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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당신] 긴 간병에 장사 없다…배우자 12년 돌본 60대 “다섯 가지 약 먹어요”

중앙일보 2016.10.17 00:01 건강한 당신 4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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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병은 노인 건강을 위협하는 요인이다. 노인 환자를 돌보는 배우자는 일반인보다 사망률과 우울증 위험이 높다.

한국보다 고령화가 일찍 시작된 일본에선 최근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노노(老老) 간병’이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노인이 노부모나 배우자를 간병하는 현실과 후유증 때문이다. 고령화·핵가족화가 맞물려 노노 간병이 일상화되고 간병 부담을 못이겨 노인이 환자를 살해하거나 자살하는 사건이 잇따른다. 일본의 경우 연평균 100건을 넘는다. 한국이라고 자유롭진 않다. 노부부의 배우자 간병은 이미 눈앞에 닥친 현실이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간병하는 배우자들이 자기 건강을 먼저 챙기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와 함께 사회적으로 노노 간병이 낳는 악순환 고리를 끊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노인 건강 망치는 ‘노노 간병’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 사는 69세 여성 조성례(가명)씨. 그는 요즘 집에서 남편 최모(75)씨를 간병하고 있다. 2004년 5월 최씨가 근육위축성측삭경화증(ALS) 진단을 받으면서다. 이 질환은 팔다리에 힘이 없어지고 점차 근육이 굳어지는 병이다. 진단 2년 후부터는 최씨의 호흡에 지장이 생겨 인공호흡기를 달았다. 조씨는 하루 24시간 남편 옆에 붙어 있어야 한다. 대소변을 받아내고, 호흡곤란이 올 수 있어 때맞춰 가래를 뽑아준다. 조금이라도 열이 오르진 않는지 체크해야 한다. 조씨는 “남편을 간병한 뒤로는 12년 동안 단 하루도 쉬지 못했다”면서 “언제 닥칠지 모를 돌발상황을 신경 쓰느라 항상 긴장한다”고 했다.

그러다 남편을 간병하던 조씨도 탈이 나기 시작했다. 간병 전에는 가족력이 있는 고혈압 말고는 별 이상이 없었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는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갑상샘기능저하증까지 생겼다. 조씨는 “건강이 조금씩 나빠져서 이제는 혈압약, 고지혈증약, 골다공증약, 갑상선기능저하증약을 매일 먹고 있다”고 했다. 두 달 전에는 간 수치가 높아져 약을 더 먹어야 했고, 어깨 회전근개 파열과 우울증까지 왔다.
 
간병 배우자 건강 ‘빨간불’
속담에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있다. 노인 간병의 고통과 부담을 버텨내기 쉽지 않다는 의미다. 간병하는 사람이 같은 노인이라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노쇠하고 약해진 심신으로 이중고를 겪는다. 배우자를 돌보다 되레 본인 건강까지 나빠지는 늪에 빠진다. 분당서울대병원 노인병내과 김선욱 교수는 “일본은 60대 노인이 80~90대 노부모를 간병하는 게 문제지만 우리나라는 노인 환자를 간병하는 배우자의 간병이 현실적인 문제”라며 “배우자를 간병하다 환자보다 먼저 돌아가시는 경우도 꽤 있다”고 말했다.

노노 간병은 비슷한 경로를 거친다. 배우자가 질환에 걸리면 입원치료 후 집으로 옮겨와 돌본다. 환자가 귀가를 원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보통 수술 후 요양이 필요한 환자, 말기 암 환자나 치매 환자, 뇌졸중 등 치료 후 장애가 생긴 환자 등이다. 환자 스스로 일상생활이 어렵기 때문에 주변 사람은 하루 대부분을 환자에게 집중한다. 그러다 만성질환이 악화되거나 육체적·심리적 부담이 가중되면서 건강이 나빠진다. 강남성심병원 가정의학과 노용균 교수는 “노인 환자를 돌보는 배우자들은 환자 건강에 온 신경을 집중하다 정작 자신을 돌보지 못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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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배우자 사망 위험 1.63배
간병과 관련된 많은 연구에서 노인 환자를 돌보는 배우자의 건강상태는 상대적으로 나쁜 것으로 나타난다. 미국의학협회(AMA) 학술지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66~96세 노인 중 배우자를 간병하는 노인 392명과 간병하지 않는 427명을 4년6개월간 추적 조사한 결과 장애를 가진 배우자를 간병하지 않는 노인의 사망률은 일반인의 1.08배였다. 반면에 장애를 지닌 배우자를 간병까지 하는 노인의 사망률은 1.63배였다. 뉴잉글랜드의학저널(NEJM) 연구에선 배우자가 중환자일 경우 간병하는 배우자 중 67%에서 우울 증상이 나타났고, 43%는 1년 이상 지속됐다.

