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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률의 심쿵 인터뷰] 한국이 좋다, 서너 번 만나면 속내 털어놓는 한국인이 좋다

중앙일보 2016.10.16 09:28
중앙SUNDAY 지령 501호

폴 포츠, 잘 알죠? 모르면 간첩 아닌가요? 인간 승리의 주인공인 만큼 우리같이 어려운 사람들이 더 좋아하죠.”


폴 포츠(Robert Paul Potts·46)를 만나러 가는 길에 탄 택시기사의 말씀이다. 하기야 삼겹살·생마늘 상추쌈에다 소맥 폭탄, 그리고 냉면 입가심을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라는 사람을 모르다면 외려 이상해 보인다. 한국에 널리 알려진 노랑머리 한국인쯤 되는 영국인이 또 한국을 찾았다. 왜 왔을까. 한번 작심하고 속내를 물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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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에서 용 났다’ 등의 얘기는 이미 알려진 얘기고 좀 직설적인 질문부터 해 보자. 이번 방한이 서른 번째, 정말 뻔질나게도 오셨다. 왜 이리 자주 오시나. 한국이 좋으신가.
“한국 사람이 좋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은 어느 정도 친해지면 속내를 드러낸다. 심지어 약점까지도 드러낸다.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 일본 사람과는 비교가 된다. 사실 약점을 드러내면 책잡힐 수도 있고 그래서 손해가 날 때도 있다. 그래도 내가 만난 많은 한국 사람은 서너 번 만나면 속내를 탁 털어 얘기하는 사람이 많다.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낸다는 것은 무엇인가. 상대방에게는 경계를 무너뜨리고 신뢰를 주게 된다. 나는 그런 한국 사람들이 좋다. 그리고 별로 내세울 것은 없는 이른바 ‘근본이 없는’ 나를 변함없이 좋아해 주는 데 큰 감동을 받고 있다.”
그것만으로 대답이 충분치 않아 보인다. 비즈니스 목적도 있지 않을까.
“부인하진 않겠다. 그러나 비즈니스와 무관하게도 자주 온다. 여권의 대부분은 한국 입국 스탬프다. 여권을 두 번이나 갱신했다. 한국과 나와 보이지 않는 교감이 있다. 한국 사람들은 이를 두고 인연이라고 하더라. 나는 정통 성악가가 아니다. 그러나 내 목소리에는 절대 포기하지 말라(never give up)는 희망의 메시지가 있다. ‘거위의 꿈’이다. 생존 경쟁에 내몰려 힘들어 하는 보통 한국인들이 내 노래를 좋아한다고 들었다. 사람들은 내 노래에서 위안을 찾는다. 나의 인생유전을 통해 대리위안을 받게 되는 것이다. 한국이 좋다. 인천공항에 내리면 공기마저 반기는 것 같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가끔 한국에서 영원히 살고 싶다는 생각도 해본다.

서른 번째 방한 ‘노랑머리 한국인’폴 포츠

(비즈니스와 관련된 다소간의 인격모독 성격의 질문을 이해해 달라고 하자) 아니다. 지금과 같은 공격적이고 직설적인 질문이 좋다. 삐딱선 질문이 외려 편하다. 호의적으로만 다루는 주례사 같은 인터뷰를 두고 영국에서는 실(shill), 즉 한통속 대담 또는 야바위꾼 인터뷰라고 한다. 나는 짜고 치는 고스톱 같은 인터뷰를 좋아하는 부류가 아니다.”

 
알려진 대로 가난한 휴대전화 판매원, 지질한 인생에서 2007년 TV 공개 오디션 프로그램인 ‘브리튼 갓 탤런트(Britain’s got talent)’에서 우승해 일약 스타가 됐다. 10만 파운드 상금은 어디 쓰셨나.
“한국 속담에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있듯이 영국 속담에는 ‘turn a lump of coal into a diamond(석탄 덩어리가 다이아몬드로 바뀐다)’라는 말이 있다. 같은 의미다. 맞다. 흙수저, 아니 무수저 인생이다. 인생 한 방이라고 하지 않았나. 나도 내가 우승할 줄 몰랐다. 내가 오페라 아리아를 부르겠다고 하자 심사위원들조차 ‘개무시’했다. 그런데 10만 파운드 상금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절반 이상 세금으로 냈다. 나는 도널드 트럼프와는 다르다. 그는 억만장자지만 교묘하게 세금을 내지 않았다. 난 가난하지만 늘 충실한 납세자로 살아왔다. 나머지는 빚 갚는 데 썼다. 곧 빈털터리가 됐다.”
정통 성악가들, 주류 비평가들은 여전히 삐딱하게 내려다본다.
“그들의 의견을 존중한다. 사실 성악은 본디 그들의 영역이다. 나는 틈입자, 또는 이단자인 셈이다. 틈입자가 주류를 제치고 설치고 다니고 있으니 곱게 볼 리 없다. 그러나 나의 목소리는 울림이 있다. 기계적으로 노래를 완벽하게 부르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완벽한 노래가 훌륭하다면 AI(인공지능 로봇)에 부탁하면 된다. 나의 노래는 외로움·힘듦·가난함이 있다. 공감·소통·울림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비주류, 불완전함이 때때로 아름다울 때가 있다. 정원의 화려한 장미보다는 늦가을 외딴 산길의 산국화(daisy)에 더 정이 가는 것과 같은 이치다. 비평가들은 늘 최고 아니면 완벽한 목소리를 찾는다. 흠집을 찾는 게 그들의 주특기다. 그래야 비평가들이 설 자리가 있기 때문이다. 대중적인 인기가 있으면 일단 세속적이라고 내리 깐다. 늘 지고지순한 것만을 기대하고 추구한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그러나 나는 비평가들의 눈보다는 평범한 보통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추고자 노력해 왔다. 내 노래가 그들에게 위로가 된다면 평자들의 대중적·세속적이라는 비판도 달게 받겠다. 그러나 참 외롭고 쓸쓸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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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포츠가 지난 7월 3일 헝가리에서 바그너의 ‘방황하는 화란인’에 출연해 열연하고 있다. [사진 폴 포츠]

