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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고 돈 덜 드는 성당 결혼할래요”…명동 250쌍, 약현 140쌍 추첨 몰려

중앙일보 2016.10.21 02:27 종합 2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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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부부들이 지난 16일 서울 중구 중림동 약현성당에서 2017년 혼인미사 일시를 배정받기 위해 추첨표를 뽑고 있다. [사진 김춘식 기자]

가을비가 내린 지난 16일 서울 중림동 약현성당에 남녀 커플이 모였다. 대부분 한 우산 아래서 손을 꼭 잡고 걸어왔다. 이들은 성당 사무실로 가 번호표를 받았다. 이 번호표들은 잠시 뒤에 이들의 희비(喜悲)를 갈랐다. 이날은 약현성당 2017년도 혼인미사 추첨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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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부터 진행된 추첨식에 예비부부 140쌍이 참석했다. 약현성당에서는 금요일과 토요일에 혼인미사를 올릴 수 있다. 특히 3~5월의 토요일이 인기가 높다. 이때 예식을 올리려면 적어도 50번 안쪽의 추첨표를 뽑아야 한다.

“엄숙한 분위기, 서약식 느낌 좋아”
3~5월 토요일 원하는 커플 많아
50번 뒤의 순번 땐 예식 못 치러
명동성당 결혼식비용 500만원
“호텔에 비하면 수천만원 아껴”
신자들 “주말마다 혼잡” 지적도

성전 제단 앞에 달력이 붙은 화이트보드와 추첨표가 든 통이 놓였다. 오전 9시 제일 먼저 성당에 도착해 번호표 1번을 받은 권구현(34)씨는 “원래 다니는 성당은 송파구에 있는데 약현성당이 워낙 예쁘다고 소문이 나 꼭 여기에서 결혼식을 하고 싶다”며 초조해했다. 예비부부들이 번호표를 다 받자 번호표 순서대로 추첨표를 뽑는 시간이 왔다. 번호표 1번 권씨가 뽑은 추첨표는 101번이었다. 그의 연인 홍예슬(27)씨가 권씨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추첨표를 뽑는 내내 탄식과 환호가 교차했다.

매년 가을이 오면 결혼을 앞둔 수많은 연인이 성당으로 모인다. 인기 혼인미사 장소인 약현성당·명동성당 등이 예비부부들을 상대로 내년 예약 추첨을 하기 때문이다. 지난 5일 명동성당 추첨식에선 수요일 평일임에도 250쌍의 연인이 참여해 155쌍이 결혼식 날을 정했다. 성당 결혼에는 조건이 있다. 신랑·신부 중 최소 한 명은 신자여야 한다. 혼인교리 수업을 받고 신부(神父)와의 면담도 거쳐야 한다. 일반 예식장에 비해 주차나 편의시설도 열악한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기는 나날이 높아진다. 한명숙 약현성당 사무장은 “지난해 추첨식 때보다 15% 정도 사람이 늘었다”고 말했다.

성당에 온 예비부부들은 결혼식장으로 성당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예식장 결혼과 달리 성당 특유의 엄숙한 분위기가 좋다”고 입을 모았다. 내년 5월 약현성당에서 예식을 치르는 이우경(32)·임이랑(30) 커플은 “기계에서 물건 나오는 듯한 결혼이 아닌 경건하고 조용한 결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2년 뒤에 성당에서 결혼하기로 약속한 전영준(29)·함수진(26) 커플도 “결혼 전에 여러 단계의 절차를 거치는 게 결혼을 ‘서약’한다는 느낌이 들어 더 좋다”고 말했다.

고급 예식장이나 호텔에서의 결혼식보다 비용이 덜 든다는 이점도 있다. 지난 8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혼인미사를 올린 직장인 김모(34)씨는 “가장 인기 있는 성당임에도 결혼식을 하는 데 300여만원 정도 들었고 여기에 1인당 3만원이 조금 넘는 식사비가 추가됐다. 호텔 결혼식에 비하면 수천만원을 아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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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식장으로 인기가 많은 서울 약현·명동·역삼·방배 성당(왼쪽부터). [사진 김춘식 기자]

명동성당·약현성당 외에도 서울에서 ‘결혼식 명소’로 주목받는 성당들이 있다. 고풍스럽고 우아한 외형을 갖춘 성당들이 특히 인기가 있다. 붉은 벽돌의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서울 역삼동성당이 대표적이다. 방배동성당은 배우 설경구와 송윤아가 결혼식을 올려 주목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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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가톨릭 신자는 이런 상황을 걱정하기도 한다. 성당이 주말마다 북적이게 돼 종교 시설로서의 기능이 약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 때문이다. 명동성당은 내년도 혼인미사부터 대성당 기본 혼인비용 항목 중 하나인 봉헌금을 120만원에서 320만원(내년부터 적용)으로 인상했다. 폐백 등의 선택사항을 제외하면 파이프오르간·합창·주례·앨범 등이 포함된 기본 결혼비용은 500만원이다. 차츰 혼인미사 수도 줄여나가기로 했다.

이 성당 관계자는 “명동성당은 역사적인 종교 시설이자 문화재인데 인기 결혼식 장소로만 인식되는 것이 우려돼 금액을 올리는 것”이라면서도 “이런 방침에도 불구하고 희소성이 더 커진다는 생각 때문인지 예약 경쟁은 오히려 치열해졌다”고 말했다.

글=홍상지·김나한 기자 hongsam@joongang.co.kr
사진=김춘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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