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7인의 작가전] 나는 살해당했다 #10

중앙일보 2016.10.21 00:01
기사 이미지
모텔에서 나오니 맑았던 하늘이 뿌옇게 변해있었다. 일기예보를 확인하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곧 한바탕 퍼부어댈 기세다. 갑자기 비가 내리면 길이 막힐 게 분명하다. 처제를 태우고 차를 몰아 서둘러 큰길로 나왔다.
 
“학교로 데려다주면 되지?”
 
조수석에서 화장을 고치고 있는 처제에게 물었다.
 
“네, 오후에 꼭 들어야 하는 전공 강의가 있어요.”
 
콤팩트 거울을 들여다보던 처제가 흘끗 나를 쳐다보니 싱긋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내도 미인이지만 처제에겐 언니와는 다른 매력이 있다. 훨씬 더 도발적이고 통통 튀는. 특히 입술이 도톰하니 육감적이다.
 
“차가 안 밀리려나.”
 
나는 방금 칠한 입술에 입을 맞추고픈 충동을 가까스로 누르고 내비를 켰다. 학교까지 최단거리 루트를 설정하고 내비의 안내를 기다렸다.
 
“참, 처제.”
 
“네?”
 
“요즘 장모님 어떠셔?”

 
슬쩍 물어보면서 흘끗 처제의 눈치를 살폈다.
 
“엄마요?”
 
처제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쳐다봤다. 내가 무엇을 물어보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식당 말이야. 언니 말로는 잘 안된다고 하던데…….”
 
“아아.”

 
그제야 알겠다는 듯 처제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많이 힘든가?”
 
나는 지나가는 투로 물었다.
처제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잠시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요새 엄마랑 이야기할 새가 없어서…….”
 
“그래?”
 
“근데 예전만 못한 거 같긴 해요. 잘은 모르지만. 영업도 일찍 마치는 거 같고. 홀에서 일하는 이모 말로는 단골도 많이 준 모양이에요.”
 
“이모? 장모님 외동 아니셨어?”
 
“아, 그냥 이모라고 부르는 아줌마 있어요. 연변에서 온 조선족 아줌마.”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장모의 식당을 들렀다가 마주친 기억이 있다. 퉁퉁한 몸매에 넉살이 좋아 보였던 조선족 여자.
 
“장모님도 그렇고 불경기가 너무 오래가서 큰일이네.”
 
“형부네 회사도 안 좋아요?”

 
처제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냥 좀 그래.”
 
나는 건성으로 대답하며 내비게이션의 모니터를 확인했다. 도착 예정 시간이 앞으로 20분이나 남았다.
 
“처제, 미안한데 여기서 내려줄 테니 택시 타고 가면 안 될까? 택시비는 줄게. 너무 늦어서 지금 서둘러 가도 한소리 들을 거 같아.”
 
“그래요, 그럼.”

 
딴에는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지만 얼굴에 서운한 기색이 서려있었다.
 
“미안해.”
 
나는 지갑에서 오만 원 권 지폐를 네 장을 꺼내 처제에 건넸다. 아침에 차 실장이 수리비를 하라고 준 돈이다.
 
“택시비 하기엔 너무 많은 돈인데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처제는 넙죽 돈을 받아서 챙겼다. 금세 표정이 밝아졌다. 돈에는 장사가 없는 법이다.
 
“친구들이랑 맛있는 거 사 먹어.”
 
“고마워요, 형부.”
 

처제는 내 뺨에 입을 맞추고는 차에서 내렸다. 생글생글 웃으며 손까지 흔들어준다.
 
“전화할게.”
 
“네, 조심해서 가세요.”

 
처제가 택시를 잡을 때까지 지켜보다가 차를 돌려 회사로 향했다. 디지털시계를 보니 벌써 정오를 훌쩍 지나 오후 한 시가 가까웠다. 글러브박스를 열어 잠시 꺼두었던 휴대전화의 전원을 켰다.
부재중 전화가 무려 열여덟 통. 수신된 메시지도 서른 개가 넘었다. 모두 한 사람의 것이었다.
 
“쳇. 부장 새끼, 똥줄이 타나 보네.”
 

고한덕 부장.
내가 속한 총무부를 총괄하는 부장이자, 대학 동문이며 나의 은밀한 공범. 미우나 고우나 우리는 한 배를 탄 운명이다.
나는 잠시 호흡을 고르고 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부장님, 접니다.”
 
아니나 다를까. 부장은 전화를 받자마자 욕설을 퍼부어댔다. 어차피 계속 듣고 있어봐야 본론은 한참 뒤에 나올 테고, 쓸데없는 에너지를 낭비하기는 싫어서 미간을 찡그리며 잠시 수화기를 뗐다.
기사 이미지
후드득.
예상했던 대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몇 방울 떨어지는가 싶더니 이내 장대비로 바뀌며 지붕을 세차게 두드렸다. 덕분에 수화기에서 흘러나오는 부장의 목소리도 빗소리에 묻혀버렸다.
 
“아, 예. 죄송합니다. 저도 지금 돈을 만들어보려고 백방으로 노력 중입니다.”
 
