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연재소설 - 제8요일의 남자] #21. 에메랄드 목걸이

중앙일보 2016.10.17 00:01
나는 내 앞에 놓인 사각 케이스에서 목걸이를 꺼냈다. 작은 에메랄드가 촘촘히 매달려 빛을 내고 있는 그것은 눈에 보이는 푸른빛과 달리 손에 닿는 느낌은 따듯하고 부드러웠다. 빛이 너무나 아름다워 위로 살짝 들어 올리려는데 연수의 손이 먼저 그걸 낚아챘다.
 
“잠깐. 이 전에 우리 다른 얘기할 게 좀 있어요.”
 
그녀는 빼앗듯 가져간 목걸이를 얼른 케이스에 넣고 뚜껑을 닫았다.
목걸이가 모든 이야기의 시초였다던 말은 거짓은 아닌 모양이었다. 거기서 이야기가 시작됐으니 가장 마지막도 그것으로 장식할 생각 같았다.
 
“정비서가 괜히 나서서 이야기가 복잡해진 것 같아요. 그래서 미주씨가 오해했을 것 같은데...”
 
그녀는 목걸이 케이스를 밀쳐놓고 나를 다시 쳐다보았다. 연수의 커다란 눈은 지난번과 다를 바 없이 주위를 제압하고 있었고 여전히 눈 화장은 짙었다. 나는 계속 그녀의 눈을 쳐다보고 있었지만 짙은 눈 화장 때문에 눈동자의 움직임을 가늠할 수 없었다.
 
“희정씨가 스스로 나선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들러리로 세워진 것 같은데요?”
 
내 말에 연수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표정이 굳어버리거나 얼굴빛이 나빠졌다면 나는 마음이 좀 편했을 지도 모르겠다. 그 배후에 당신이 있어요, 라는 도전으로 들렸을 내 말에 그녀의 미소는 내게 살짝 부담스런 느낌이었다.
그녀와 내가 팽팽히 맞잡은 줄을 누가 먼저 놓치게 될지는 아무도 몰랐다.
 
“어떤 사람에겐 그게 일이기도 하니까요.”
 
“희정은 어떤 일을 했죠? 또 오비서관은요? 그들에게 그게 일이었다면 누굴 위해 어떤 일을 했는지 명확히 짚어봐야 하지 않을까요?”
 
오비서관의 이름이 나오자 살짝 당황하는 빛이 그녀의 얼굴을 스쳤다. 하지만 잠시 일순간이었다.
 
“그래요. 맞아요. 그게 그들의 일이죠. 그 일이 싫었으면 하지 않을 권리도 있었으니까.”
 
그녀는 자신의 잔에 와인을 따라 훌쩍 마셨다. 어쩌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스스로를 자제하고 스스로를 관리하는데 뛰어난 사람 일수도 있었다.
 
“오피스텔에 몰래카메라가 있었던 거 아세요?”
 
다시 술잔을 들던 연수가 내 말에 술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제가 이 말을 하는 이유는 오피스텔에서 누군가 했던 일을 또 다른 누군가가 모두 보고 있었다는 거예요.”
 
액자 뒤의 카메라 렌즈를 구입한 사람이 에프였으니 설치한 사람도 에프였다는 건 의심할 바가 없었다. 그렇다면 그건 그 곳을 몰래 드나드는 누군가를 감시하기 위해 부착한 것이 분명한 일일 것이었다.
 
“도대체 누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그녀가 스스로 자신이 한 일을 털어놓길 바랄 뿐이었다.
내 답을 원한다는 듯 연수가 내 시선을 붙들고는 놓아 주지 않았다.
 
“의원님이 늘 그러셨죠. 너는 내 고향이야, 라고. 하지만 그 말은 저한테 만이었어요. 그런데 그걸 어떻게 아신 거죠? 녹음기라도 따로 어디 설치해놓으셨나요?”
 
