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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범의 쏘울루션] ④분노조절장애 “도저히 화를 참을 수가 없다”

중앙일보 2016.10.17 15:06
그녀는 고등학교 선생님이다. 어느 날 교무회의에서 의견 충돌이 생겼다. 학교 재단의 비리에 관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 결과였다. 용기를 내 바른 말을 했다는 자신의 생각과 달리 학교 측에 동조하는 동료 교사들로부터 심한 말을 들었다.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고, 수모를 당한 기분이었다. 사실 회의 때 그녀를 나무란 사람들은 평소에 그녀와 같은 생각을 나누던 교사들이었다. 이들을 대변하기 위해 목에 힘줄을 세웠는데, 도리어 역공을 당하고 나니 큰 배신감이 밀려왔다. 너무 당황해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화를 삭이면서 꾹 참아야만 했다.

집에 돌아와 일을 되짚어보니 자기 혼자 다 뒤집어 쓴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순식간에 돌변해 자신을 공격했다는 생각에 분하고 억울했다. ‘그래 두고 보자, 반드시 되갚아주마!’ 자기도 모르게 가슴에 복수심을 키웠다. 다시 교무회의가 열렸고 그녀는 다시 한 번 강한 분노를 표출하며 격렬하게 항의했다. 화를 주체할 수 없어 기물을 파손할 정도였다. 이 일로 학교측으로부터 징계를 받았고 소문은 학교 전체에 파다하게 퍼졌다. 학생과 동료들에게 외면당하면서 학교 생활은 점점 힘겨워졌다. 그럴수록 분노는 계속 치밀어 올랐다. 나를 멸시하는 사람들을 죽이고 싶은 충동까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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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몸에서 이상한 현상이 생겼다. 그 사건 후로 가슴 아래 명치 부위가 답답하고 돌덩이가 있는 것처럼 꽉 막힌 느낌이 들었다. 등에서 후끈 달아오르는 열감도 있었다.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다. 위염 진단을 받았고, 대장엔 폴립(polyp, 용종)이 발견돼 제거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낫지 않았다. 그날의 사건을 떠올릴 수록 증세는 더욱 심해졌다. 몸까지 아파오니 감정은 더욱 격해졌다. ‘모두 다 죽이고 싶다’며 서서히 감정 통제 불능 상태에 이르렀다.

마음의 문제는 그 마음에 깔려있는 바탕을 찾아내야 근원적으로 치유할 수 있다. 그렇게 해야만 모든 게 정상으로 회복된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녀는 병원에서 분노조절장애 진단을 받았다. 무모하고 충동적인 행동을 보이면서 점점 심해졌다면 반사회적 인격장애로까지 갈수도 있다. 모든 대상과의 관계를 전투와 대결 구도로만 인식하는 것이다. 그녀는 교무회의에서 싸우듯이 발언을 했고, 다른 선생님이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졌다고 생각하기보다는 ‘나를 무시한다’고 여기게 됐다. 그러면서 가슴에 울분을 품었고, 점점 복수심을 키워갔다. 급기야 감정을 통제 못하고 극단적인 상황까지 몰고 간 것이다.

이런 분노조절장애를 고대 치유서인 상한론(傷寒論)에서는 어떻게 표현했을까? “분노가 생기면 가슴에 품고서 괴로워하며 가슴 아래에 단단한 덩어리처럼 굳어지는 것이 곧 결흉이라는 병이다.” 고대인들은 분노가 일어나는 부위를 가슴으로 보았고, 그 가슴에 엉켜 있으면서 응어리가 맺힌다고 관찰했던 것이다.(大陽病, ?浮而動數, 頭痛, 發熱, 微盜汗出, 而反惡寒者, 表未?也. 醫反下之, 動數變遲, 脇內拒痛, 短氣躁煩, 心中懊?, 陽氣內陷, 心下因?, 則爲結胸, 大陷?湯主之.)

