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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view &] 박 대통령, 정몽구·이재용과 독대하라

중앙일보 2016.10.17 00:01 경제 8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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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현
산업데스크

1999년 히타치와 NEC의 반도체 사업이 합친 뒤 2003년 엘피다로 이름을 바꿨다. 같은 해 미쓰비시도 가세했다. 반도체 신흥 강자로 떠오른 삼성전자를 따라잡기 위한 일본 반도체 기업의 합종연횡이었다. 당시 일본 언론은 이를 ‘히노마루(日の丸·일장기) 연합군’이라 부르며 선전을 기원했다. 이후 일본의 각 산업에서 제2, 제3의 히노마루 연합군이 속속 결성되고 있다. 2012년 소니·히타치·도시바의 디스플레이 부문이 합쳐져 재팬디스플레이(JDI)가 설립됐다. 조선 부문에선 미쓰비시중공업을 비롯해 상위 4개 업체가 사업 제휴에 나서기로 했다.

기업들간 합종연횡 활발한 일본
경제위기 올 때마다 힘 모아 대처
갤노트 사태, 파업에 흔들리는 한국
정부·기업 마주 앉아야 해법 나와


하이라이트는 자동차 산업이다. 지난 9월 도요타·닛산·혼다 등 5개 완성차업체가 커넥티드카(Connected Car) 개발을 위한 연합 조직을 내년 1월까지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지난 12일엔 도요타와 스즈키의 두 최고경영자가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환경·안전·정보기술(IT)에서 제휴하기로 했다.

이런 연합군이 어떤 성과를 낼지는 미지수다. 시조 격인 엘피다는 기대와 달리 2012는 파산해 미국 마이크론으로 넘어갔다. 디스플레이·조선·철강 등도 일본의 전력이 예전보다 약해진 산업인 까닭에 연합군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긴 쉽지 않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위기를 느끼고, 극약처방을 해서라도 이를 해결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우리 정부 관료도 있을 수 있겠다. “일본은 기업들 스스로 잘 뭉치는데 우리 기업도 좀 그러면 안되나”라고. 천만의 말씀이다.

히노마루 연합의 뒤엔 일본 정부가 버티고 있다. 연합을 조율하고, 돈을 대주고, 법으로 지원하는 일을 정부가 맡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게 2009년 일본 정부 주도로 설립된 민·관 협력펀드인 산업혁신기구다. 26개 기업과 정부가 3000억 엔을 공동 출자해 설립한 산업혁신기구는 재팬디스플레이 통합 설립에 핵심적 역할을 했으며, 도시바 등 대기업 구조조정에 깊숙이 관여했다.

아베 정부가 2014년 도입한 산업경쟁력법도 정부가 히노마루 연합을 지원한 대표적 사례다. 이 법에 따라 미쓰비시중공업과 히타치가 두 회사의 화력발전 부문을 통합해 미쓰비시히타치파워시스템즈를 설립했다. 통합으로 이 회사는 발전 부문에서 지멘스·GE에 이어 단숨에 세계 3위로 올라섰다.

이런 업체 간 합종연횡에 일장기란 단어가 붙으면서 국가주의, 심지어 군국주의의 냄새가 솔솔 난다. 그럼에도 일본이 부러운 건 우리의 현실 때문이다. 우리에게 ‘태극 연합’이라 부를만한 기업간 연대가 있었나. 외환위기 이후 ‘빅딜’이란 이름으로 업종 내 통폐합이 있었지만 요즘 일본에서 벌어지는 연합과는 성격이 다르다.

그나마도 지금은 어림도 없다. 조선업이 다 망한다고 몇 년 째 아우성인데 대우조선해양 하나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 해운은 어떤가. 대우조선해양 하나에 나랏돈 수 조원을 들이붓더니 세계 7위였던 한진해운은 3000억원이 모자라 공중분해가 눈앞이다. 수출도 비상이다. 올 들어 9월까지 금액 기준 한국 10대 수출품은 모조리 지난해 대비 수출액이 줄었다.

심지어 믿었던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마저 기우뚱하자 한국 경제는 공포 수준의 충격을 받았다. 또 경제 관련 부처의 수장을 바꿔야 하나. 대기업 목줄을 비틀어서 뭐라도 투자하게 해야 하나. 도대체 어떤 처방이 이 난국에 먹힐까.

이런 건 어떤가. 대통령이 직접 기업인들 만나 흉금을 터놓고 얘기해보는 것이다. 대통령이 이재용 부회장을 만나 삼성전자가 갤럭시 노트7 사태를 헤쳐가는데, 정몽구 현대차 회장에게 파업에 따른 수출 차질에 정부가 도울 일은 없는지 물어보는 것이다. 삼성과 현대차에 대통령이 바라는 것도 솔직하게 얘기하자. 이런 식으로 중견기업 오너도 만나고, 스타트업 사장도 만나라. 10명, 20명 한꺼번에 불러 사진 찍고, 인사말 하며 시간 때우는 형식적인 만남은 의미 없다. 독대하라. 독대가 어렵다면 난상토론이 가능하게 서너 명으로 참석 인원을 제한하라. 박 대통령이 남은 임기를 이렇게 보내면 재임 기간엔 어렵겠지만 후임 대통령의 임기 중반쯤엔 우리 모두가 웃고 있진 않을까. 히노마루 연합이 두렵지 않을 것이다.

김준현 산업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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