지금은 시대가 바뀌고 있어요. 제가 어렸을 때 여성정치인은 다 남장을 했어요. 그런데 오늘의 여성정치인은 여성으로서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발휘해요. 자기의 여성성을 버리지 않아요. 박정희 시대의 테제와 안티테제는 이제 근원적으로 초극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새로운 테제를 제시해야 됩니다. 박정희라는 테제는 국가주도형 경제발전 모델과 관료중심의 권위주의 통치철학, 요 두 가지일 뿐이에요. 물론 여기에 덧붙여 분단·반공이데올로기, 영남패권주의적 지역주의가 백업하고 있지만 그 핵심은 앞서 말한 두 가지입니다. 근본적으로 국가주도형 개발 독재 모델과 권위주의 통치철학을 초극해야 합니다. 요즈음 젊은 세대들을 바라보면서 스타크래프트 게임의 맵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느끼거든요. 맵이 바뀌면 종족도 바뀌고 유닛도 바뀌어야 돼요. 결국 박정희는 20세기의 산물이구나! 20세기라는 이 시대로부터 우리가 벗어나지 않으면 21세기의 새로운 리더십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저는 도지사로서 지방정부에서 이 새로운 리더십을 실험해왔습니다. 근본적으로 새로운 시대정신을 가지고 문제를 풀어야만 대한민국도 발전하고 야권도 승산이 있다는 것이지요. ‘현재의 정치적 구조 내에서 호남과 충청이 단결하고 영남에서 표 좀 긁어오면 우리가 이길 수 있다!’ 이런 공식은 김대중까지가 끝이에요. 역사는 순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동일하게 반복하는 법은 없어요. 야당이 집권하는 길은 이제 김대중의 길도 아니고, 노무현의 길도 아닙니다. 새로운 전략으로 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 새로운 전략은 20세기의 낡은 리더십과 근원적으로 결별할 때만이 가능한 것이죠.”

나는 안 군의 언변의 대강의 뜻은 이해했지만, 새로운 리더십에 관한 제도적 개혁이나 구체적 방법론에 관한 것을 아무리 추구해도 끝내 말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그의 청사진을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었다. 제도적 개혁을 말하면 그는 항상 지도자의 신뢰가 우선이라고 말한다. 신뢰를 획득하는 구체적 방법론에 들어가면 또다시 애매해지고 만다. 논리로 다 해결할 수 없는 깊이가 그에게 있는 것일까? 내가 안 군의 의식의 우물에 직접 풍덩 빠질 수가 없기 때문에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좀 더 들어봐야겠다!

“예를 들면, 사드문제를 가지고 이야기해보죠. 대통령은 군주가 아닙니다. 민주공화국인 우리나라 헌법에 의하면 대통령의 권력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위임받은 사안에 국한되는 것입니다. 사드배치? 새로운 군 무기체계를 만들자는 것이군요. 이 결정은 누가 할 수 있을까요? 만약 사드 문제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른 법률적 위임 내의 사안이라고 한다면 그건 연합사령관이 결정을 하면 그만이죠. 그러나 우리 국토에 무기를 설치하는 문제는 한미연합사령관에게 위임될 사안이 아닙니다. 자아, 그러면 그 권한을 대통령이 결정할 수 있나요? 그것은 안 돼요! 그러면 헌법에 따라서 의회비준에 준하는 동의와 합의절차를 거쳐야만 하는 것이죠. 중소기업 사장처럼 내가 결정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군주적 착각은 민주주의 리더십에 대한 근원적 오독입니다.”
 
법과 제도가 국민들을 사기 치지 않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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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2월 23일 안희정 지사가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부인 고 박영옥 여사의 빈소를 찾아 김 전 총리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들으면 설득이 되는 좋은 얘기이지만 나는 민주주의 리더십을 창출하기 위한 제도적 개혁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는 한, 나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주면 그러한 새로운 리더십의 본을 보여주겠다는 얘기로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지금 대통령이 어떻게 되느냐? 올방귀 뀌어 대통령이 된다손 치더라도 어떠한 새로운 리더십의 제도를 제시할 것인가? 이것이 문제가 아닌가?

“어떠한 제도도 사람들의 불문율적인 합의와 신뢰가 없으면 성립할 수 없어요. 모든 것을 제도로써 풀어나갈 수 있다고 하는 제도 만능주의는, 법치(法治)만 필요하고 인치(人治)는 필요 없다는 얘기랑 똑같아요. 극단적인 법가라고 하는 상앙(商?: 기원전 4세기 진효공 시대의 법가)도 과연 인치를 배제했겠습니까?”

그러면 안희정은 순결한 유가(儒家)인가? 그런데 그는 또 이렇게 말한다.

“인치를 또 군주적인 위임통치라고 막연하게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죠. 그것은 민주주의 리더십이 아닙니다. 제가 도지사를 하면서 서산의 가로림 조력발전소에 대한 찬반의 문제로 고통을 받았을 때 똑같은 주제가 부각되었지요.”