“그럼 미주씨가 몰래카메라는 설치한 모양이지? ”
 
에프가 너는 내 고향이야, 라는 말을 내게만 말했다고 단정지어 말한 건 순전히 그녀를 떠보기 위해 던진 말일 뿐이었다. 연수는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자신의 거짓말을 털어놓은 게 돼 버렸다.
 
녹음기라는 말에 뭔가 들켜버린 사람처럼 나를 쳐다보는 연수의 눈빛이 흔들렸다. 어떤 상황에서도 요지부동일 것 같던 그녀가 갑자기 마음의 여유를 잃은 것 같았다.
 
저번에 호텔서 만났을 때 그녀는 내게 말했었다. 에프가 술만 취하면 자신에게 너는 내 고향이야, 라며 울먹인다고. 그것은 결국 거짓말이었던 것이다.
 
“정말 녹음기라도 설치해 놓으셨던거군요... ”
 
한연수가 가만히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눈을 감더니 헛웃음을 웃었다.
 
“미주씨가 아니면... 그럼 몰래카메라는 장현수...?”
 
그녀는 큰 소리를 내며 웃었다. 소리만 컸을 뿐 웃음은 바로 그쳤다. 아마도 많은 생각들이 오가고 있을 것이었다.
 
에프가 카메라 렌즈를 액자 뒤에 숨겨 놓았었을 거란 생각이 처음 든 건, 그날 그걸 발견하고 더블과 저녁을 먹으면서였다.
 
가끔 에프와 거기서 저녁을 먹거나 술을 마실 때 액자 뒤쪽의 무언가를 조정하는 걸 본 기억이 났었다. 예감했던 대로 그걸 산 사람이 에프라는 걸 나중에 더블이 알아내 주었었다.
 
“내 어머니를 만나신 목적은? 제 짐작대로인가요?”
 
그녀가 나를 향해 살짝 웃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건 웃음이 되지 않았다. 큰 웃음 한 번으로 그녀의 얼굴에서 웃음이 다 지워진 것 같았다. 그녀는 나를 만나러 나올 때 이미 웃음은 다 지워 버렸는지도 몰랐다.
 
“내 목적은 하나였으니까...”
 
그녀는 담백했다. 내게 많은 거짓말을 했지만 비굴하거나 변명을 하진 않았다.
 
“어머닌 다음 날 손목 수술을 앞두고 계셨어요.”
 
웃음기라곤 사라진 표정에서 억지로 웃음을 만들어 내기라도 할 듯 그녀는 한 쪽 입술을 들어 올렸다.
 
“내가 그걸 모르고 어머니를 만났다고 생각하는 건가? ”
 
“ ... ”
 
“펀치는 항상 상대의 약한 부분을 향해 날아가지.”
 
할 말이 없었다. 비굴하진 않았지만 그건 야비한 짓이었다.
 
“아직도 남았나요? 멈출 타이밍을 놓친 건 아닌가요?”
 
연수는 술을 가득 채운 잔을 들고 내게 건배를 하듯 살짝 들었다 놓았다.
 
“사람마다 만족하는 지점이 다르지 않을까?”
 
연수는 가득찬 잔을 들어 훌쩍 그것을 비웠다. 와인 한 병이 거의 비어가고 있었다. 술도 연수의 말처럼 사람마다 만족 지점이 다를 것이었다.
 
“내 집에 사람을 보낸 적이 있나요?”
 
연수가 나를 향해 코웃음을 웃었다.
 
“뭐하러? 나는 반미주가 아닌데...”
 
내가 무슨 말이냐는 듯 쳐다보자 갑자기 그녀가 벌떡 일어섰다. 그러곤 내 쪽으로 와서 옆 의자에 놓아둔 내 핸드백을 집어 드는가 싶더니 그것을 열고 지갑과 화장품, 파우치와 책과 핸드폰을 꺼내 자기 핸드백에 마구 집어넣었다.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나도 벌떡 일어섰다.
 
“지금 뭐하시는 거죠?”
 