레퍼터리에 영화 ‘대부’의 주제곡이 자주 나온다. 특별한 사연이라도 있나.
“이보다 더 인간에게 울림을 주는 노래는 찾기 힘들다. 노래를 부르면 시칠리아섬 풍경과 함께 라이플을 목 뒤에 걸고 다니는 엉성한 경호원과 호젓한 산길을 산책하는 마이클 콜레오네(알 파치노)의 모습이 떠오른다. 앤디 윌리엄스의 ‘speak softly love’보다는 이탈리아 원어 노래가 훨씬 더 좋다. 다행히 나는 이탈리아 말에 어려움이 없다. 니노 로타(1911~79) 작품이다. 재미있는 것은 나와 니노 로타는 묘하게도 대조적인 삶을 살아 왔다. 그는 로마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 미국 필라델피아 커티스 음악원을 졸업한 정통 작곡가다. 전설적인 지휘자 토스카니니의 수제자였다. 그러나 페데리코 펠리니의 영화 ‘길(La Strada)’의 주제가 ‘젤소미나’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고 그 길로 대중 음악가로 변신했다. ‘달콤한 인생(La Dolce Vita)’ ‘로미오와 줄리엣’에 이어 ‘대부(Godfather)’로 영화음악의 지존으로 등극했다. 알랭 들롱이 주연한 ‘태양은 가득히 (Plein Soleil)’도 그가 만들었다. 베토벤이나 푸치니 같은 클래식 작곡가를 꿈꾸어 왔지만 대중적인 영화음악의 전설로 남은 그가 나에게는 벤치마킹의 대상이 된다. 당연히 그의 작품이 나의 고정 레퍼터리로 자리 잡았다.”
 
원래 클래식 성악가를 꿈꾸었다고 했다.
“인생이라는 게 맘대로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비록 대중적으로 성공해 보이지만 클래식에 대한 미련이 여전하다. 오디션에서 부른 노래도 푸치니의 투란도트 중 ‘공주는 잠 못 이루고’였다. 최근엔 유서 깊은 런던의 치즈윅 하우스에서 토스카의 카바라도시 역을 맡았다. 내게는 오랜 꿈을 이룬 것 같은 벅찬 감격이었다. 쉽진 않겠지만 조금씩 클래식 영역에 도전할 생각이다. 음악은 힘이 세다. 가수 밥 딜런이 노벨 문학상을 받는 세상이다. 베르곤지·스키파·질리 같이 인류에게 잊혀지지 않는 성악가가 되는 것이 내 꿈이다.”

폴 포츠는 예상과 달리 속이 꽉 찬 사람이었다. 인터뷰는 둘 다 영화 ‘대부’를 좋아한다는 점에서 의기투합했다. 소년 시절 내 꿈은 결혼을 하고 언젠가 성년이 된 아들과 ‘대부’를 같이 보고 맥주 한잔하는 것이었다. 나는 ‘대부’를 통해 사랑·우정·의리·배신· 가족 등등 모든 것을 배웠다. 당연히 나의 십팔번은 ‘대부’ 주제곡이다. 폴 포츠는 한국인의 DNA가 흐르는 노랑머리 한국인쯤 된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불현듯 학창 시절 책상 앞에 붙여 놓았던 글귀가 떠오른다. “오랫동안 꿈을 꾼 자, 마침내 그 꿈의 주인공이 된다.” 앙드레 말로의 말이다. 폴 포츠는 꿈을 이루었고 또 다른 꿈을 위해 가고 있다. 오늘 문득 궁금해진다. 바람처럼 멀리 사라져간 인생길, 우리는 무슨 꿈, 어떤 꿈을 꾸며 살아 왔을까. 사랑이 지고 그리움만 남는 가을이 깊어간다.

김동률 서강대 MOT 대학원 교수 yule21@empas.com
 김동률 서강대 MOT 대학원 교수
서강대 MOT 대학원에서에서 언론학(매체경영)을 강의한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대 박사 출신으로 KDI 연구위원 등을 지냈고 현재 EBS 이사다. 휴머니즘에 바탕을 둔 칼럼을 써왔으며 그의 에세이는 고교 교과서에 실렸다. 저서로 『신문경영론: MBA 저널리즘』, 『철학자들의 언론 강의』(역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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