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패산 총기사건] 총격 출동 번동파출소엔 방탄복 한 벌도 없었다

중앙일보 2016.10.21 02:01 종합 8면 지면보기
지난 19일 서울 강북구 오패산터널 인근에서 사제총을 난사한 성병대(46)는 서버이벌 게임용 방탄복을 입고 있었다. 반면 그의 총격으로 순직한 번동파출소 김창호(54) 경감은 통상의 경찰 순찰복 차림이었다. “총소리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지만 보호 장비를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그는 왼쪽 어깨 아래 부분에 관통상을 입어 숨졌다. 성병대는 그 뒤 서울 강북경찰서 소속 이모 경위가 쏜 총에 맞았지만 크게 다치지 않았다. 방탄복을 뚫은 총탄은 그의 피하지방에 박혔다.
기사 이미지

방탄조끼를 입은 총격사건 피의자 성병대(46)를 19일 경찰이 연행하고 있다. [사진 YTN 화면 캡처]

경찰청에 따르면 36명이 근무하는 번동파출소에는 방탄복이 한 벌도 없었다. 관할서인 강북경찰서가 보유한 총 4벌의 방탄복은 다른 지구대와 파출소에 있었다. 방탄복을 입고 사제총을 쏘는 범죄인에게 김 경관이 맨몸으로 맞설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총맞은 범인은 방탄조끼 입어 경상
순직 김창호 경감은 순찰복 차림
경찰 전국적으로 1001벌 보유

경찰이 전국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방탄복은 1001벌이다. 경찰 특공대와 관할 지역에 수렵장이 있는 경찰서 등에 주로 배치돼 있다. 단 한 벌도 보유하고 있지 않은 경찰서도 있다. 대부분의 지구대와 파출소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한 경찰관은 “자꾸 이런 일이 터지니 현장에 나가는 게 무서울 때도 있다. 방탄복·방검복이 필수적인 상황인데도 별로 변하는 게 없다”고 하소연했다.

경찰청은 지난해 2월 40여억원의 방탄복 구비 예산을 확보했다. 경기도 화성시에서 전모(75)씨가 재산분할 갈등으로 형과 형수, 현장에 출동한 이강석 경기도 남양파출소장을 엽총으로 살해한 사건이 계기가 됐다. 하지만 신형 방탄복 선정 등에 시간이 걸려 방탄복 지급을 늘리지 못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지급이 안 된 곳도 있겠지만 평균적으로 봤을 때 경찰서들이 4~5벌의 방탄복을 보유하고 있다”며 “지금의 방탄복은 오래된 1980년대 제품이라 품질 좋은 방탄복으로 구입하려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수렵총 사고 등이 있는데도 일선 지구대에 방탄복 지급을 안 하는 건 안일한 대응이다. 사제총으로 경찰에 대한 공격이 생기는 등 치안환경이 바뀌고 있기 때문에 장비는 물론 대응 매뉴얼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사 이미지

황교안 국무총리가 20일 서울 송파구 경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김창호 경감의 빈소를 찾아 조문한 뒤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있다. 황 총리는 “평생을 바쳐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온 고인의 헌신과 용기를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고 추모 글을 남겼다. 김 경감은 지난 19일 범인 성병대가 쏜 사제 총에 맞아 숨졌다. [뉴시스]


◆경찰, 구속영장 신청=강북경찰서는 20일 김 경감을 살해한 혐의(살인 등)로 성병대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이날 오전 그의 집을 압수수색해 컴퓨터 본체와 폭죽용 화약 등을 확보했다. 그가 범행에 사용한 사체총은 쇠파이프를 나무토막에 테이프로 감은 형태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인터넷을 보고 총을 만들었다”고 진술했다. 탄알은 지름 7.9㎜인 볼베어링(쇠구슬)을 썼다. 경찰이 이날 총 하나를 추가로 발견해 그의 주변에서 발견된 사제총은 17정으로 불어났다.

김창호 경감의 영결식은 22일 서울지방경찰청 장(葬)으로 치러진다. 고인은 경위에서 1계급 특진 추서됐다. 20일 오후 6시에는 전국 경찰관서 직원과 의경이 애도 묵념을 했다. 서울 송파구 경찰병원에 마련된 빈소에는 애도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유족에게 “평생을 민생치안 현장에서 범죄 없는 나라, 법질서가 존중받는 사회를 위해 헌신해 온 김 경감의 희생에 대해 많은 국민이 슬픔을 함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철성 경찰청장은 조문하며 경감 특진 임명장을 전달했다.

채승기·김나한 기자 che@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