조력발전이란 밀물과 썰물 때 해수면의 차이를 활용하여 발전하는 방식이다. 반드시 방조제를 설치해야 한다. 찬성하는 사람들은 2조 원의 대규모 투자가 이루어지니 경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고, 관광객 유입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반면, 반대하는 사람들은 갯벌면적이 실제로 30% 줄고 해수교환율도 19% 정도 낮아지므로 경제성 있는 바지락어장이 대부분 사라진다고 본다.

“찬성자의 말도 맞는 말이고, 반대자의 의견도 맞는 말이지만, 이 말도 옳고 저 말도 옳다는, 부처님 가운데토막 같은 얘기 아무리 해봐야 소용이 없지요. 문제는 우리가 만들어 놓은 ‘환경영향평가’제도라고 하는 공정성을 살려서 결론을 내야 합니다. 이것은 법과 제도의 통치지요. 단지 이 법과 제도로써 사람들을 유도할 때, 이 법과 제도가 당신들을 사기 치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를 얻어내는 힘, 바로 그 힘이 지도자의 덕성이지요. 저는 결국 서산의 위대한 갯벌을 살렸어요. 지도자는 대한민국 5000만 국민 모두의 공익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는 행보를 정확히 쌓아가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지금 정치인들은 그렇게 하지 않고 갈라 쳐요. 노동자 갈라 치고, 종북좌빨 갈라 치고, 친일파 갈라 치고, 독재자 딸 갈라 치고, 이렇게 갈라치면 공화국에 대한 지도력을 애초로부터 형성하질 못해요.”

도대체 나를 신뢰하고 대통령 만들어주면 제왕적 대통령제를 나는 없애겠다, 뭐 이런 얘기는 아무리 해봐야 소용이 없잖아!

“현재의 헌법구조와 법률구조만 가지고도 얼마든지 국민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어요.”

하여튼 안 지사는 법치와 인치의 새로운 테제를 말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인치, 즉 인간의 덕성이나 인식체계를 더 중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중앙일보 본지에서도 썼지만 안 군의 논리를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그는 또 이런 말도 했다.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수학여행 갔다가 어머니에게 효자손을 사다 드렸어요. 저는 어머니께서 등 긁으시는 모습이 너무도 안쓰러워 좋은 선물이라고 생각해서 갖다 드렸더니 그것으로 등은 안 긁으시고 회초리로만 쓰시더라구요.”

결국 이 말은 제도적 변화가 바람직한 방향으로의 사회적 변화를 곧바로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에게는 분명 유교적 가치가 매우 뿌리 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안 지사가 충청도 양반동네에서, 특히 노인층에게 인기가 높다는 평판도 무관한 것 같지는 않다. 그는 나에게도 평소 깎듯이 예의를 차린다. 그렇다면 그에게는 제도적 개선이라는 확고한 복안이 없는가? 그는 분명 개헌은 지금 시점에서 무의미한 짓이라고 말한다. 그는 확실한 개헌반대론자이다. 의원내각제나 선거구개편 문제보다도 더 시급한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그게 무엇인가? 그는 말한다.

“자치분권(自治分權)이죠.”

그는 치열하게 지방자치를 주장한다. 나 도올은 사실 지방자치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우리나라는 <춘향전>의 나라이다. 전라도 남원의 기녀의 문제 하나도 자체에서 해결할 능력이 없다. 이몽룡과 변학도는 자체의 실력으로 대결할 수가 없다. 변학도의 폭정이나, 춘향이 보고 수청 들라는 정의롭지 못한 요구도 지방 자체의 결정에 의해 해결할 수가 없다. 이몽룡은 중앙에 올라가 어렵게 과거를 봐야 했고, 과거시험에 합격해서 임금으로부터 얻은 권위를 가지고 내려와서만 변학도를 칠 수가 있다. 중앙의 개입이 없이는 지방의 인권이 보장될 길이 없다. 이러한 사태는 분명 잘못된 것이다. 비극적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극적 사태가 중앙의 위탁을 받은 암행어사의 힘에 의하여 해피엔딩으로 전환될 때 우리 민중은 쾌감을 얻는다. 자학과 환희의 모순된 이중주가 한국인의 정서코드에는 배어있다.
 
“국가가 국민들의 것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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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 지사는 도올에게 “자치분권 국가의 수립이야말로 차기 정부가 수행해야 할 가장 중요한 책무 중 하나”라는 신념을 피력했다.

춘향이의 비극은 이몽룡의 힘에 의해서가 아닌 지방 자체의 정의로운 합의에 의하여 판결이 나야 한다는 발상은 분명 우리 사회의 획기적 진보를 이룩하는 사건이다. 그 대강에 관하여 나는 동의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너무도 지방자치의 역사가 축적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지방자치의 실행이 자연파괴, 전시행정, 토호들의 부패, 지방언론의 저열성, 경제적 빈곤의 상대적 가중 등등 수없는 문제를 야기시킨다. 게다가 노태우·김영삼·김대중 대통령에 이르는 지도자들은 결코 지방 자치에 대하여 본질적인 비전이 있는 인물들이 아니었기에 너무 정치적 이득과 관련된 피상적인 차원에서 그 틀을 짰다. 진정한 지방자치가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안 지사와의 토론을 통하여 결국 우리가 민주주의 국가를 지향한다면 어차피 부작용이 심하더라도 자치분권의 심화를 통하여 이 나라의 문제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현재까지 진행된 지방자치의 성과라도 긍정적인 것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프랑스는 30년의 논쟁을 통해서 2003년에 자치분권 국가임을 선언했어요.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다’라고 선언한 것처럼 프랑스는 자치분권국가임을 선언한 것이죠. 이 길만이 백성이 주인 되는 민주주의 원리로 나아가는 길이거든요.”

