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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작가전] 하드고어한 오후 한 시 #11. 집에 가기 싫어 (2)

중앙일보 2016.10.17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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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옆의, 옆의 건물 2층이 ‘밀라노 호프’였다. 통창 안쪽에서 은은한 불빛이 흘러나왔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체온이 1도쯤 올라가는 그런 집이었다. '행복의 색'이란 게 있다면 너무 진하지도 밝지도 않은 은은한 오렌지빛이리라.
 
“수아야, 사실은 나 집에 가기 싫어.”
 
윤정 언니를 기다린다는 것은 핑계고 나는 집에 들어가기가 싫었다. 앓아누운 아버지가 있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집에 가기 싫은 걸까? 앓아누웠던 아버지는 지난봄 돌아가시고 없는데.
 
“실은 나도 집에 가기 싫어.”
 
네가 왜? 내가 알기로 수아네는 네 식구가 오순도순 사랑과 행복을 나누며 살아가는 전형적인 중산층 가정이었다. 크기로만 따져도 우리 집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50평이 넘었다. 수아네 엄마는 알뜰한 살림꾼에, 아버지는 대기업 중역이었고, 오빠는 일류 대학 박사였다.
 
“행복에 겨워 지랄 났구나. 너 정도 되면 나는 아예 집 밖을 안 나온다.”
 
그런 게 이해가 안 된다는 거다. 행복이 행복인지도 모르는 년일수록 행복은 비처럼 쏟아진다. 대책 없는 신의 심술.
 
제법 넓은데도 호프집은 손님으로 꽉 차 있었다. 군데군데 키 큰 화분이 세팅되어 있었고 벽 한쪽에 커다란 LCD 화면이 걸려 있었다. 마침 프로야구 중계 중이었다. 시즌 막바지, 술도 술이지만 야구 때문에들 찾아든 모양이었다.
우리는 빠른 눈으로 실내를 스캔했다. 전부 넥타이부대였다. 어째, 분위기가 꾸리꾸리하다. 유모차 부대 피하니 넥타이부대를 만나네. 동네라 아니라 군부대다! 우리는 한숨을 내쉬며 적당한 자리를 찾아 들어갔다. 윤정 언니 가방, 윤정 언니 코트, 우리들 가방까지 한 짐이었다.
 
“먹다 보며 오겠지.”
 
“먹다 보면 오겠지.”

 
건배를 하고 호프를 한 모금 들이켰다. 커피숍에서의 안 좋은 기억을 일거에 씻어 내릴 만큼 상쾌한 미감이었다. 어포를 질겅이는데 누군가 등을 툭 쳤다.
 
“이쁜이들, 여기서 또 만나네?”
 

돌아보니 웬 남자가 서 있었다. 누구지? 키가 훤칠하고 눈이 부리부리한 이 남자. 아, 아까 우리한테 생선 보낸 아저씨구나.
저편에 키가 땅딸하고 콧대가 눌린 아저씨도 대기하고 있었다. 뒤늦게나마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자 그가 합석을 제안했다. 수아에게 눈으로 물으니 싫지는 않은 듯해서 우리는 주섬주섬 남자들의 자리로 이동했다.
 
회사원들이었다. 인근 기업체에 다니고 있었다. 직장동료였고 둘 다 유부남이었다. 생각보다 나이는 많지 않았다. 35세 동갑이라고 했다. 부리부리가 물었다.
 
“왜 간호학과에 갔어요?”
 
“의대 가려고 했는데 점수가 안 돼서요.”

 
꼴찌로 들어온 주제에 수아는 깜찍하기도 하지.
 
“그쪽은요?”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사실 간호대만큼은 안 가려고 했다. 아픈 사람 쳐다보는 것은 아버지만으로 족했다. 아버지는 안방 침대에 누워 하루 종일 그르렁거리며 잔기침을 했다. 기침이 멎는 순간이라곤 머리맡에 있는 타구에 가래를 뱉을 때뿐이었다. 가래를 뱉어낸 뒤에는 다시 그르렁거리며 기침을 했다.
2년째 그러다가 돌아가셨다. 간호대는 절대 안 가! 간호대는 절대 안 간다는 주문을 외웠다. 어느 날은 주문이 너무 길어 간호대, 간호대를 읊조리는 나를 발견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간호대에 원서를 넣고 있었다.
 
