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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예술가들의 예술가 … 영화로 그를 만나다

중앙일보 2016.10.21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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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디렉션 홈:밥 딜런

뮤지션이며 가수, 예술가이며 작가. “위대한 미국 음악의 전통 속에서 새로운 시(詩)적 표현을 창조했다”는 평가와 함께 2016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인물. 하지만 밥 딜런에 대한 설명은 이 정도로 충분하지 않다. 그는 영화배우였고, 영화음악가였으며, 영화감독이었다. 어릴 때부터 ‘영화광’이던 그는 수많은 노래 가사에 영화 대사를 인용했고, 아트하우스를 드나들며 프랑스의 누벨 바그를 비롯한 유럽의 뉴 시네마 작품들을 접했다. 그의 음악을 OST로 사용한 영화는 600여 편에 이른다. 딜런을 만날 수 있는 영화들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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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임 낫 데어

영화를 통해 ‘밥 딜런’이라는 인물에 접근하고 싶다면, 두 편의 교과서가 있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다큐멘터리 ‘노 디렉션 홈:밥 딜런’(2005)과 토드 헤인즈 감독의 ‘아임 낫 데어’(2007)다. 전자가 거장 감독이 놀라운 솜씨를 발휘해 한 뮤지션에 대해 해부한 것이라면, 후자는 독특한 방식으로 재구성한 딜런의 삶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아임 낫 데어’가 흥미로운 건, 극 중 ‘밥 딜런’이라는 캐릭터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여섯 캐릭터는 모두 딜런의 삶을 어떤 ‘단계’로 보여 주는 ‘조각’들이다. 첫 인물은 우디(마커스 칼 프랭클린)다. 그는 딜런을 음악으로 이끈 스승이자 멘토 같은 인물 우디 거스리다. 딜런은 자서전 『바람만이 아는 대답』(문학세계사)에서 거스리의 음악을 처음 들은 순간의 감동에 대해 “신의 출현과도 같았다”고 표현했다. ‘아임 낫 데어’는 어린 시절 방랑하는 거스리의 모습을 보여 준다. 딜런의 어릴 적 방황기를 거스리의 삶에 겹쳐 놓은 것이다.

뮤지션 최초 노벨 문학상 수상자, 밥 딜런 관련 작품들

그리고 아서(벤 위쇼)가 등장한다. ‘시인 딜런’의 모습을 만나고 싶다면, 이 캐릭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극 중간중간 등장하며 딜런의 내면을 대변하듯 한두 마디씩 던진다. 마치 ‘시’처럼 말이다. 잭(크리스천 베일)은 대중이 새로운 목소리와 노래를 원하던 시대에 등장한 딜런의 모습이다. 그리고 한때 딜런의 연인이었던 조앤 바에즈는 ‘앨리스(줄리앤 무어)’라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케이트 블란쳇이 연기한 주드야말로 ‘아임 낫 데어’의 가장 놀라운 점이다. 이 영화로 제64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남자 캐릭터를 연기한 것으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블란쳇은 단순히 싱크로율 높은 외모뿐 아니라, 딜런의 내면을 드러내는 표정과 아우라로 관객에게 경이감을 선사한다. 통기타를 버리고 전기기타를 들었던 ‘란의 시기’의 밥 딜런이다. 마지막으로 빌리(리처드 기어)가 있다. 헤인즈 감독은 “빌리는 딜런의 숨겨진 얼굴”이라며 ‘딜런이라는 평범한 존재’를 드러낸다.

‘노 디렉션 홈:밥 딜런’은 딜런에 대한 다큐멘터리 중 가장 완벽한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딜런의 연대기와 공연 장면이 교차하는 방식으로 전개되는데, 스코세이지 감독은 ‘위인전을 쓴다’는 생각 따윈 없다는 듯 208분의 상영 시간 동안 딜런의 삶과 음악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좀 더 생생한 당대의 기록을 담은 작품으론 D A 펜느베이커 감독이 연출한 다큐 ‘돌아보지 마라’(1967)나 딜런이 직접 연출한 ‘잇 더 도큐먼트’(197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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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날도와 클라라

놀랍게도 딜런은 장편 극영화를 연출한 적 있다. 3시간 55분의 상영 시간에, 봤다는 사람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레날도와 클라라’(1974)가 바로 그 작품. 딜런과 함께 그의 아내 사라 딜런, 연인이었던 바에즈 등이 출연한다. ‘배우 딜런’의 시작은 샘 페킨파 감독의 ‘관계의 종말’(1973)일 듯. 이 영화의 음악을 맡은 그는 극 중 작은 역할로 출연했다. ‘하트 오브 파이어’(1987)에선 왕년의 록 스타 빌리 역으로 등장한다. 각본과 주연을 맡은 ‘가장과 익명’(2003, 래리 찰스 감독)은 한물간 뮤지션의 컴백을 그린 영화다.

그리고 딜런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영화는 조엘 코엔·에단 코엔 형제 감독의 ‘인사이드 르윈’(2014)이다. 1960년대 미국 뉴욕의 그리니치 빌리지를 배경으로 한 음악영화로, 엔딩에서 노래하는 한 남자를 놓치지 마시길 바란다.
 
밥 딜런이 사랑한 영화와 감독
‘이유 없는 반항’(1955, 니콜라스 레이 감독) 딜런이 열네 살 되던 해 가을에 본 영화. 그는 제임스 딘의 모습에 자신의 미래를 투영했다.

