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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의 시시각각] 삼성, 발화 원인 모르는 게 더 문제

중앙일보 2016.10.16 21:15 종합 30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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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논설실장

삼성전자가 갤럭시노트7 발화 원인을 아직 밝혀내지 못했다. 50일 넘게 수백 명의 전문가들이 매달렸지만 폭발을 재현해 내지 못한 것이다. 진범을 못 찾으니 음모론이 난무한다. 엉뚱하게 ‘황제 경영’ ‘군대식 문화’ ‘조급증’ 같은 마녀사냥이 판치고 있다. 지금 삼성의 문제는 발화 원인을 모르는 게 진짜 문제다. 어쩌면 배터리 불량으로 판명되는 게 가장 행운의 시나리오일지 모른다.

기능·수익성보다 안전과 품질
위기 땐 핵심 가치에 집중해야


돌아보면 갤노트7은 과도한 혁신의 집합체였다. 5.7인치의 넓은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화면에다 홍채 인식, 급속 충전 기능까지 집어넣었다. “역사상 가장 똑똑한 스마트폰”이라는 평가가 빈말이 아니었다. 문제는 이 기능들이 절대 공짜가 아니라는 점이다. 더 많은 전력을 잡아먹고,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할 수밖에 없다. 방수·방진 기능 때문에 내부의 열을 바깥으로 빼내기도 어렵다. 스마트폰은 단순 통화보다 인터넷과 게임을 더 많이 하는 추세다. 비좁은 공간에 더 큰 배터리 용량이 요구되기 마련이다.

갤노트7의 배터리 용량은 3500㎃h로 역대 최강이었다. 대항마인 아이폰7플러스의 2900㎃h를 압도한다. 하지만 두 제품의 사용시간은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왜일까? 그 비밀은 아이폰이 똑같은 배터리 용량인데도 2014년보다 2015년에 획기적으로 사용시간이 늘어난 점을 주목해야 한다. 바로 iOS9 때문이다. 미세공정과 절전기술, 그리고 소프트웨어 최적화 덕분이었다. 반면 소니의 엑스페리아Z는 같은 기간 사용시간이 눈에 띄게 줄었다. 새로 채택한 퀄컴의 운영체계인 스냅드래곤과 궁합이 안 맞았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에서 배터리 용량만큼이나 소프트웨어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갤노트7도 배터리 설계가 잘못됐거나 소프트웨어가 전력을 너무 잡아먹어 발화를 초래했을 수 있다.

삼성은 애플보다 리드타임(제품개발 기간)이 훨씬 짧다. 상반기에 갤럭시S, 하반기에는 갤럭시 노트를 내놓는다. 반면 애플은 2년마다 아이폰을 완전 교체하고, 그 중간에 ‘플러스’ 제품을 선보인다. 삼성 내부에선 뒤늦게 “매년 신제품 발표장에 들고 나가는 시제품 중 기능 검증이 끝난 경우는 거의 없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이야기다. 이런 스피드 경영이야말로 갤럭시 신화의 비결이었다. 삼성은 소프트웨어와 생태계를 앞세운 아이폰과 달리 과감하고 신속하게 최첨단 기능을 채택해 하드웨어로 승부를 걸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삼성으로선 최악의 시나리오가 근본 원인을 못 밝힌 채 생산과정의 불량으로 덮고 가는 것이다. 보통 문제가 아니다. 기획-설계-제조-검수의 모든 과정을 완전히 뜯어고쳐야 하기 때문이다. 당장 내년의 갤럭시8이나 갤노트8의 운명도 장담하기 어렵다. 아무리 성능이 뛰어나도 언제 불이 날지 모르는데 누가 사겠는가. 삼성은 신제품 개발을 미루더라도 발화 원인부터 찾아내야 한다. 배터리 불량, 고속충전 기능, 소프트웨어 결함, 여유공간 부족, 과도한 방수·방진 기능을 포함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사고 원인을 투명하게 밝혀내는 게 우선이다. 시장 신뢰를 되찾는 유일한 길이다.

삼성은 이번 사태가 뼈아픈 위기다. 한번 아이폰으로 옮겨탄 소비자를 되찾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삼성이 다시 일어서려면 2009년 도요타차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그해 도요타는 미국에서 급발진 사태로 960만 대를 리콜하는 궁지에 몰렸다. 도요타차는 오너인 도요다 아키오 대표를 중심으로 ‘품질 우선’으로 돌아갔다. 복잡한 정밀 부품들은 모두 일본에서 생산해 공급하고, 신형 캠리의 경우 평소보다 갑절인 100대 이상의 시제품을 만들어 온갖 테스트를 거쳤다. 도요타차가 품질과 안전에 시간과 비용을 아끼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소비자들이 돌아왔다. 짐 콜린스는 『위대한 기업의 선택』에서 “위기일수록 핵심 가치를 보존하는 게 위대한 기업”이라고 했다. 삼성도 첨단 기능과 수익성의 유혹을 참고 기본으로 돌아갔으면 한다. 핵심가치인 품질과 안전에 집중하면서 이번 위기를 성장통으로 삼는 성숙한 모습을 보고 싶다.

이철호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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