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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 생명수당 1만원 올리는 데 8년 걸려

중앙선데이 2016.10.16 01:30 501호 4면 지면보기

지난 14일 서울 서초동 서울소방학교에서 한 소방대원이 ‘2001년 홍제동 화재 순직자 조형비’ 앞에서 묵념을 하고 있다. 이 추모비는 순직자 유족이 만들었다. 동판에는 당시 순직한 서울 서부소방서(현재 은평소방서) 대원 6명이 새겨져 있다. 김경록 기자



군인·소방관·경찰 등 이른바 ‘제복 공무원’의 직무는 위험성을 수반한다. ‘언제라도 다치거나 최악의 경우 죽을 수 있다’는 각오 없이는 제대로 직무를 수행하기 힘들다. 우리 사회가 이들에게 ‘혹여라도 다치면 국가와 사회가 당신의 여생과 가족을 책임지겠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해야 하는 이유다.


제복 공무원 홀대하는 사회

하지만 우리 사회는 공무원 재해보상제도를 아직 갖추지 못했다. 성시경 단국대 공공관리학부 교수는 “제복 공무원은 국가와 사회의 안전을 위해 일한다는 점에서 ‘공공안전 공무원’에 해당한다. 이런 공무원에 대한 사회적 수요는 큰데 그에 대한 보상과 처우를 우리는 아직 제공하지 않고 있다”고 평가했다.



숨지거나 다치는 ‘제복’들을 위한 사회적 논의는 여러 차례 있었다. 2001년 3월 서울 서부소방서 소속 소방관 6명이 숨진 서울 홍제동 화재 다음날 김대중 대통령은 “소방관들의 열악한 근무환경과 처우 개선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7년 뒤인 2008년 서울 대조동 나이트클럽 화재에서 또 같은 소방서 소속 소방관 3명이 희생됐다. 이명박 대통령 정부 첫해였다. 사고 직후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에서 다시 ‘소방관 처우’가 논의됐다. 주제는 당시 월 5만원이던 소방관 위험수당이었다. 당시 허태열 최고위원은 위험수당 액수를 언급하며 “한나라당이 정말 진지하게 이 문제를 정면으로 해결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3년 뒤인 2011년 12월 경기도 평택시 가구전시장 화재에서 소방관 3명이 숨지자 또 위험수당이 논의됐다. 사고 이후 열흘 뒤 ‘소방관 처우개선 당정협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당시 이주영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은 “노후장비 교체와 소방공무원 정신건강관리 등을 위해 예산을 충분히 증액하고 소방공무원의 수당 현실화 방안도 정부와 긴밀히 협의해 개선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소방관 위험수당은 3년 전 그대로인 월 5만원이었다. 결국 위험수당은 올해 1월에야 6만원으로 1만원 올랐다.



지난해 『어느 소방관의 기도』라는 에세이집을 낸 오영환(28) 소방교는 “소방관 순직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여론은 동정을 하고 처우 개선을 언급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언제 그랬냐’는 듯 관심이 시들었다”고 말했다. 오 소방교는 “소방관들이 안타까워하는 것은 처우가 개선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가 ‘불안전’한 상태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왜 이런 일이 되풀이될까. 전문가들은 현장을 지키는 제복 공무원에 대한 우리 사회의 경시 풍조를 우선 꼽는다. 이창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는 국가정보원·검찰 등 사정기관을 어려워하고 국민에게 직접적 안전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무원은 후순위로 돌린다”고 지적했다.



