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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오적』에 매료, 영어 버리고 케냐어로 소설 써”

중앙일보 2016.10.21 00:50 종합 25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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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단골 후보인 케냐 소설가 응구기 와 시옹오. “문학상을 바라고 작품을 쓰지 않는다. 내 작품을 재미있게 읽었다는 독자를 만나는 게 작가로서 최고의 보상”이라고 말했다. [사진 박경리문학상위원회]

영국의 도박 사이트 래드브록스에 의해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 가능성이 가장 높은 작가로 점쳐졌던 케냐 소설가 응구기 와 시옹오(78)가 19일 한국을 찾았다. 국제문학상인 박경리문학상 6회 수상자로 선정돼 22일 상을 받기 위해서다.

박경리문학상 받은 응구기 와 시옹오
영국의 혹독한 식민통치 다룬 작품
『십자가 위의 악마』 세계적 주목 받아
“그 분이 김지하 장모란 사실 알고
상 받는 게 고귀하게 느껴져”

노벨 대신 박경리? 꿩 대신 닭을 마주한 심정인지 궁금해 하는 한국 기자들에게 응구기는 박경리(1926∼2008) 작가와의 인연을 강조했다. 20일 기자간담회 자리에서다. 그는 “수상을 통보받았을 때만 해도 박경리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인터넷을 뒤져 박경리가 시인 김지하의 장모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상이 고귀하게 느껴졌다”고 했다. 그 배경은 영국 식민치하에서 태어나 목격한 식민주의의 폐해를 영어 소설로 고발해온 그의 이력과 관련 있다.

1977년 자신이 희곡을 쓴 연극의 정치성이 문제가 돼 독재 정권에 의해 투옥됐을 때 그는 김지하의 장시 『오적』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내용과 스타일이 흥미로웠다는 것. 이는 곧 자신의 문학 언어에 대한 자각으로 이어져 그때까지 사용하던 영어를 버리고 케냐의 소수 언어인 모국어 기쿠유어로 소설을 쓰는 계기가 됐다. 영어식 세례명 제임스 응구기도 그때 지금의 이름으로 바꿨다. 영국으로부터 공식 독립은 1963년이지만 진정한 식민주의 극복은 언어 독립에서 시작돼야 한다는 생각이 작용한 결과다.

그는 사용자가 아무리 적은 소수 언어라도 나름의 가치와 의미가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스스로를 “언어 전사”라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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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노벨상 후보로 거론된다.
“4년 전에는 TV·신문기자들이 새벽 4시부터 집 앞에 진을 쳤다. 노벨문학상 발표 시간에 맞춰 내 집을 찾은 거다. 결국 상은 다른 작가에게 돌아갔는데 밤새 고생한 그들을 집에 들어오게 해 커피를 대접하며 위로했다. 많은 사람들이 내 문학이 노벨상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인정한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듯하다.”
밥 딜런이 상을 받았는데.
“간단히 말해 문학의 범위를 확장한 거다. 긍정적으로 본다. 음악인에게 상을 준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 같다.”
감옥에 갇히기 전 김지하를 알고 있었나.
“1976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한국문제 긴급 국제회의’에 초청받아 갔다가 김지하의 영어 번역 시집 『민중의 외침(Cry of the People)』을 손에 넣게 됐다. 『오적』도 그때 알게 돼 매료됐다. 이듬해 감옥에 갇혔을 때 『오적』에 영감 받아 기쿠유어 소설을 교도소에서 지급하는 화장지에다 쓰기 시작했다. 당시 교도소 화장지는 수감자를 벌주려는 목적이었는지 재질이 무척 딱딱했다. 그래서 오히려 글 쓰기 좋았다. 그때 쓴 작품이 내 첫 기쿠유어 소설 『십자가 위의 악마』다.”
모국어가 그렇게 중요한 이유는.
“식민지배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 지배국가가 피지배국가의 언어를 억압한다. 두 언어가 상하 위계질서 안에 배치돼 정치적 권력 관계를 반영한다. 나는 그런 현실에 반대한다. 모든 언어는 크든 작든 나름의 가치가 있다. 어떤 언어도 다른 언어보다 중요성이 크지 않다. 수평적으로 영향을 주고받는 네트워크 관계다. 그래야 한다.”
당신 문학의 핵심 주제를 꼽으라면.
“‘연결(connectedness)’이라고 말하겠다. 세상의 다양한 사람과 언어, 문화를 생각하면 할수록 나는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서로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고 느낀다. 가령 한 나라의 고유 전통에 대해 애기할수록 그 전통의 한계를 넘어서는 어떤 보편적인 요소를 얘기할 가능성이 많다. 언어도 마찬가지다. 모든 언어는 다르지만 모두 어떤 보편적 요소를 품고 있다. 그래서 나는 ‘문화 접촉은 문명의 산소’라는 말을 좋아한다. 다섯 명이 쓰는 언어라도 문학할 권리가 있고, 작가로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일은 다른 나라에서 내 작품을 읽은 사람을 만나는 거다.”
문학은 어떤 의미가 있나.
“사람 몸이 음식과 물, 산소를 필요하듯 사람의 정신은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 상상력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문학을 포함해 모든 예술은 바로 상상력의 산물이다.”

응구기는 현재 미국 어바인 캘리포니아대(UC 어바인) 비교문학 특훈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번에 함께 방한한 아내 쥐에리 와 응구기도 같은 학교 교수다.
◆응구기 와 시옹오
1938년 케냐의 소수언어인 기쿠유어 사용 부족에서 태어났다. 영국 리즈대학 등에서 공부했다. 『한톨의 밀알』 등 영국의 혹독한 식민 통치를 고발하는 영어소설을 많이 썼다. 식민주의 극복을 위해 언어도 독립해야 한다는 생각에 77년부터 기쿠유어 소설을 쓴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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