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유난히 삼성 때리는 미국…도요타도 당하며 넘어섰다

중앙일보 2016.10.17 00:01 경제 2면 지면보기
기사 이미지

도요타 아키오 도요타 사장이 2010년 2월9일 일본 도쿄 본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렉서스 급발진 사고로 촉발된 대량 리콜 사태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문제가 불거진 이후 세번째 사과였다. 그는 같은달 24일 미국 의회 청문회에도 출석해 “모든 책임은 내게 있다”며 고개를 숙였다. [중앙포토]

# “모든 책임은 내게 있다.” 2010년 2월 24일, 미국 하원 청문회에 출석한 도요타 아키오 도요타 사장은 고개를 숙였다. 이 회사 렉서스 ES350 차량의 급발진으로 캘리포니아주에서 일가족 4명이 숨진 사고가 난 지 6개월 만이다. 첫 사고가 알려진 뒤 “바닥 매트 때문에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았다”고 밝혔던 도요타는 “원인을 숨기는데 급급하다”는 비난 여론에 시달리다 프리우스·캠리를 포함해 1000만대 이상의 차량을 리콜하기에 이르렀다. 2009년 세계 1위에 올랐던 자동차 판매량은 2011년 4위로 추락한다.

세계 1위 아시아기업 제품 결함
초기 원인 못 밝혀 신뢰 떨어져
2년 만에 부활 성공한 도요타처럼
오너가 전면 나서 문제 풀지 관심

# “리콜 사태가 도요타에는 전환점이 됐다.” 2014년 3월 열린 일본자동차산업협회(JAMA) 기자 간담회. 도요타 아키오 사장은 “리콜 사태 후 도요타는 안전 기준 통과가 아니라 고객에게 안전하다는 느낌을 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사건 뒤 생산 방식을 전면 점검하고 안전 조치를 강화한 도요타는 2012년 세계 판매량 1위 자리를 되찾았다.

삼성전자의 갤럭시노트7 단종 사태를 2009년 도요타 대량 리콜 사태와 비교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세계 시장 1위를 달리던 아시아 기업이 ▶제품 결함으로 소비자 안전 사고를 냈다는 점과 ▶초기에 결함 원인을 제대로 밝히지 못해 시장 신뢰를 잃은 점 ▶미국 시장서 유난히 거센 비난 여론에 직면했다는 점 등이 비슷하다. 악재를 딛고 결국 재기에 성공한 도요타의 사후 대처에서 삼성전자가 눈여겨 볼 대목이 많다고 위기 관리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기사 이미지
사실 도요타 리콜 사태는 ‘위기 관리의 정석’과는 거리가 멀다. 우선 사태 수습에 시간을 너무 많이 끌었다. 일가족 사망 사고가 난 뒤 도요타는 제대로 된 원인을 내놓지 못했다. “바닥 매트가 문제였다”며 소비자들의 매트를 교체했지만, 사실은 브레이크 부품에 결함이 있었던 걸로 드러났다. 이에 비하면 삼성전자는 비교적 빠르게 움직였다. 처음 배터리 발화 사고가 알려진 뒤 9일 만에 전량 리콜을 발표했다. 신제품에서도 발화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6일 뒤에 아예 제품을 단종했다. 두 차례 모두 각국의 안전 당국이 나서기 전에 자발적으로 취한 조치다.

그럼에도 미국 시장에선 도요타와 삼성전자를 두고 “시장과의 소통이 너무 느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두 회사 모두 원인이 밝혀지기 전엔 시장에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는 아시아식 소통 방식을 따랐다는 얘기다. 위기 관리 전문가인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는 “한국·일본의 문화에선 확실한 결론이 나지 않으면 섣불리 입을 열지 않는 게 바른 소통 방식으로 알려져 있다”며 “이런 문화에 익숙치 않은 미국 소비자에겐 원인이 나오지 않았더라도 원인 규명 절차가 어디까지 진행됐고, 그 동안은 제품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등을 미리 알렸어야 했다”고 설명한다.

시장 1위 자리를 지키려 무리하다 화를 입었다는 점도 비슷하다. 도요타는 당시 생산 능력을 늘리려 해외로 하청 기업을 확대하다 품질 관리에 실패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삼성전자도 경쟁사인 애플을 의식해 제품 출시 시점을 당기다 문제를 야기한 걸로 알려졌다. 김현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노트7의 경우 렉서스처럼 직접적인 인명 사고를 내진 않았지만 큰 화재로 번질 수 있었다는 점에서 소비자들이 느끼는 불안감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고도 지적했다.

이런 유사점 때문에 미국 시장에선 유난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주목하고 있다. 결국 미국 의회 청문회에 직접 나서 공개 사과한 도요타 아키오 사장처럼 이 부회장이 전면에 나서 사태를 마무리할지를 눈여겨 보는 것이다. 빌 조지 하버드대 경영대 교수는 최근 경제뉴스 채널 CNBC에 출연해 “이 부회장이 미국 시장에서 공개 사과하고 미국 의회에 출석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를 전형적인 미국 언론의 외국 기업 때리기로 보는 시각도 있다. 자국의 경쟁사를 제치고 세계 시장을 장악한 아시아 기업에 대한 지나친 간섭이라는 주장이다. 도요타 급발진 사태 당시 미국 방송국들은 사고 당시 운전자가 구조를 요청하는 목소리, 도요타 자동차를 타다 사고 위기에 처했던 소비자들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 등을 수개월 간 되풀이해 내보냈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노트7 외에도 품질 결함이 있는 삼성전자 제품이 더 있다”며 그 동안 크고 작은 문제를 일으켰던 가전 제품들을 망라해 보도했다. 이병태 KAIST 경영대 교수는 “어느 사회든 자국 회사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외국 기업이 위기에 처하면 이를 더 크게 부각시키려는 분위기가 조성되기 마련”이라며 “미국 의회의 요청이 없는데도 이 부회장이 출석하라는 식의 과도한 흔들기에 응답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요타 사태는 품질과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높여 시장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는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조언이다. 송동현 밍글스푼 대표는 “리콜 사태 당시 도요타의 주가와 판매량은 ‘재기가 어렵다’고 전망될 정도로 고꾸라졌지만 지금은 리콜 사태 전보다 더 큰 회사로 성장했다”며 “삼성전자 역시 노트7 문제의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고 품질 개선 노력을 기울여 이 사태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임미진 기자 mijin@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