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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저탄수화물 고지방 다이어트’가 답인가?

중앙일보 2016.10.17 00:20 종합 29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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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숙
숙명여대 식품영양학과 교수

장기적 감량 효과 불확실하고
체내 산성물질 늘리는 부작용도
생선 등 불포화 지방 섭취 늘리며
3대 영양소 고루 먹는 게 정석

한국영양학회 회장

최근 ‘저탄수화물 고지방 식사’가 유행하고 있다. 방송매체에서 체중감량뿐 아니라 혈당·인슐린·혈중지질 개선 등에 효과가 있다고 보도되면서 국민들의 관심이 커졌다. ‘저탄수화물 고지방 식사’는 체중감량을 위해 탄수화물 섭취비율을 극도로 낮추고 지방의 섭취비율을 늘리는 것이다. 보도를 접한 많은 사람은 체중 감소를 위해 탄수화물인 밥을 먹지 않거나 하루에 반 공기 정도만 먹고, 이를 보완할 열량을 육류로 섭취하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여 실천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식이요법은 새삼스러울 것 없는 이야기다. 1970년대 초 미국에서 심장전문의인 애킨스에 의해 ‘애킨스 다이어트’가 유행했다. 우리나라에선 2000년대 초반 일명 ‘황제 다이어트’가 인기를 끌었다. 육류 위주의 식단으로 짜인 ‘석기시대 다이어트’도 비슷한 개념이다. 이들은 모두 해외에서 이뤄진 일부 연구에 이론적 근거를 두고 있다. 비만 환자들이 6개월 이내의 단기간 동안 고지방 식사를 하면 저지방 식사를 할 때보다 체중감량 효과가 크다는 것이다. 포만감이 더 오래 지속되고 먹을 수 있는 식품 종류도 제한되기에 식욕이 억제되고 섭취량이 줄어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1년이 지난 뒤에는 두 식단의 체중감량 효과에 별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고된 바 있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고지방 식사는 오히려 심혈관계 질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 식사에 포함된 포화지방을 탄수화물로 일부 대체한 ‘저지방 고탄수화물 식사’와 불포화 지방산으로 일부 대체한 ‘지중해식 식사’가 포화지방산이 많이 포함된 식사에 비해 혈중 콜레스테롤 개선과 포도당 대사에 긍정적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따라서 미국 하버드 보건대 윌릿 박사는 심혈관계 질환을 줄이기 위해서는 적색 육류·버터·치즈 등에 많이 들어 있는 포화지방을 멀리하라고 권고했다. 대신 들기름·연어·올리브오일 등에 함유된 불포화지방산과 견과류·생선·콩류 제품 등을 많이 섭취해야 한다.

지금 관심을 받고 있는 ‘저탄수화물 고지방 식사’ 역시 ‘어떤 지방이든 많이 섭취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가공된 지방 식품이나 트랜스 지방을 제외한 가공되지 않은 고기, 등푸른 생선, 호두나 아몬드 등 견과류를 통한 지방 섭취를 권장한다. 또한 다양한 식이섬유나 미네랄 섭취를 위해 잎채소 및 식물성 열매를 많이 먹고 당분 함량이 높은 식품은 제한하며 물을 많이 마실 것을 권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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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탄수화물 고지방 식사’가 유발할 수 있는 매우 위험한 부작용에 대해서도 알아둬야 한다. ‘저탄수화물 고지방 식사’를 하다가 주요 에너지원인 탄수화물이 부족해지면 우리 몸은 지방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기 시작한다. 지방을 산화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케톤(산)은 위급할 경우 뇌가 당 대신 쓸 수 있는 에너지원이지만 동시에 인체에는 유독한 산성물질이다. 폐와 신장은 이러한 케톤산을 중화해 배출시키는 기능을 담당하고 있으므로 특히 폐와 신장 기능이 저하된 사람이 ‘저탄수화물 고지방 식사’를 장기간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할 수 있다. 또한 탄수화물 부족으로 뇌의 에너지원이 고갈돼 집중력 저하와 같은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2013년 유네스코는 20여 년 이상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지중해식 식단’의 우수성을 인정하고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 이 식단의 열량구성비는 탄수화물·단백질·지방의 비율이 45:30:30으로, 저탄수화물 고지방 식단과는 차이가 크다. 우리의 전통 식단도 지중해식 식단만큼 우수하다. 쌀 중심의 한국형 식단은 탄수화물·단백질·지방의 비율이 60:15:25로 이상적인 수치에 가깝다. 2012년 농촌진흥청과 미국 농업연구청의 공동연구에 따르면 미국에서 한식을 섭취한 비만 미국인의 심혈관계 질환 위험인자들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비만은 현대과학이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과제 중 하나다. 요즘처럼 다양한 먹거리가 사람들을 유혹하는 때도 없었다. 훗날 찾아올 수 있는 건강 적신호에 대한 두려움이 당장 먹고 마시는 즐거움을 누리려는 본능을 이기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누구나 알고 있듯이 먹고 싶은 걸 다 먹으면서 건강을 해치지 않고 다이어트에도 성공할 수는 없다. 인체가 에너지로 쓸 수 있는 영양소는 탄수화물·단백질·지방뿐이다. 인종이나 환경, 개인의 체질에 따라 이들 사이의 바람직한 구성비도 다를 수 있다. 유행보다는 자신에게 맞는 식사 패턴이 어떤 것인지 고민하고 선택적으로 수용하는 게 다이어트에 이롭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건강한 식생활’은 ‘다양한 음식과 식품을 골고루 적당히 먹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건강과 영양 측면에서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평범해 보이는 이 말보다 정확한 답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균형 잡힌 식사의 기본은 다양한 영양소를 고루 섭취하는 것이다. 한쪽으로 치우치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다는 진리는 식생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김현숙 숙명여대 식품영양학과 교수·한국영양학회 회장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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