“그게 뭐 중요해요? 자! 건배!”
 
“제가 건배사 한 번 외칠까요? 불문과 나왔거든요. 자, 드셩!”

 
키가 땅딸하고 콧대가 눌린 남자가 외쳤다. 호호호 드셩! 그들은 공통적으로 직장생활에 불만을 갖고 있었다. 둘 다 창업이 꿈이라고 했다. 부리부리는 내게만 계속 말을 시켰다.
 
“그쪽은 병원에 취직할 거예요?”
 
내가 모르겠다고 하자 그냥 시집이나 가세요, 라고 훈수를 했다.
 
“호호, 남자가 있어야죠.”
 
“저에게 시집오면 어때요?”
 
“결혼하셨잖아요?”
 
“이혼할게요.”
 
“농담이죠?”

 
쳤습니다! 째지는 듯한 목소리에 사람들이 일제히 화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2루에 있던 주자가 베이스를 돌아 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여기 홀과, 저 너머 관람석이 동시에 환호로 출렁였다. 달려! 어느 테이블에선가 크게 소리쳤다.
 
“책에서 봤는데 야구는 매우 가족 이데올로기적인 스포츠래요.”
 
부리부리였다.
 
“집에서 출발해 집으로 돌아오는 경기니까요.”
 
내 물음에 대한 답을 그렇게 돌려주는 모양이었다. 부리부리는 나름의 야구 철학을 펼쳐 보였다.
 
“야구 참 재밌어요. 홈에서 1루까지, 1루에서 2루까지, 3루까지, 홈도 마찬가지예요. 참 아슬아슬하게 거리를 잡았잖아요. 너무 쉽게 들어오지도, 그렇다고 못 들어오지도 않게, 꼭 집을 향해 달리고 싶게요. 아무리 안타를 많이 쳐도 반드시 집에 들어와야만 점수를 따죠.”
 
“곳곳에 포진한 식당, 주점, 노래방은 유능한 수비수네요. 집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는.”
 
“그게 아니죠. 다 찍어야 집에 갈 수 있다는 거죠.”

 
이 남자, 제법 재치 있는걸. 그러니까 침대로 가기 위한 일련의 조건은 갖춘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3차는 노래방!”
 
눌린 콧대가 외쳤다. 거기 두 분 어떻게 할래요? 부리부리가 물었다. 나는 수아의 눈치를 살폈다.
 
“야, 너 갈 거야?”
 
“응, 나 집에 가기 싫어.”
 
“그래, 나도 집에 가기 싫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니 집안에 광명의 햇살이 비치는 기분이었다. 고요한 삶이란 것도 별게 아니었다. 가래 끓는 소리와 기침 소리가 없으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엄마도 늦게까지 일을 하기 때문에 텅 빈 집은 나만의 공간이었다. 아버지가 사라진 집. 딱히 들어가기 싫을 이유가 없었다. 아무 이유도 없는데 가기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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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 다 공통적으로 노래 실력이 별로였다. 처음에는 순서를 지켜 한 곡씩 불렀지만 시간이 갈수록 눌린 콧대가 마이크 욕심을 많이 냈다. 부리부리는 노래 부르는 내내, 내 가슴 언저리에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내가 달라붙는 옷을 입기는 했다. 수아가 귀에 대고 소곤거렸다.
 
“야, 너는 누가 낫니?”
 
“어차피 유부남들인데 뭐, 그래도 굳이 고르라면 나는 눈이 부리부리한 쪽.”
 
“너 느끼한 사람 좋아하냐?”
 
“그럼, 배 나오고 눌린 콧대가 낫냐? 코가 작으면 그것도 작다는데.”
 
“뭐? 얘가 잠이라도 잘 기셀세.”

 
우리는 남자들을 바라보며 큭큭 웃었다.
 
