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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 글로컬] 안동댐 40년, 산업화 기여했지만 잃은 것도 많아

중앙일보 2016.10.21 01:03 종합 22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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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의호
내셔널부 기자

안동댐이 10월로 준공 40주년을 맞았다. 안동댐은 소양강댐에 이어 국내에서 두 번째로 건설된 다목적댐이다.

수자원공사 안동권관리단은 최근 안동댐의 성과를 정리했다. 안동댐은 개발연대 국가와 지역경제 성장의 주역이었다.

우리 경제의 도약기인 1970년대 낙동강 중·하류를 중심으로 구미(1973)와 창원(1974), 울산(1976) 등 대규모 공업도시가 계획됐다. 이들 도시가 성장하는데 가장 필요한 게 풍부한 용수였다. 이런 수요에 대비해 1971년 안동댐이 착공됐다. 안동댐이 공업도시를 키우고 경제를 발전시킨 초석이 된 것이다.

이뿐이 아니다. 연간 2만 가구가 사용할 수 있는 전력을 생산한다. 그동안 발전량만 2704억원 어치다. 2003년 태풍 매미 때는 안동지역에 234㎜ 집중호우가 내렸지만 끄떡없었다. 홍수조절 기능 덕분이다.

그렇다고 빛만 있는 것은 아니다. 댐이 드리운 그림자도 만만찮다. 불혹을 맞은 만큼 솔직한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댐 건설이 부른 생태계의 변화로 안개 일수가 늘어났다는 지적은 꾸준히 있어 왔다. 그때마다 도로 교통은 안전을 위협받고 과수 농사도 영향을 받았다. 진행형이다.

잊혀지는 더 소중한 과거도 있다. 안동댐 건설은 수몰민을 낳기도 했다. 3033가구 1만9657명이다. 당시만 해도 이들은 나랏일에 감히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주며 보상 등을 하라는 대로 따랐다. 일방적인 희생이었다.

그 과정에 간과된 가치가 있었다. 댐을 막으면서 사라지고 물에 잠긴 인문 자산이다. 안동댐이 들어서면서 도산서원 인근 낙동강변 전통마을 6곳이 물에 잠겼다. 오천·부포·부내·의인·하계·원촌이다. 바로 도산구곡의 무대다. 이곳과 청량산을 찬양한 선비들의 글만 5000편이 넘는다. 전통문화의 1번지나 다름없다. 농암 이현보의 17대 종손인 이성원(63)씨는 “댐을 막으면서 하회 같은 민속마을 6개가 졸지에 사라졌다”며 “댐 수위를 1m만 낮췄어도 지켜낼 수 있었다”고 아쉬워한다.

문화융성의 시대다. 당시 수자원공사는 사진 자료 하나 남기지 않았다. 이들 자산이 남았다면 댐이 가져온 경제적 이익에 못잖았을 것이다.

물에 잠긴 6개 마을을 늦었지만 미니어처 같은 것이라도 재현하라. 돌아갈 고향을 영영 잃어버린 수몰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새로운 관광자원이 될 수도 있을 테니.

송의호 내셔널부 기자 yee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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