‘위험한 질주’(1953, 라슬로 베네덱 감독) 제임스 딘과 함께 틴에이저 시절 딜런을 사로잡았던 스타는 말론 브란도였다.

폭력 교실’(1955, 리처드 브룩스 감독) 폭력적인 교사에 맞서는 학생들의 이야기.

‘로니 브레이브’(1962, 데이비드 밀러 감독) 원제는 ‘Lonely are the Brave’. 커크 더글러스가 카우보이로 등장한다.

‘군중 속의 얼굴’(1957, 엘리아 카잔 감독) 외로운 방랑자는 우연한 기회로 스타가 된다.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길’(1954) ‘달콤한 인생’(1960) 딜런은 그리니치 빌리지의 아트하우스에서 유럽영화를 즐겨 보았는데, 이때 펠리니 감독의 영화를 접한다. “카니발 거울에 비친 인생 같았다”는 것이 그의 단평.

‘천국의 아이들’(1945, 마르셀 카르네 감독) ‘피아니스트를 쏴라’(1960,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 딜런이 연출한 영화 ‘레날도와 클라라’의 각본은 샘 세퍼드가 썼다. 당시 딜런은 세퍼드에게 “‘천국의 아이들’과 ‘피아니스트를 쏴라’를 보았느냐”고 물었고,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1959, 리처드 브룩스 감독) 테네시 윌리엄스의 희곡이 원작. 딜런은 연인 바에즈의 노래 ‘러브 이스 저스트 어 포-레터 워드(Love is Just a Four-Letter Word)’를 만들며, 이 영화의 대사를 인용했다.

존 포드·찰리 채플린 감독의 영화들 “존 포드 감독의 영화엔 용기와 용감한 행동과 구원 그리고 고뇌와 황홀함의 기이한 조합이 있다. 그는 이런 것들을 놀라울 정도로 드라마틱한 방식을 통해 보여 준다.”“찰리 채플린 감독은 나에게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내가 노래를 부를 때조차 그렇다. 난 항상 채플린의 떠돌이 캐릭터를 의식하는 것 같다.” 딜런의 말이다.
영화에 흐른 밥 딜런의 노래들

노킹 온 헤븐스 도어(Knockin’ on Heaven’s Door)’ in ‘관계의 종말’(1973, 샘 페킨파 감독)
딜런이 영화음악을 맡고 직접 출연도 했다. 빌리 더 키드(크리스 크리스토퍼슨)가 팻 개럿(제임스 코번)의 총에 맞아 죽어 갈 때 흐른다.

‘허리케인(Hurricane)’ in ‘허리케인’(1999, 노먼 주이슨 감독) 복서 루빈 카터의 삶에 대한 딜런의 노래는 이후 그에 대한 영화가 나오자 ‘당연히’ OST로 사용되었고, 딜런은 이 영화를 위해 노래를 다시 불렀다.

‘씽스 해브 체인지드(Things Have Changed)’ in ‘원더 보이즈’(2000, 커티스 핸슨 감독) 딜런에게 제73회 아카데미 시상식 주제가상을 안겨 준 노래. 시상식 당시 호주에 있었던 딜런은 위성 생중계로 공연했다.

‘블라인드 윌리 맥텔(Blind Willy McTell)’ in ‘아임 낫 데어’ 소년 우디가 방랑의 길을 갈 때 흐르는 이 노래는, 당시 흑인 공민권 운동과 관련된 영상과 어우러지며 강한 인상을 남긴다.

‘모스트 오브 더 타임(Most of the Time)’ in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2000, 스티븐 프리어스 감독) 이별의 고독에 빠진 롭 고든(존 쿠삭)을 위한 딜런의 위로곡.

‘더 맨 인 미(The Man in Me)’ in ‘위대한 레보스키’(1998, 조엘 코엔·에단 코엔 감독) 다소 몽환적인 볼링장 오프닝신을 장식하는 노래.

‘윅왐(Wigwam)’ in ‘로얄 테넌바움’(2001, 웨스 앤더슨 감독) 로얄(진 해크먼)이 손자들을 처음 만날 때 흐르는 노래.

‘포스 타임 어라운드(4th Time Around)’ in ‘바닐라 스카이’(2001, 캐머런 크로 감독) ‘프리휠링’ 앨범의 커버 이미지는 이 영화에서 톰 크루즈와 페넬로페 크루즈의 모습으로 인용된다.

‘잇츠 올라이트 마 아임 온니 블리딩(It’s Alright Ma I’m Only Bleeding)’ in ‘이지 라이더’(1969, 데니스 호퍼 감독) 원래는 딜런 버전을 사용하려 했으나, 판권 문제로 극 중엔 로저 맥귄의 노래가 실렸다.

‘레이니 데이 우먼 #12 & 35(Rainy Day Women #12 & 35)’ in ‘포레스트 검프’(1994,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 1960년대 미국을 이야기하는 영화에서 딜런이 빠질 수 없는 법.

‘더 타임스 데이 아 어 체인징(The Times They are A-Changin)’ in ‘왓치맨’(2009, 잭 스나이더 감독)
수퍼 히어로 영화에도 딜런의 음악은 흐른다.

‘이츠 올 오버 나우 베이비 블루(It’s All Over Now Baby Blue)’ in ‘처음 만나는 자유’(1999, 제임스 맨골드 감독)
세상에 적응할 수 없는 리사(안젤리나 졸리)를 위한 노래.

김형석 영화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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