여기서 우리는 ‘결흉’(結胸)이란 글자에 집중해야 한다. 쉽게 풀어보자. 결은 실 사(?)와 길할 길(吉)로 이뤄져 있다. 여기에 가슴 깊숙한 곳을 표현한 흉(胸)이 합쳐져 있는 글자다. 한마디로 가슴에 무언가가 실타래처럼 엉켜 있다는 것이다. 종합해보면 가슴에 분노를 품었다가 머리 끝까지 분노를 표출하는 번(煩)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위에서 예로 든 교사의 문제만은 아니다. 화가 나 가슴이 답답한 기분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미 분노의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몇 가지 사례를 보자. 변심한 애인의 가족을 처참하게 살인하는 끔찍한 사건, 유산을 다른 형제들보다 적게 준다고 부모를 살해하는 반인륜적 사건, 정치적 노선이 다르다고 배신의 정치를 운운하며 끝까지 낙마시키려는 행태, 개인의 불행을 사회적 불만으로 치환시켜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을 죽이는 ‘묻지마 살인’, 종교적인 갈등으로 인한 테러까지 가정·학교·직장 곳곳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 그 기저에 바로 분노가 있다.

이런 분노조절장애의 심리적 바탕은 바로 ‘적개심’이다. 자기를 무시하거나 좌절시키는 상태가 오면 억울한 감정을 가지게 된다. 그 억울함을 ‘꽁’하게 가슴에 품고 지낸다. 그 ‘꽁’한 것이 ‘응어리’가 돼 적개심은 쌓이고, 점점 복수심이 커져간다. 그러다 급기야 감정이 통제가 안 되고 분노가 폭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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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교사는 왜 적개심이 생겼을까? 그의 삶을 보자. 어린 시절 그는 독선적인 아버지에게 항상 무시를 당했다. 매사 자신의 뜻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고 아버지의 의도대로만 진행됐다. 아버지로부터 ‘너는 그런 것도 못하나’, ‘네가 뭐 할 수 있냐?’와 같은 말을 자주 들었다고 한다. 그는 원래 문학도가 꿈이었다. 마지막 진로마저도 아버지가 틀어버렸다. 결국 그는 사범대로 진학했고, 아버지의 뜻대로 선생님이 됐다. 이미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에 대한 적개심과 복수심을 품고 있었고, 이후에 이것이 발현된 것이다.

이런 적개심을 없애는 방법은 무엇인가? 가슴에 ‘응어리’를 풀어야 한다. 가슴에 분노를 품는다는 것은 ‘피해의식’에서 출발한다. 다른 사람들은 그런 의도가 아닌데 본인이 잘못 해석해 적대적인 감정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는 구체적인 방안은 첫째, 가슴을 여는 것이다. 억울한 감정이 생기면 그 자리에서 바로 표현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오래 쌓아두면 가슴에 엉키어 이후엔 풀 수 없는 단계로 간다. 마치 실타래가 엉키면 풀 수 없듯이 골이 깊어진다. 둘째, 가슴에 맺힌 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해야 한다. 매사에 직설적인 방법보다 대화하듯이 편안하게 전달하는 스킬을 익혀야 한다. 셋째, 상대에 대한 지배성을 버려야 한다. 상대에게 지적하는 습관, 싸워서 이겨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라는 의미다. 마지막으로 가슴에 힘을 빼야 한다. 모든 상황을 혼자서 가슴으로 버티고 인내하려 하지 말고 마음을 풀고 이완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위 교사에게도 실제로 ‘어깨, 가슴에 힘을 빼세요’라고 지도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그는 스스로 힘이 들어가고 굳어진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어린 시절 그가 겪는 일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이 과정을 통해 그는 아버지의 행위가 딸을 사랑하는 방식 중 하나였음을 깨닫게 됐다. 그러면서 조금씩 피해의식을 버리게 됐고, 마음도 부드러워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동시에 ‘아!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구나’하는 반성과 참회를 했다.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큰 전환점이 된 것이다. 그의 남편은 ‘아내가 달라져 제가 너무 편해졌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그동안 아내에게 얼마나 압박을 받았는지 충분히 감지할 수 있었다. 그렇다! 행복은 나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내가 변하면 세상은 변하게 돼있다. 내가 행복하면 세상이 행복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탓이로소이다’라는 글귀가 새삼 실감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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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영범의 쏘울루션]은 현대인이 겪는 여러 마음의 질환을 다루고, 고대 의학서인『상한론(傷寒論)』을 통해 해결 방법을 찾아본다. 총 10회에 걸쳐 연재될 예정이다. 저자인 노영범 한의사는 30년 노영범 부천한의원 대표원장으로 활동하면서 공황장애, 우울증, 주의력 결핍 등 신경정신질환 전문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다. ‘한의계를 움직이는 파워엘리트 21인’으로 선정된 바 있고, 2007년부터는 한국소비자보호원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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