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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칼럼] 누구를 위해 전쟁 부를 수 있는 휘파람 부는가

중앙일보 2016.10.16 18:55 종합 31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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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박근혜 대통령은 국군의 날 연설에서 북한 주민의 탈북을 독려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북한의 유엔 회원국 자격 박탈을 주장했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김정은 제거 특수부대를 운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핵을 갖자는 사람도 있다. 전쟁불사론(戰爭不辭論)이 등장하고 미국 일각에서는 선제타격론(先制打擊論)까지 나왔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전쟁을 부를 수 있는 휘파람을 부는 것인가?

남북 관계 정치·군사에 종속돼
개성공단은 통일경제의 교두보
남북한 동반성장 이뤄져야 한다
60여 년 제재 위주 대북정책 실패
어렵더라도 남북 대화 유도해야


북한의 핵탄두 탄도미사일 개발이 한반도·동아시아, 더 나아가 세계 평화에 불안정요소가 되고 있다. 맞다.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다. 북한에 대한 제재가 필요한 이유다. 그러나 한반도 위기상황을 만에 하나라도 국내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거나 군산복합체 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북한을 민족공동체 일원으로 보면서 전제조건 없는 남북 간 문호 개방과 상호협력 등을 규정한 남북 기본합의서가 체결된 것은 노태우 정부 때 일이다. 그러고 보면 지금 한반도 정세와 남북 관계 시침은 20여 년 이전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파열할 것만 같은 남북한 간의 대립으로 저성장과 양극화,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은 물론이고 개성공단 폐쇄마저 잊혀지고 있다. 개성공단 관련 기업들이 겪고 있는 피해는 물론 개성공단을 통해 한국 경제 부흥과 통일의 길을 열고자 했던 목표에도 관심이 없다. 정녕 개성공단을 이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밀어 넣어도 좋은 걸까? 아니다.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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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일과 대립하는 북·중·러의 전선이 구축된다면 유엔 결의에 따른 북한 경제제재는 실효성이 없다. 우리의 경제적 손실 또한 만만치 않다. 첫째, 임금과 지대 상승으로 경쟁력을 가질 수 없는 우리 중소기업들의 출구가 개성공단과 같은 대북 경제협력사업이다. 그 길이 막혔다. 둘째, 교육 수준과 숙련도 높은 북한 노동력이 중국 산업을 뒷받침하게 된다면 그 과실은 중국이 가져갈 수밖에 없다. 셋째, 동북아시아에서 경제협력이 원활하지 못하면 기업은 예측 가능한 경영을 하기 어렵고 역내 군사적 긴장이 격화되는 한편 남한이 한반도 통일의 주도권을 잡아가는데도 장애요인이 된다.

박 대통령은 통일의 초석을 놓겠다는 강한 의지를 여러 차례 표명했다. 그러나 현실은 교류와 협력의 전면적 중단을 넘어 북한의 레짐 붕괴를 논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통일의 결과만 강조했지 ‘과정으로서의 통일’에 대한 이해와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개성공단은 단순한 ‘공단’이 아니다. 남북 사이의 ‘평화지대’이자 안전핀이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는 북한의 핵실험과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에도 개성공단을 폐쇄하지 않았다. 개성공단은 또한 통일경제의 교두보다. 남한의 시장경제와 북한의 사회주의체제가 결합한 ‘경제공동체형(經濟共同體形) 통일모델’이다. 자본 및 기술에 강점이 있는 남한과 토지와 노동력을 가진 북한이 결합해 동반성장할 수 있다. 그리고 개성공단은 남북 소통의 장이자 북한에 시장경제를 전파하는 체험교육의 현장이다. 개성공단은 거대한 남한 측 선전기구이기도 하다. 그 자체만으로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가졌다.

남북 관계가 냉·온탕을 반복한 것은 정치·군사 분야에 종속돼 있기 때문이다. 남북 교류 및 경제협력사업을 정치·군사와 전략적으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 ‘통일기반조성(統一基盤造成)’ 사업은 어떤 경우에도 중단 없이 지속해 나감으로써 남북 간에 신뢰를 쌓아 가야 한다. 분단돼 있으면서도 통일된 효과를 누린 독일의 전략은 과정으로서의 통일을 보여 주는 좋은 사례다.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각자의 명칭을 사용하기로 합의했던 ‘92공식’을 일관되게 지켜 나가면서 경제협력과 자유 왕래를 하고 있는 중국과 대만도 같은 경우다. 양안 간의 교역 규모는 연 1000억 달러이고 대만 기업 10만 개가 본토에 진출해 있으며 본토인은 대만 주식시장에 투자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과 대만 간의 전쟁은 상상하기 어렵다. 상대방 경제에 대한 타격은 곧 자신의 경제에도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먹고사는 문제는 정치에 우선한다. 경제체제가 변화하면 정치체제도 달라질 수밖에 없고 이는 필연적으로 사회체제의 변화로도 이어진다. 닫혀 있는 개성공단의 문을 다시 여는 것은 물론 제2, 제3의 개성공단을 만들어야 한다. 남북한 동반성장이 이뤄질 때 통일의 길은 가까워질 수 있다. 그 첫걸음은 대화다. 한국전쟁 이후 일회성 대화는 많았지만 북한의 도발 그리고 우리의 맞대응으로, 장기간 지속된 남북 대화는 없었다. 의미 있게 지속된 남북 대화는 1, 2차 남북 정상회담 전후 2~3년뿐이다. 60여 년 동안의 대북정책 기조는 제재였고, 실패했다. 실패한 정책을 반복해선 안 된다. 핵·미사일 동결에서 시작해 완전 폐지로, 한반도 평화 정착으로 가는 과정의 대북정책이 필요하다. 그 시작과 수단은 대화다. 어렵더라도 대화를 유도해야 한다.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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