참고로 말하자면 현재의 프랑스 제5공화국 헌법의 제1조, 공화국의 기본원리를 밝힌 제1조의 첫머리는 다음과 같다. “프랑스는 불가분의 비종교적, 민주적, 또한 사회적인 공화국이다. 프랑스는 출생, 인종, 또한 종교에 의한 차별이 없이, 모든 시민에 대하여 법률 앞에 평등을 보장한다. 프랑스는 어떠한 신조든지 존중한다. 프랑스의 조직은 지방분권화 된다.”

“생각해보세요. 일반적인 범부들이 살아가는데 대통령 볼 일은 거의 없어요. 수돗물 제대로 나오는지, 쓰레기 제대로 치웠는지, 어머님들이 가는 경로당이 따뜻한지, 어린이집 통학이 안전한지, 이런 것들은 다 지방정부 살림에 속하는 일이에요. 그저 국민들이 알뜰하게 살고, 골목길에 도둑놈 없게 만드는 것, 이런 것 모두 지방정부에게 떠넘겨주면 돼요. 이걸 모두 중앙정부가 깔고 앉아 가지고 별의별 간섭을 다 하잖아요. 기획재정부 앞 복도에 줄 세우고, 또 예산 철이 되면 국회 복도에 줄 서야 해요. 팔도강산 사람들이 죄다 몰려와가지고 예산 한푼 더 얻겠다고 줄 서는 꼴 좀 보세요.”

“이명박 대통령이 선거 때 충청권 표를 얻겠다고 중이온가속기와 실험단지를 만들어준다고 해놓고 결국은 전국팔도 강산에 싸움을 붙였어요. 이런 것은 과학계가 결정할 문제가 아닙니까? 대한민국 미래의 과학발전을 위한 중요한 국가연구시설의 투자를 과학계를 제쳐놓고 정치권의 권력투쟁으로 만들었죠.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중이온가속기실험실은 그냥 대덕에 놓아두고 나머지 랩은 전국 여덟 군데에다가 분산해서 2000억, 3000억씩 다 주겠다는 거예요. 세상에 이런 놈의 엉터리 정책이 어디 있냐고요. 왜 이 꼴이 됐나요? 정치가 과잉돼 있기 때문이죠.”

“나만 믿어! 이 오빠만 믿어! 세상에 그 오빠를 누가 믿습니까? 국가와 정부를 믿어! 국민들이 국가와 정부를 믿지 않아요. 국가가 내 것인 적이 한 번도 없었거든요. 오빠와 남편이 내 것인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저놈은 맨날 나가서 자기 인생 사는데! 바로 이 구조를 깨야 합니다. 민주주의시대의 어떠한 과제도 함께 풀지 않고서는 풀릴 수가 없어요. 정치인들, 정부가 다 쌩 거짓말쟁이가 되어버렸거든요.”

“농촌문제요? 우리나라가 결코 농업지원을 안 하는 나라가 아니에요. 현재 우리가 연간 13조∼14조원가량의 농업예산을 써요. OECD 국가 중에서 국가재정에서 농업재정이 차지하는 비율로 보면 우리가 톱에 들어가요. 그러나 농민들이 현장에서 뭐라고 하는 줄 아세요? 13조, 14조? 내 주머니에 들어오는 건 한푼도 없어. 국가가 농민들과 대화를 안 하기 때문이죠. 근본적으로 농업재정구조가 바뀌어야 합니다. 그나마 저의 세대가 끝나면 농촌은 이제 무참한 시장논리로 짓밟혀요. 농업재정을 오히려 지금 시장의 수요공급 기반 위에서 자율적 직불금 제도를 강화하면서 지켜내야 합니다. 그러나 국가는 반드시 농토를 지켜야 합니다. 절대농지를 자꾸 해제만 하고 있어요. 농토 없애버리는 국가는 반드시 망해요….”

아이고 어쩌나? 안 지사의 개탄과 한은 끝이 없었다. 아이고 어쩔거나! 아이고 어쩔거나! 나는 당나라시대 시인 백락천 장한가(長恨歌)의 마지막 구절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천장지구유시진(天長地久有時盡)

차한면면무절기(此恨綿綿無絶期)

천지는 장구하여도 어느 날엔가 끝날 날이 있겠다마는 이 인간의 한은 면면히 이어져 끝날 날이 없겠구나!

기획·진행=한기홍, 김포그니 월간중앙 기자 glutton4@joongang.co.kr
사진=오상민 기자 o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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