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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설득이 없는 사회

중앙일보 2016.10.17 00:15 종합 30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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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규
코리아중앙데일리 경제산업부장

서울 동작구 여의대방로 16길. 보라매공원 정문 옆으로 구불구불 뻗은 이 길은 주변에 학교와 아파트뿐이어서 평상시엔 한갓지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을 정도로 조용하다. 그런데 요즘 이 길이 시끄럽고 어수선하다. 고성이 오가고 확성기를 동원한 시위까지 등장했다. 바로 ‘X밴드 레이더’ 때문이다.

이 길가에 위치한 기상청이 슬그머니 X밴드 레이더를 청 내에 설치하려 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주민이 반발하고 있다. 미국 업체가 제작한 X밴드 레이더는 고도 1㎞ 이하에 대한 기상정보를 정밀 분석하는 장치로 낮은 고도에서 돌발적으로 발생하는 기상이변 관측에 효과적이다. 최근 잇단 오보로 여론의 뭇매를 맞은 기상청이 서둘러 도입하려는 이유다. 하지만 지역주민은 이 레이더가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와 같은 주파수 대역(8~12㎓)을 사용한다며 전자파에 대한 안전성이 검증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역주민은 정부의 일방적인 행정에 더욱 분개하는 분위기다. “님비(NIMBY)가 아니에요. 법적 의무가 없다는 이유로 학교와 아파트 밀집지역에 레이더를 설치하는 중대한 사안을 사전에 아무 말 없이 덜컥 발표해 버리면 누가 가만히 있겠어요.”(50대 주부)

우리 사회에 설득이 사라졌다. 논란이 되는 사안을 보면 대부분 한쪽의 일방적인 발표와 다른 한쪽의 강력한 반발로 한 치 앞을 나가지 못한다. 사드를 성주골프장에 배치키로 한 것도 그렇고 서울대의 시흥캠퍼스, 이화여대의 미래라이프대학(평생교육 단과대) 설립 추진 등이 그렇다. 서울대 총학생회는 “학교 측이 시흥캠퍼스 실시 협약을 하기 전에 학생과 협의하기로 해놓고 약속을 파기했다”며 지난 10일 대학 본부를 점거했다. 학교의 일방적인 평생교육 단과대 신설에 대한 반발로 시작돼 대규모 경찰력 투입 사태까지 부른 이화여대 학생의 본관 점거 농성은 80여 일째 이어지고 있다.

지역주민이나 학생의 반발로 사업 추진이 더딜 것을 우려한 나머지 일단 사업을 발표하지만 강한 반대에 부딪히며 사업은 오히려 더 늦어지고 표류한다. 설득과 소통 없는 밀어붙이기식 강행은 막연한 불안감과 더 큰 반발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협상엔 설득이 필요하다. 설득은 경청과 공감에서 시작된다. 협상에서 공감은 비록 상대방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상대가 어떤 입장에 처해 있는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등을 이해하려는 노력이다. 이젠 속도와 효율만 강조하는 데서 벗어나야 한다. 한국이 선진국 문턱을 넘지 못하고 번번이 좌절하는 것도 이런 사회 분위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곳곳에서 갈등이 분출되다간 언젠가 폭발해버릴지도 모른다. 중대한 결정은 좀 더디더라도 서로 설득해가며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그동안 반복돼 온 ‘일방적 결정-발표-반발과 갈등’의 악순환 고리를 이젠 끊어야 한다.

김창규 코리아중앙데일리 경제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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