한바탕 욕을 쏟아낸 부장은 다소 목소리를 누그러뜨리며 채찍에 이어 당근을 꺼냈다. 내게 성을 내봐야 딱히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봐야 잠시 기분은 나아지겠지만 근본적인 해결 방법이 없는 한, 불안을 떨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부장이나 나나 입장은 똑같기 때문에 서로 척을 지어봐야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다. 지금은 서로 머리를 맞대고 타개책을 궁리해야 한다.
 
“어디요? 아, 그 카페요. 그러죠. 십 분 안으로 도착합니다. 네, 거기서 뵙죠.”
 
부장은 회사에서 조금 떨어진 커피숍에서 만나자고 했다. 흔하디흔한 프렌차이즈 브랜드가 아니라 유한마담처럼 보이는 30대 여자가 사장으로 있는 커피숍인데 한때 부장이 그 여자를 자빠뜨려보겠다고 열심히 드나들던 곳이다.
 
잠시 차를 도로변에 세웠다.
회사가 아닌 밖에서 부장을 만날 생각을 하니 편두통처럼 머리가 지끈거렸다. 솔직히 부장만 아니었으면 지금 이렇게 골머리를 앓지 않았을 거다. 모든 것의 시작은 부장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염병할.”
 
운전대를 손바닥으로 내리치고 차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비가 쏟아지는데 어떤 젊은 여자가 어울리지 않게 커다란 개를 산책시키고 있었다. 그것도 우산도 없이 비를 맞아가면서. 그런데 분명히 처음 보는 여자인데도 묘하게 낯이 익은 얼굴이었다.
 
어디서 봤을까?
그런 의문이 들었을 때 나도 모르게 차에서 내려 여자에게 다가갔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저기요.”
 
여자가 걸음을 멈추고 나를 쳐다봤다. 데리고 있는 개도 덩달아 고개를 들고 나를 쳐다봤다. 개에 워낙 관심이 없어서 품종은 모르겠지만 상당히 덩치도 크고 사납게 보였다. 딱히 개를 무서워하지 않는데도 누런 눈과 마주치자 괜히 오싹해져서 무의식중에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그런 나를 보고 여자가 피식 웃었다. 꼭 비웃는 것 같았는데 이상하게 익숙한 기분이 들었다.
 
“도화?”
 
뭔가에 홀린 듯 그 이름을 입에 올렸다.
여자가 이번에는 싸늘한 표정을 지었다.
 
“강형수.”
 
나는 얼어붙었다.
여자가 내 이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그만 돌아와.”
 
돌아오라고? 이 여자,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갑자기 두려워졌다. 처음 보는 여자가 나를 알고 있다는 것도 그렇고, 데리고 있는 개도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본능적으로 이 개가 나를 물어뜯을 거란 두려움이 일었다.
 
컹! 컹!
마치 내 불안을 읽기라도 한 걸까. 얌전히 숨을 헐떡이던 개가 별안간 사납게 짖으며 당장에라도 달려들 것처럼 굴었다.
지금 보니 목줄을 하고 있지 않았다.
이런 사나운 개를 데리고 다니면서 목줄도 하지 않다니! 나는 오한을 느끼고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하지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떤 보이지 않는 손이 내 발목을 강하게 붙들고 있는 것처럼 아무리 용을 써도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나는 두려움에 이빨을 딱딱 부딪쳤다.
 
“오, 오, 오지 마!”
 
나는 황망히 손을 저었다.
그 손을 개가 물었다.
이상하게 아프지 않다.
이빨을 손목에 깊이 박았는데도 통증은 물론이고 피도 나지 않는다. 다만 정신이 아득해질 뿐이었다.
여자가 다가왔다.
 
“돌아와, 강형수. 안 그럼 정말 소멸해.”
 
소멸?
그때였다.
갑자기 주위가 거대한 장막에 둘러싸인 것처럼 시커멓게 변했다.
고함 소리가 들리고, 개들이 짖는 소리가 들렸다.
쇠와 쇠가 부딪치는 소리도 들린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어떤 건물 안의 복도에 서 있었다. 그리고 커다란 개가 내 목을 물고 거칠게 흔들고 있었다.
 
“정신 차려!”
 
도화였다.
가운을 걸친 도화가 달려와 신칼로 나를 물고 있는 개를 내리쳤다.
개가 비명을 지르면서 연기처럼 모습을 감추었다.
 
“이년이 계속!”
 
최 상사, 그 무시무시한 영감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순간 화재 경보가 울렸다.
곧이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복도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노인을 따르던 개들이 스르륵 사라졌다.
흘끗 고개를 돌리니 어느 틈에 달려갔는지 도화가 비상벨을 누른 채 노인을 향해 비릿한 미소를 날렸다.
 
“망할 년, 두고 보자.”
 
노인이 씩씩거리더니 곧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어 어딘가로 사라졌다.
도화가 숨을 몰아쉬며 나를 쳐다봤다.
 
“아슬아슬했어, 당신.”
 
나는 뭔가 대답을 하려고 했지만 갑자기 눈앞이 하얗게 변했다.
그러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기사 이미지

작가 소개
창작그룹 <화담>대표.    
소설가,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등
 
주요 출간작 >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카르마,
우리가 연애를 하기 위해 알아야 할 것들,
한국스릴러문학단편선(웅진 시작), 한국 환상문학단편선(웅진) 기획 및 작품 수록
영화소설 '열한 시', '또 하나의 약속', '수상한 그녀' 등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