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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러브 “내 별 몇 개와 수백만 목숨 바꾼 건 보람 있는 일”

중앙일보 2016.10.21 01:36 종합 16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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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러브

1977년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의 주한미군 철수 계획에 반기를 들었다는 이유로 본국에 소환돼 강제 퇴역당하면서도 소신을 굽히지 않았던 존 싱글러브(95) 전 유엔사령부 참모장이 ‘제4회 백선엽 한미동맹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국방부가 주관(중앙일보 후원)하는 백선엽 한미동맹상은 한·미 동맹 60주년을 맞은 2013년에 동맹의 의미와 중요성을 조명하고 미래 동맹의 발전을 위해 제정됐다. 수상자는 한미동맹상 메달(아래 사진)과 함께 중앙일보가 지원하는 상금 3만 달러(약 3400만원)를 받는다. 1회 수상자는 6·25전쟁 때 미 8군사령관으로 낙동강을 사수해 전세 역전의 기틀을 마련한 고(故) 월턴 워커 대장, 2회는 6·25전쟁에서 오른팔·다리를 잃는 부상 속에서도 투혼을 발휘한 윌리엄 웨버 예비역 미 육군 대령, 3회는 미8군사령관으로 참전했던 고(故) 제임스 밴 플리트 대장이다.

‘백선엽 한미동맹상’ 받은 예비역 소장
“주한미군 없으면 소련·중국이 침략”
카터의 철군 계획 맞서다 강제 퇴역
“분담금 더 내라는 트럼프 주장 잘못
내가 제대로 설명해 줄 생각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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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러브 전 참모장은 몸이 불편해 20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한민구 국방부 장관, 역대 주한미군사령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리는 시상식에는 참석하지 못한다. 전화 인터뷰에 응한 그는 “난 한국과 내 나라(미국) 양쪽에 올바른 행동을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77년 5월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5년 이내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겠다는 카터 대통령의 계획은 곧 전쟁의 길로 유도하는 오판”이라고 직격탄을 날린 그는 며칠 뒤 백악관에 호출돼 발언 경위를 추궁당했다. 30분간의 대통령 면담에서 그는 “주한미군 철수계획은 2~3년 전의 낡은 정보에 근거해 취해진 것이다. 현재의 북한군은 그때보다 훨씬 강하다”고 버텼다. 당시 세계 언론은 6·25전쟁 당시 해리 트루먼 대통령과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반목을 비유하며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세월이 지난 뒤 한국 관계자가 “그때 가만히 있거나 ‘발언이 잘못 전달됐다’고 했으면 별 몇 개를 더 달 수 있었을 텐데(그는 소장으로 예편함)…”라고 위로하자 “내 별 몇 개를 수백만 명의 목숨과 바꿨다고 생각하면 이 세상에 그 이상 보람 있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라 답했다고 한다.

싱글러브 장군은 중국 만주 지역 중앙정보국(CIA) 담당자를 거쳐 1949년 설치된 CIA 서울지부에서 중국 담당 책임자를 맡았다. 6·25전쟁 때는 가장 치열했던 김화지구 전투(53년 6월 강원도 김화~철원~평강을 잇는 ‘철의 삼각지대’ 일대에서 벌어진 미군과 중공군 간의 전투)에서 대대장으로 활약했다. 현재 싱글러브 장군은 재혼한 아내 조앤(83)과 테네시주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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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미국 하원 군사소위원회에 출석한 존 싱글러브 전 유엔사령부 참모장(왼쪽). [중앙포토]

수상 소감은.
“내가 받을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현재의 한국을 만드는 데 기여한 이들이 많고 난 단지 그 많은 미국인 중 한 명일 뿐이다.”
카터 대통령의 주한미군 철수를 왜 반대했나.
“49년 미군이 완전 철수한 뒤 북한이 50년에 전쟁을 일으켰던 것과 마찬가지 상황이 올 것이라 믿었다. 유엔사령부 소속으로 한국 방어를 책임지는 상황에서 (주한미군 철수 주장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래서 난 카터 대통령이 그런 결정을 했다면 누군가는 그게 잘못된 것이란 걸 그에게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워싱턴에 불려 들어가니 모두가 ‘잘못 인용됐다’고 말하라 하더라. 난 ‘(언론 보도는) 내 말을 매우 정확히 인용한 것’이라고 대통령에게 말했다. 난 공산주의자들이 어떻게 행동하는 줄 잘 알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주한미군 철수가 취소됐다.
“그때 미군을 철수했다면 분명히 소련과 중국이 북한을 돕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한반도로 쳐들어왔을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주한미군 분담금을 한국이 더 부담해야 한다. 아니면 주한미군 철수도 검토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은 주한미군을 돕기 위해 많은 돈을 쓰고 있고 큰돈을 주고 미국으로부터 무기도 산다. 트럼프는 이 같은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내가 그에게 제대로 설명해 줄 생각도 있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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