간병은 인지기능과 육체적 능력도 떨어뜨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행동의학협회(Society of Behavioral Medicine) 학술지에 실린 피츠버그대, 존스홉킨스대, 캘리포니아주립대학 공동연구팀의 연구 결과다. 심혈관건강조사(CHS) 표본 5888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는데, 간병 스트레스가 있는 그룹의 인지기능 검사(DSST) 점수는 38.9점으로 간병을 하지 않는 그룹(43.7점)보다 낮았다.

또 15ft(약 4.5m)를 걷는 시간은 간병 그룹이 5.5초였던 데 비해 간병을 하지 않는 그룹은 5.1초로 차이를 보였다. 말기암 환자 가족 간병인을 대상으로 한 국내 연구에서는 간병인이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는 스트레스를 받을 위험이 일반인의 2.54배,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위험이 5.44배였다.

김선욱 교수는 “일반적으로 ‘한 명의 노인 와상(臥牀) 환자가 있으면 세 명이 영향을 받는다’는 말이 있다”며 “간병 과정 자체가 육체적으로 힘들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감당하기 힘든 스트레스”라고 말했다.
 
자신만의 시간 가져야
가정에서 노노 간병을 하게 되는 덴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믿고 맡길 만한 곳을 찾기 어렵고, 맡기자니 경제적으로 부담이다. 더구나 환자가 낯선 환경보다 집을 선호한다. 하지만 보호자는 간병이 시작될 때부터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에 들어가는 셈이다. 휴식이 불가능하고 항상 긴장을 놓지 않는 상황에 빠진다.

전문가들은 “우선 자기 시간을 확보할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한다. 노용균 교수는 “간병하는 배우자는 하루 일과 중 간병에서 벗어나 있을 시간을 갖는 게 중요하다”며 “그래야 막혀 있는 숨통이 조금이나마 트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가족·친지의 도움을 받는 것이 가장 좋지만 여의치 않을 경우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나 가정간호제도를 활용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은 6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일상생활 기능 정도에 기반한 등급에 따라 방문요양, 방문목욕, 주·야간 보호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제도다. 가정간호제도는 퇴원 후 의사의 판단에 따라 가정에서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할 때 처방하는 것인데, 간호사가 일정 기간 방문해 의학적 처치를 주기적으로 해주는 서비스다. 김선욱 교수는 “노인 중에는 노인장기요양보험 존재를 모르거나 여기에 자신이 해당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상당히 많다”며 “신청 후 등급을 받으면 간병 지원을 받을 수 있어 부담을 한결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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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가 적극 치료받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대한치매학회가 치매 환자 125명을 대상으로 5개월간 일상생활지침을 실천토록 한 결과 적극적으로 실천한 군(群)의 간병 부담 점수(ZBI)는 19.6점, 소극적 실천군은 30.4점으로 차이를 보였다. 이 지수는 간병의 어려움 정도를 측정하는 척도(88점 만점)로 점수가 높을수록 부담 정도가 커진다.

전문가들은 또 확보한 시간을 반드시 간병인 자신을 위해 써야 한다고 강조한다. 노용균 교수는 “노인은 조금만 심신 균형이 깨져도 급격히 상황이 나빠질 수 있다”며 “간병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운동, 산책, 기도, 명상, 친구와의 대화 등 긍정적인 방식으로 푸는 게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류장훈 기자 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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