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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당신] 느닷없이 해고된 50대, 충격 커 호흡곤란·심장마비 올 수도

중앙일보 2016.10.17 00:01 건강한 당신 3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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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가 심장병 발생 위험을 높인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 중 스트레스성 심근병증은 가장 직접적이고 빠르게 심장을 위협한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스트레스는 현대인의 고질병이다. 편두통, 불면증, 위·식도 질환, 소화불량, 만성피로를 비롯해 수많은 질환이 스트레스 때문에 생긴다. 최악의 경우엔 심장마비에 이를 수 있다. ‘스트레스성 심근병증’이라 불리는 질환이다. 가족·친구와의 사별, 직장에서의 해고, 가정 불화나 이혼 같은 커다란 정신적 충격을 받으면 평소 심혈관질환이 없어도 위급 상황에 빠질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화병과 다른 ‘스트레스성 심근병증’

응급실로 환자 한 명이 실려 왔다. 호흡 곤란과 가슴 통증을 호소했다. 전형적인 심근경색 증상이었다. 막힌 심장혈관을 뚫기 위해 응급 시술이 준비됐다. 심장 초음파 영상에선 막힌 부분이 없었다. 다만 심장이 조금 이상하게 뛰고 있었다. 전체가 아니라 심장 입구만 뛰고 있어 마치 ‘항아리’처럼 보였다.

2014년 서울의 한 병원을 찾은 이명실(51·여·가명)씨의 사례다. 빠듯한 집안 형편에 느닷없이 해고를 통보받은 이씨가 갑자기 쓰러진 것이다. 이씨를 담당했던 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홍그루 교수는 ‘스트레스성 심근병증’이라고 설명했다. 이씨처럼 강한 정신적 충격을 받으면 평소 심장이 튼튼하더라도 심장마비 같은 위급한 상황에 이를 수 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우리 몸은 교감신경 스위치를 켠다. 스트레스를 심각한 위기로 인식해 심장 박동수를 늘리고 혈관을 수축시킨다. 긴장했을 때 손발이 차가워지고 식은땀이 나는 건 이 때문이다. 교감신경을 활성화하는 건 ‘카테콜라민’이라는 호르몬이다.

문제는 극심한 스트레스 때문에 카테콜라민이 과도하게 분비됐을 때다. 순간적으로 심장이 일종의 쇼크 상태에 빠진다. 평소엔 심장 전체가 수축하며 피를 밖으로 내뿜지만 이땐 입구만 수축하고 나머지 부분은 멈춰버린다. 일본에서 처음 발견된 이 질환은 심장이 마치 문어(たこ·다코)를 잡는 항아리(つぼ·쓰보)처럼 생겼다고 해서 ‘다코쓰보 증후군’이라고도 불린다.

이 질환은 화병(火病)과는 조금 다르다. 화병은 스트레스 강도보다 지속 기간이 원인이다. 한국 고유의 ‘문화 증후군’으로 보고된 화병은 오랜 기간 스트레스를 억눌렀을 때 나타난다.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오강섭 교수는 “스트레스로 두통이나 목·어깨 결림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일시적 증상에 그친다”며 “화병은 몸에 열이 나거나 가슴에 돌을 얹은 것처럼 답답한 증상이 수개월간 지속적으로 나타난다”고 말했다.

정신적 스트레스뿐 아니라 신체적 스트레스도 원인이 된다. 암·폐렴같이 중증이면서 만성적인 질환이 대부분의 원인이다. 전 세계 스트레스성 심근병증 환자 1109명을 분석한 결과, 정신적 스트레스가 원인인 경우는 36%, 신체적 스트레스 원인은 37%였다. 나머지 27%는 원인을 밝히지 못했다(2015·미국의학저널). 연구를 직접 진행한 송봉근뉴하트내과 송봉근(당시 건국대병원 심장내과) 원장은 “27% 환자에게선 직접 원인을 찾지 못했을 뿐 대부분 정신적 스트레스 때문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심근경색과 비슷 … 급사 위험은 적어
흉통·호흡곤란 같은 주요 증상은 급성 심근경색과 닮았다. 심장 초음파를 찍기 전까진 심장 전문의라도 구분하기 어렵다. 그러나 심근경색과 달리 심장혈관이 막혀 있지 않다. 급성 심근경색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의 0.7~2.5%가 스트레스성 심근병증이라고 보고돼 있다. 2014년 기준 급성 심근경색 환자는 3만3566명. 그중 어림잡아 800~1600명이 스트레스성 심근병증 환자라는 계산이다. 현실에선 이 숫자보다 많다는 주장도 있다. 진단 기준이 워낙 빠듯해 유병률이 낮게 집계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홍그루 교수는 “제대로 진단받지 못하는 환자를 포함하면 알려진 것 보다 두 배 이상 환자가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급성 심근경색만큼 위험하진 않다는 게 다행이다. 일시적인 호르몬의 과도한 반응이 원인이어서 심장에 영구적인 손상을 주지 않는다. 위기 순간만 잘 넘기면 대부분 저절로 회복된다. 치료도 쉽다. 혈압이 떨어지면 혈압을 올리는 약을 투여하고, 호흡이 가쁘면 인공호흡기를 다는 방식으로 치료한다. 송봉근 원장은 “급사 위험은 적다고 알려져 있다”며 “증상은 심하지만 치료 과정에서 심각해지지는 않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여성이 90% … 예민할수록 위험
재발도 거의 없다. 하지만 스트레스 원인이 해결되지 않으면 드물게 재발하기도 한다. 직장에서 심한 괴롭힘을 당하던 황인영(31·여·가명)씨 사례가 대표적이다. 괴롭힘을 당하던 중 흉통·호흡곤란으로 쓰러졌다. 검사 결과 스트레스성 심근병증이었다. 이내 회복하고 퇴원했지만 황씨는 같은 증상으로 세 번이나 더 병원을 찾았다. 결국 직장을 그만두고 나서야 건강을 되찾았다. 홍그루 교수는 “재발률은 2% 내외로 알려졌지만 원인이 없어지지 않으면 재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환자 입장에선 결국 평소 스트레스를 얼마나 잘 관리하느냐가 위급 상황을 피하는 관건이다. 송봉근 원장은 “우울증·공황장애·불안장애가 있으면 발생 가능성이 더 크다. 이는 예민한 성격일수록 취약하다는 의미다. 환자 90%가 여성이라는 점도 남성보다 스트레스에 예민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오강섭 교수는 “이 세상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사람은 없다”며 “중요한 건 이를 어떻게 해소하느냐다. 속으로 삭이지 않고 누군가와 이야기하며 표출해야 한다. 자신만의 취미를 갖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김진구 기자 kim.jin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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