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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 돌발상황 누가 결정권 갖나? 계약이론으로 풀다

중앙일보 2016.10.17 00:48 종합 20면 지면보기
올 노벨 경제학상 받은 두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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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노벨 경제학상 공동 수상자인 올리버 하트 하버드대 교수(왼쪽)와 벵트 홀름스트룀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 계약이론의 권위자들이다. 두 사람은 1995년 『기업 계약과 금융구조(Firms contracts and financial structure)』를 공동 집필했다. [일러스트=노벨상 위원회]

퀴즈 하나.

올리버 하트 하버드대 교수
모든 직원 업무 일일이 계약 불가능
갑작스러운 일 최종결정권 구도 연구
금융·법률·기업지배구조까지 영향

벵트 홀름스트룀 MIT 교수
노력 끌어내는 성과급 필요하지만
측정 가능한 분야만 힘쓰면 부작용
성과기준 등 업적설계 중요성 강조

4명의 친구가 피아노를 함께 나른다. 피아노는 워낙 무겁기 때문에 넷이서 동시에 들어야 옮길 수 있다. 하지만 반드시 4명 모두 최고로 힘을 써야 옮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한 사람이 조금 힘을 덜 써도 나머지 셋이 최대한 애쓰면 피아노를 옮길 수 있다. 물론 이렇게 한 사람이라도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면 하루에 10대를 옮길 수 있는 피아노를 9대밖에 못 옮기게 될 것이다. 도대체 누가 힘을 덜 쓴 것인지 밝히기 어렵기 때문에 책임을 묻기 힘들고 그래서 해결이 쉽지 않다. 경제학에서 ‘공동 작업에서 도덕적 해이(moral hazard in teams)’라고 부르는 이 문제의 해법은 무엇일까. 퀴즈의 답은 이 글 마지막에 소개하겠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올리버 하트(68) 하버드대 교수와 벵트 홀름스트룀(67)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가 창시한 경제학의 계약이론(contract theory)은 이처럼 우리 실생활과 멀리 있지 않다.

계약이론은 특히 조직이 사람들을 고용해 운영하는 계약을 주요 연구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제 ‘계약이 왜 필요한가’부터 살펴보자. 자유시장경제의 핵심은 시장이다. 그래서 ‘시장경제’라고 하는 것이다. 한데 시장은 다양하다. 아주 시장다운 시장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시장도 있다. 방송국의 아나운서들을 예로 들어 보자. 아나운서 중에는 특정 방송사의 직원이 있는가 하면 여러 곳의 방송사에서 일하는 프리랜서 아나운서도 있다. 둘 중 어느 쪽이 더 시장다운 시장에서 일하는 것일까? 프리랜서 아나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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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하트 하버드대 교수(왼쪽)와 벵트 홀름스트룀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

시장이란 더 돈을 많이 주는 쪽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기본이다. 하지만 특정 방송국에 소속된 아나운서들은 다른 방송국에서 출연료를 많이 준다고 해도 나갈 수 없다.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가 그렸을 법한 완전한 아나운서 시장이 형성돼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오전 4시 서울 모처에서 아나운서 시장이 열릴 것이다. 대한민국의 아나운서와 방송 책임자들이 모두 이곳에 모여 오늘 어떤 아나운서가 어느 방송국에 가게 될지 흥정을 한 뒤 거래가 이뤄지면 오전 6시 뉴스를 진행할 아나운서를 구한 방송 책임자들이 아나운서를 차에 태우고 서둘러 방송국으로 달려갈 것이다.

당연한 것이지만 이런 방법으로 방송국을 운영하는 건 정말 피곤하고 힘든 일이다. 시청자들은 어째서 매일 아나운서의 스타일이 바뀌느냐며 혼란스러워할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방송국은 직원이란 형태로 사람을 고용해 한 직장의 일만 하도록 하고 있다. 아나운서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다. 일이 있다 없다 하는 식으로 불규칙하게 소득을 얻는 것보다는 조직에 소속돼 꾸준하게 임금을 보장받는 것이 더 좋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기업이나 조직이 직원을 채용하면 계약을 맺어야 한다. 30여년 전 이런 계약의 중요성에 처음 착안해 연구한 이들이 바로 하트와 홀름스트룀 교수다. 계약이 중요한 이유는 계약 내용에 따라 직원들이 기업과 조직이 원하는 일을 잘 수행할 수도 있고 반대로 잘 수행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성과급 문제도 계약이론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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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로 일하던 아나운서가 방송사 직원이 되고자 하는 이유는 바로 안정적인 일자리를 확보하기 위한 것인데, 바꿔 말하면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았기에 전보다 덜 노력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어느 정도의 성과급은 직원들의 노력을 이끌어 내기 위해 필요하다. 홀름스트룀 교수는 성과급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제대로 설계되지 못한 성과급이 가져올 폐단도 지적했다. 일단 성과에 따라 급여에 큰 차이가 나게 되면 애써 직원이 된 의미가 없어질 수 있다. 기껏 프리랜서를 포기하고 직원이 됐는데 성과가 나쁠 경우 월급이 크게 줄어들 수 있어서다.