조직 속성상 제복 공무원은 자기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 윤명오 서울시립대 재난과학과 교수는 “제복 공무원은 규율을 강조하는 조직 문화이다 보니 본인들의 불만을 대외적으로 제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국민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활동하지만 정작 자신들의 권익을 강하게 주장할 수 없는 특징을 보인다”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제복 공무원 재해보상제도는 사회 여론의 영향을 받을 때마다 조금씩 개선될 수밖에 없었다. 2004년 8월 폭력 피의자 이학만 사건으로 심재호(32) 경위와 이재현(27) 경장이 순직했다. 이들에게 국가가 지급한 위로금과 보상금은 각각 1억1073만원, 4658만원이었다. 전국 경찰관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아 각각의 유족에게 전달한 위로금 3억6000만원보다도 훨씬 적었다. 정부 보상금이 너무 적다는 여론이 빗발치자 정부와 여당은 ‘위험직무 관련 순직공무원의 보상에 관한 법률’을 별도로 제정했다. 그리고 위험직무에 근무하는 제복 공무원에 대한 보상을 평균 보수액의 60배(개정 전 순직 당시 월 보수액의 36배)로 확대했다. 현재 이 법률은 공무원연금법에 통합됐다.



제복 공무원에 대한 순직 보상은 민간 근로자들이 산업재해로 숨졌을 때 받는 보상의 53~75% 수준이다. 배우자와 자녀 2명을 둔 7년차 소방공무원이 순직하면 매달 115만원의 연금이 유족에게 지급된다. 3인 가족 최저생계비 143만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액수다. 민간인은 비슷한 기간을 근무하다 사망했을 때 산재연금으로 매달 유족에게 200만원 이상이 지급된다.



위험직 공무원의 재해보상이 잘 개선되지 않은 데는 법 체계의 문제도 있다. 현재 공무원 재해보상은 별도 법이 아니라 공무원연금법에 담겨 있다. 반면 미국과 일본은 공무원연금법과는 별개의 법을 운영 중이다. 정부가 최근 공무원 재해보상법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배경이다.



정창률 단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공무원의 퇴직연금을 줄여야 한다는 여론이 지배적인 상태에서 소방관·경찰 등이 위험직무를 수행하다 재해를 입었을 때 보상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기 어려운 측면이 있는 만큼 분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보상 수준도 약하지만 보상을 받기까지 과정도 험난하다.



2002년 ‘제2연평해전’으로 숨진 해군 6명은 전사자가 아닌 순직자 대우를 받고 있다. 2004년 이전엔 ‘전사’에 따른 보상 규정이 없었다. 고(故) 윤영하 소령 등 6명의 유족에게 나간 보상금은 평균 3900만원에 그쳤다. 고 박동혁 병장은 3048만원(월 보수액의 36배)의 보상금과 61만원의 연금이 유가족에게 지급됐다. 전사 규정이 생긴 후에는 2억4520만원의 보상금이 평균적으로 지급된다. 박동혁 병장의 아버지 박남준씨는 “북한군과 교전하다 죽은 아들을 전사자가 아닌 단순 순직자로 처리한 것에 문제를 제기했지만 국가는 답이 없다”며 “제대로 예우도 하지 않는 국가에 누가 충성을 할 수 있겠냐”고 말했다. 지난 19대 국회에선 윤영하 소령 등 6명을 전사자로 예우하는 ‘제2연평해전 특별법’이 발의됐지만 통과되지 못했다.



소방관이 화재 진압 중 각종 유해물질에 노출돼 암에 걸려 숨졌을 때도 순직(위험직무 순직)을 인정받기 힘들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암에 걸린 소방관이 공무 관련 사망을 인정받은 것은 18명 중 1명뿐이다.



2014년 6월 숨진 고 김범석 소방관의 유족은 정부와 소송을 벌이고 있다. 김 소방관은 혈관육종암이라는 희귀병으로 2년8개월간 투병했다. 그는 2006년 소방관이 된 후 7년간 화재·사고 현장 733곳에서 350여 명의 생명을 건졌다. 유족은 발병 직전의 검진에서도 별다른 이상이 발견되지 않은 것을 들어 그가 화재 진화 중 유해물질에 노출돼 암에 걸렸을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공무원연금공단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버지 김정남씨는 “범석이가 ‘아들에게 자랑스러운 소방관 아빠로 기억됐으면 좋겠다’는 유언을 남겼다”고 말했다. 김씨는 “국가에 헌신했는데 당국은 소방과는 상관없는 질병으로 죽었다고 외면하니 서러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안효성 기자, 이우연 인턴기자hyoz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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