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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급속 충전기 고작 606대 갖추고 전기차 팔라는 환경부

중앙일보 2016.10.21 01:00 경제 2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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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환
산업부 기자

환경부가 이르면 2018년부터 국내 자동차 회사에 ‘전기차 의무 판매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2018년부터 의무 판매제 도입 추진
목표 미달 땐 자동차회사에 과징금
충전인프라 비율, 미·일의 10% 미만
소비자들 “번지수 잘못 짚은 정책”


연간 판매량의 최대 2%를 전기차로 팔도록 하고 미달한 만큼 과징금을 부과하는 내용이다. 지난해 현대기아차와 한국GM·르노삼성차·쌍용차 등 국산 브랜드의 국내 자동차 판매량은 155만8000대다.

환경부 방침에 따르면 3만1000대를 전기차로 채우라는 얘기다. 환경부가 공격적으로 나선 건 전기차 보급 대책이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어서다.

전기차 보급을 늘리자는 취지지만 소비자 반응은 차갑다. 관련 기사엔 “충전소부터 충분히 세우고 충전료를 낮추는 게 먼저다” “전기차가 살만 하다면 소비자가 알아서 살텐데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는 식의 부정적인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한 국산 전기차 담당 부장은 “정부 방침에 따라야겠지만 의무 판매량을 못 맞춰 과징금을 낼 가능성이 크다”고 털어놨다.

전기차가 매력적이라면 소비자가 먼저 반응할 것이다. 하지만 전기차는 지금도 안 팔린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올 1~9월 국내 전기차 판매량은 2279대다. 지난해 같은 기간(2311대)보다 1.4% 줄었다. 반면 올 9월까지 전기차 판매는 미국이 16%, 일본은 18%, 중국은 75% 증가했다. 정부가 충전 인프라 보급에 적극 나선 덕분이다. 국내 전기차 보급이 지지부진한 건 충전 인프라가 부족해서다. 9월 기준 국내 전기차 급속 충전기는 606대다. 반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미국은 3만6547대 ▶중국은 4만9000대 ▶일본은 2만2000대의 급속 충전기를 설치했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미국은 충전기 1대 당 전기차 2대, 한국은 충전기 1대 당 전기차 17대가 나눠써야 하는 상황이다. 심지어 국내 전기차 충전기 상당수가 제주도에 몰려 있다. 환경부는 “충전기를 올해 말까지 330대, 내년 중 250대를 추가 설치할 계획”이라고 말했지만 소비자의 전기차 구매 욕구를 당기기엔 역부족이다.

환경부는 지난 6월 디젤차를 줄이고 전기차 보급을 늘리는 내용의 미세먼지 대책을 내놨다. ‘2020년까지 전기차 25만 대 보급’ 같은 장밋빛 청사진도 제시했다. 하지만 현재 전기차 등록 대수는 8168대다. 2020년까지 정부 목표를 달성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김필수 한국전기차협회 회장은 “환경부가 미세먼지 정국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장 상황·수요를 면밀히 고려하지 않고 무리한 전기차 보급 대책을 내놨다”고 지적했다.

독일이 자동차 대국이 된 건 탄탄한 ‘아우토반’ 고속도로 인프라가, 한국이 휴대전화 강국에 오른 건 사통팔달 뚫린 통신망이 한 몫 했다. 전기차 보급을 늘리고 싶다면 자동차 회사 팔을 비틀 때가 아니다. 탄탄한 충전 인프라부터 구축해 전기차가 맘놓고 달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전기차를) 팔아라, 그럼 살 것이다’란 생각은 너무 순진하다.

김기환 산업부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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