화장실에 가려고 나왔는데 한 여자가 비척이며 복도를 걸어가고 있었다. 굵은 파마머리에 호피무늬 티셔츠, 엉덩이에 딱 달라붙는 쫄바지, 검은색 앵글부츠. 아주아주 낯익은 모습이었다. 엄마! 소리치자 그녀가 뒤돌아보았다. 엄마는 별로 놀라지도 않고 웃었다.
 
“오, 우리 딸. 한 번은 마주칠 거라 생각했지. 친구들이랑 놀러 왔니?”
 
“엄마 여기서 뭐해?”
 
“뭐하긴, 여기 엄마 일터야.”
 
“일터?”
 
“응, 알바해.”
 
“엄마 미쳤어?”
 
“안 미쳤어. 낮에는 알로에 방판 다니고, 밤에는 노래방 도우미 해. 그동안 네 아빠 약값, 네 학비, 용돈 어떻게 댔겠니? 이렇게 엄마가 뼈 빠지게 벌어다 주니까 너도 이런 데 올 수 있는 거야. 그럼 재밌게 놀다 가.”

 
엄마는 나를 그대로 세워둔 채 가까이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늙수그레한 아저씨가 엄마를 두 팔로 껴안는 게 보였다. 엄마는 그 남자 품에 안겨 마이크를 받았다. 엄마의 노랫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왔다.
모르는 남자 품에 얼싸 안겨, 가로등불 아래, 가로등불 아래, 춤추는 댄서의 순정······. 기가 막혀 눈물도 나지 않았다. 뛰어 들어가 깽판이라도 쳐야 했지만 엄마의 지나친 냉정함 때문일까. 엄두가 나지 않았다.
 
방으로 돌아오니 그보다 더했음 더 했지 못하지 않은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의자 위에 두 남녀가 엉겨 있었다. 부리부리와 수아가 목하 키스 중이었다. 수아는 엉덩이를 뒤로 빼내는 동시에 가슴을 한껏 내민 상태였다. 머리카락이 뒤로 늘어져 가느다란 허리 곡선이 강하게 부각되었다. 누가 봐도 허세가 잔뜩 담긴 포즈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가 하면 부리부리는 수아의 등짝에 손바닥을 대고 자기 쪽으로 지그시 당기는 자세를 취했는데 그 역시 작위적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일탈이 주는 으쓱함이랄까. 상대의 몸을 즐기기보다 폼을 잡고 싶은 것이다.
그 시간 눌린 콧대는 무얼 했는가. 주구장창 마이크를 쥐고 있었다. 그 나름대로 되지 못한 슬픔을 즐기느라 정신이 없었다. 눈을 지그시 감고 저 혼자 몸을 흔들면서 외로움이 어쩌니 저쩌니 하는 노래를 불렀다. 나는 윤정 언니 가방, 윤정 언니 코트, 내 가방을 들고 서둘러 그곳을 빠져나왔다.
 
자살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죽다’는 피동사다. 그러므로 누구에게나 적용하는 ‘죽다’라는 말은 문법에 맞지 않는다. 제대로 표기하려면 ‘죽게 되다’ 혹은 ‘신이 데려가다’가 되어야 한다.
아버지 역시 죽지 않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병구완은 환자 스스로의 몫이었다. 얼굴이 누렇게 뜨고 눈이 푹 패여 산송장 같던 아버지. 아버지는 콜록콜록, 그르렁그르렁거리며 키 높은 가스레인지에 무거운 솥을 올리느라 애를 썼다.
아버지는 어디서 이상한 약초를 구해다가 삶고 거르고 짜서 먹기를 반복했는데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나와 눈이 마주칠 때는 더없이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딸이 무거운 솥을 드는 일을 도와주기라도 할까봐, 그러면서 딸이 짜증을 낼까봐. 아아, 누군가의 삶에 폐를 끼치게 될까봐 아버지는 솥의 무게보다 더욱 무거운 마음을 들어 올리며 약초가 다 삶아지기를 기다렸다.
 