반사적으로 내가 그녀의 핸드백을 잡았다.
 
“왜, 나는 이러면 안 되나?”
 
그녀가 자신의 핸드백을 힘주어 잡아당기며 반문 했다.
 
“제 거잖아요.”
 
“그러니까!”
 
내 눈동자에 자신의 시선을 꽂아놓은 그녀는 미동도 없이 나를 향해 서 있었다. 할말이 없었다.
갑자기 그녀의 핸드백에서 내 핸드폰 벨이 울렸다. 그제야 자신의 핸드백을 열어 안의 것을 다 쏟아냈다. 내 책과 파우치와 손지갑이 빠져나왔다.
마지막으로 빠져 나온 핸드폰에 달리 미술관번호가 반짝이고 있었다. 핸드폰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생각했던 대로 스테이크 하우스의 문에는 ‘CLOSED’라고 쓰인 아크릴 표지판이 걸려 있었다.
 
기사 이미지
달리 미술관 관장은 프랑스 사람이었다. 두 개의 연결된 전화기로 관장은 내게 불어로 말을 하고 지난번 나와 통화를 한 그 여자는 내게 통역을 해주는 방식으로 복잡하게 통화가 되었다.
 
에프가 거기 맡겨 놓은 건 10인치짜리 탭이었다. 지난 5월 프랑스를 방문했을 때 긴밀히 맡긴 것이라 했다. 복잡한 통역과정 때문에 그 외의 궁금한 사항은 직접 만나서 하기로 결론짓고 전화를 끊었다. 가급적 빠른 시간 안에 프랑스를 방문해 그걸 가져가라는 요청의 전화였다.
 
당장 내가 그곳을 방문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지만 상황으로 봐선 빨리 내가 거길 가야만 할 것 같았다.
 
전화를 끊고 다시 식당으로 들어왔다. 이미 그녀는 없었다. 계산서를 챙기려는데 직원이 다가왔다.
 
“계산하고 가셨어요. 그리고 이거...”
 
직원이 내 앞으로 밀어 놓은 건 에메랄드 목걸이가 들어있던 사각 케이스였다.
내가 의아한 눈으로 직원을 쳐다보았다.
 
“선생님 드리면 아실 거라고 하셨어요.”
 
금장으로 장식된 사각 케이스를 열어 목걸이를 꺼냈다. 에메랄드가 엮여져 있는 목걸이에는 폴더폰 주소록에 저장되어 있던 이니셜과 똑 같이 M.J Ban 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그것을 그대로 안고 길을 걸었다.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차를 운전할 수도 택시를 탈 수도 없었다. 연수의 말처럼 모든 이야기는 이 목걸이에서 시작 된 게 맞는 것 같았다.
 
내 기억 속의 그녀는 에프보다 더 위풍당당한 모습이었다. 할아버지가 국회의원 출신이며 아버지가 장관출신인 가문 있는 집안에서 반듯하게 잘 키워진 외동딸다운 멋있는 모습이었다.
 
그런 그녀가 내게 상처를 주겠다는 목적 하나로 그 많은 거짓말을 꾸몄다는 게 처음엔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더듬어 보면 우린 배우지 못한 게 많았다. 상처를 입는 방법을 배우지 않은 것처럼 상처를 주는 방법도 배운 적이 없었다.
 
에프가 남긴 목걸이를 들고 길을 걸었다. 바람이 점점 차가워지고 있었고 집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하지만 바로 집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영화가 끝나고 훤히 불이 켜졌을 때처럼 갑자기 꿈에서 깨어난 기분이 들 것만 같았다. 어두운 길을 걷고 또 걸으며 어떤 한 시절을 가슴에 품어 보고 싶었다.
 
“별 일 없니?”
 
갑자기 울린 전화벨은 쥬디의 것이었다.
 
“선배. 급한 거 아니면 나중에 해. 미안. ”
 
전화를 끊으려는데 다급한 쥬디의 목소리가 들렸다.
 