성과 수준의 측정도 문제다. 예를 들어 방송국엔 아나운서 외에 대본을 써 주는 작가도 있고 카메라맨도 있다. 이들 각각의 기여도를 정확히 측정하지 않은 채 지나치게 성과급을 도입하면 오히려 일의 능률이 떨어질 수도 있다. 또한 선생님이 학생을 지도함에 있어서 학생의 성적에 따라 선생님의 급여가 달라지도록 하면 확실히 학생의 성적이 오르겠지만 인성교육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지도해 봐야 월급이 오르지도 않는 인성교육보다는 성적 위주의 교육만 강조하는 바람에 성적은 뛰어나지만 인성에 문제가 있는 학생들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계약이론에서는 직원들의 성과를 정확히 측정해야 하고 인성과 같이 측정하기 어려운 점을 고려해야 할 경우에는 성적처럼 측정 가능한 분야만 강조하는 성과급 도입은 주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공동 수상자인 하트 교수는 계약의 또 다른 한계인 불완전성에 대해 연구를 많이 했다. 아무리 낮은 직급의 직원이라 하더라도 이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을 계약서에 기입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교수도 강의만 하는 것이 아니라 논술 채점, 면접 등의 입시 업무와 학생들의 면담 업무가 있고 유학·취직을 위한 추천서도 매년 수십 통을 써 줘야 한다. 교육부가 요구하는 서류를 작성하는 것도 교수의 일 중 하나다. 그런데 교수와 대학이 이런 수백 가지 업무에 대해 계약조항을 의논한다는 것은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럼 계약서에 나와 있지 않은 새로운 업무를 해야 하는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계약이론에서 ‘불완전 계약(incomplete contract)’이라고 부르는 이런 경우에는 하급 직원이 상급자의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다. 일상적이지 않은 상황이 발생했을 때 누가 상급자로서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지가 정말로 중요해지는 것이다. 우리는 신문이나 방송에서 거버넌스(governance) 또는 지배구조라는 단어를 자주 접하게 되는데, 바로 불완전한 계약 아래서 돌발상황이 발생하면 최종결정권을 누가 가지고 있는가의 문제라고 해석할 수 있다. 당신의 회사에선 돌발상황이 터지면 누가 최종결정권을 가지는가. 하트 교수는 기업의 소유자들 간에 금전적인 권한이 큰 사람이 있는 반면 최종결정권이 큰 사람이 있는데, 이런 역할의 분담이 잘 이뤄지는 것이 거버넌스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자연히 금융 부문이나 더 나아가 계약을 다루는 법률 부문도 계약이론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 하트와 홀름스트룀 교수가 경제학에서 유명한 만큼 경영학이나 법학 분야에서도 유명한 이유다.

법률 분야에서 계약을 다루는 계약법에서는 불완전한 계약을 흠결(gap)이 있다고 말한다. 판사나 변호사의 역할은 개인들이 흠결로 남겨 둔 돌발상황이 발생하면 이를 대신 메워 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결혼을 할 때 신랑·신부는 혹시라도 미래에 이혼을 하는 돌발상황에 대해 계약을 맺지는 않는다. 하지만 막상 이혼을 하게 되면 정부에서 이 흠결을 메우기 위해 미리 준비해 둔 절차를 따르게 되는데, 이렇게 계약 관련 법률에 대해 새로운 이해를 할 수 있게 해 준 것도 계약이론이다. 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진 계약이라는 제도를 연구하는 계약이론은 노동 시장의 성과급에서부터 기업 최상위의 지배구조에 이르기까지 많은 분야에 적용되고 있다.

퀴즈의 답. 하루에 10대의 피아노를 옮기는 날에는 넷이서 똑같이 수입을 나눠 갖지만 9대 이하로 옮기는 날에는 그날 수입 전체를 고아원에 기부하는 것이다. 누가 속이고 힘을 안 줬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속인 사람이 있는 게 분명하니 ‘단체기합’을 받는 것이다. 몰래 힘을 빼면 피아노 9대를 옮기고도 돈을 못 받아 허탕을 치게 될 것이므로 네 친구 모두 최선을 다할 것이다. 이런 계약을 미래에는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한순구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게임이론·산업조직·법경제학 분야를 주로 연구하고 있다. 『인생을 바꾸는 게임의 법칙』 『대한민국이 묻고 노벨경제학자가 답하다』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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