지금 생각하니 아버지는 타인에 대한 예의 따윈 갖고 있지 않았던 게 분명하다. 아버지의 표정은 부끄러움에 가까웠다. 아버지는 건강할 때는 건강을 믿고 집에 들어오지 않았고, 건강이 무너진 뒤에는 회복을 믿고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아버지란 사람은 내가 집에 있어주기를 바랄 때 밖으로 나돌았고 제발 사라졌으면 할 때는 집에 눌러 앉아 있었다. 건강했을 때 엄마와 내게 한 짓을 생각하면 아무리 꼬꾸러질 만큼 아파도 집에 있어선 안 되는 거였다.
아버지의 부끄러움은 양심이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목숨을 부지하려는 노력을 창피해하면서도 ‘난들 어쩌겠니.’ 하는 태도로 몰래몰래 약을 달인 아버지. 성행위처럼 말이다.
누구나 침대 위의 쾌락을 목표로 여자에게 작업을 하지만 노골적으로 성욕을 드러내는 일은 주저한다. 이를테면 ‘오늘 나랑 같이 있을래요?’ 식의 말은 어렵지 않게 꺼내도 ‘오늘 나랑 섹스 할래요?’는 웬만한 철면피 아니면 어렵다는 말이다.
인간의 부끄러움은 어디에서 올까. 인간은 젊어서는 자신의 성적 매력이 뛰어나지 않음에 좌절하고, 늙어서는 건강하지 않음에 좌절한다. 섹스가 다 뭐여? 벽에 똥칠해도 좋으니 오래만 살았으면 좋겠어. 아버지의 늙은 육체에서 그런 욕망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아버지는 그것을 들켰기에 부끄러웠던 것이다. 섹스하는 삶이 아닌 ‘삶’ 그 자체를 욕망했기에.
 
약초를 달여 먹은 탓일까.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는 정신력의 승리일까. 6개월 진단을 받았음에도 아버지는 2년 가까이 생존했다.
누군가 어깨를 툭 쳤다. 돌아보니 눌린 콧대였다.
 
“괜찮아요?”
 
“나를 따라온 거예요?”
 
“걱정이 돼서. 그 친구요, 바람기가 있어요. 그래서 여자들이 상처를 받곤 하죠.”

 
그 말에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왜 눈물이 난 걸까? 별 관심도 없던 남자였다. 어디서나 마주칠 수 있는 그렇고 그런 부류들. 여자만 보면 어떻게 하지 못해 안달하는. 야구가 뭐 어떻다고? 얄팍한 개똥철학과, 나의 가슴을 바라보던 노골적인 눈빛, 부리부리한.
더 알 수 없는 것은 내가 눌린 콧대에게 안겨 흑흑 소리를 내며 울어버렸다는 사실이었다. 간호대에 원서를 넣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만큼이나 황당했다. 그는 우는 나를 꼭 껴안아 주었다. 피붙이라도 되는 것처럼. 나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집에 가기 싫어요.”
 
그가 나를 데려간 곳은 폼 나는 술집이었다. 아름다운 마담이 존재하는 야릇한 술집에서 그는 잭 다니엘을 주문했다. 그가 오늘 하루 쓴 돈이 얼마나 될까. 30만 원은 족히 넘을 것이다. 중소기업에 다닌다는 사람이 하루 술값으로 이렇게 많은 돈을 날려도 되는 걸까.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내 돈도 아니고, 따라주는 족족 술잔을 받았다. 눌린 콧대는 위스키 잔에 직장생활과 가정생활의 불만을 칵테일처럼 섞어 마셨다.
 
“좆같다고요, 좆같아. 사장이라는 놈은 실적 때문에 쪼지, 장인이라는 사람은 이유 없이 쪼지, 와이프라는 여자는 돈 때문에 쪼지.”
 
푸념에 푸념이 이어졌다. 되도 않는 싸구려 푸념들, 거지같은 엄살들. 둘 다 엉망인 채로 취해서 그 집을 나왔을 때가 새벽 두 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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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 1969년 경기 부천 출생.
· 인천대 국문학과, 한신대 문예창작 대학원 졸업.
· 2010년 전남일보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
· 발표한 소설로 <예술가의 탄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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