“잠깐 내 말 들어 봐. 그 학생이 연락이 안 돼.”
 
“무슨 말이야?”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오늘 학교에 연락을 해봤는데 학교에도 나오질 않는다고 하네. 전에도 한 번 그런 적이 있다고는 하는데 우리 일과 연관이 있는 것 같기도 해서....”
 
“폴더폰 잘 가져갔고 그 사람들한테 잘 전해 줬다고 하지 않았어?”
 
“계속 어머니 집에 있는 거지?”
 
“만일 나를 찾으려고 든다면 엄마 집에 있다고 못 찾을 리는 없지 않을까?”
 
“인마. 남의 얘기하듯이 그러냐...”
 
“그럼 어떡해.”
 
“지금 어디쯤 걷고 있는 거야?”
 
“집 근처야. 바로 들어가야겠어.”
 
“그래. 집 들어가서 다시 연락하자...”
 
전화를 끊고 다시 오던 길을 돌아섰다.
지금의 상황으로 봐선 폴더폰의 문제는 한연수와 전혀 무관해 보인다. 그럼 그들이 내 집 패스워드를 어떻게 알아낸 것일까. 희정의 말 대로라면 의원실 도청문제도 폴더폰과 무관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눈에 보이는 자와 눈에 보이지 않는 자가 싸우면 눈에 보이는 사람이 지게 돼 있다. 이건 처음부터 이길 수 없는 게임인지도 몰랐다.
그렇게 말하면 쥬디는 또 남의 말 하냐고 말하겠지만 내 집을 노렸던 이들은 나를 알지만 나는 그들이 누군지 전혀 알지 못한다.
 
‘달리미술관에서 전화 왔었어. 거기 탭이 하나 맡겨져 있대. 나보고 그걸 가져가라는데 당장 갈 입장은 아니야.’
 
저녁의 통화가 기억나 쥬디에게 문자를 보냈다.
 
‘바보야. 제일 중요한 게 그거야. 빨리 그거부터 손에 넣어야 해. 당장이라도 떠날 준비를 해.’
 
쥬디는 내가 생각했던 대로 답을 보내왔다. 일단 집에 들어가 답을 하려고 아파트를 들어서는데 어떤 남자가 뛰어오더니 내게 인사를 했다.
 
“사모님께서 잠깐 보시자고 합니다.”
 
바로 앞에 주차돼 있는 차에 한연수가 타고 있였다. 기사는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는 운전석에 올랐다.
 
“내가 좀 취해서 이걸 함께 준다는 걸 잊었어요.”
 
연수가 필통만한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이게... 뭐예요?”
 
“모르죠. 그건 뜯어보지도 않았으니까. ”
 
불빛은 어둑했지만 자그만 케이스에 새겨진 내 이니셜이 눈에 띄었다. 연수가 차 창문을 툭툭 쳤다. 연수를 태운 차는 빠른 속도로 아파트를 빠져 나갔다.
 
▶ 제8요일의 남자 더 보기
#1. 화요일의 남자, 튜즈
#2. 7분의 1을 넘나드는 남자, 에프

#3. ‘당신의 어둠 속에 나도’
#4. “그날, 당신에게 주고 싶었던 것”
#5. 엠, 월요일을 싫어하는 남자
#6. 어떤 고백
#7. 한 잎의 여자
#8. 당신은 어디 있나요?
#9. 그 여자 미주 -내 이름은 튜즈
#10. 이미 시작된 일
#11. 말할 수 없는 비밀
#12. 점점 깊은 곳으로
#13. 기억의 영속
#14. 카메라오브스쿠라
#15. 왜 하필 장현수야?
#16. JEAN이라는 남자.
#17. 미로 속 그물
#18. 이별은 언제나 아프다.
#19. 내가 몰랐던 것
#20. 당신은 누구세요?

<목요일에 계속됩니다>
기사 이미지
그림=이정권 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