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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 순직자 장례식에 수천 명 몰리는 미국

중앙선데이 2016.10.16 01:27 501호 4면 지면보기

미국 캘리포니아 팜스프링스 경찰 본부에 있는 추모비. 근무 중 총에 맞아 숨진 레슬리 제레브니(왼쪽)와 호세 베가의 사진이 놓여 있다. 시민들이 두 경찰을 추모하며 놓고 간 꽃들로 가득하다. [로이터=뉴스1]



2013년 7월 7일, 미국 애리조나주의 프레스콧에선 특별한 장례식이 열렸다. 일주일 전 대형 산불 진압 도중 숨진 19명의 소방관이 주인공이었다. 섭씨 38도가 넘는 불볕더위 속에 수천 명의 시민이 소방관들을 맞았다. 남녀노소 모두 가슴에 손을 얹고 그들에게 경의를 표했다. 일부는 흐느꼈다. 번화한 도심은 장례식 동안 깊은 정적에 빠졌다. 시민들은 “장례식을 지켜볼 수 있어 영광”이라고 입을 모았다.


제복 공무원 예우하는 선진국들

이날 장례식은 소방관·군인·경찰관 등 제복을 입은 이들에 대한 미국 사회의 존경과 예우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그들의 헌신과 희생이 있기에 안전한 일상을 누릴 수 있다는 인식이 깊고도 넓다.



“복무해줘서 고맙습니다(Thank you for your service)”는 인사말도 단적인 사례다. 현역군인이나 재향군인은 모르는 시민들에게서도 이런 말을 듣는다. 이런 분위기엔 정치권도 예외가 아니다. 대통령은 뛰어난 무공을 세운 군인에게 의회의 이름으로 매년 ‘명예의 훈장’을 직접 수여한다. 이 행사는 TV로 전국에 중계된다. 전쟁에서 사망하거나 실종되면 나라가 끝까지 찾아준다. 미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 확인국(DPAA)은 한국전은 물론 제2차 세계대전 때 실종된 군인까지 찾고 있다. 경찰관들은 일상에서 권위를 인정받는다. 경찰의 지시를 어기면 상당한 불이익이 뒤따른다. 뉴저지주에선 경찰관에게 침만 뱉어도 폭행죄가 성립된다. 미국 어느 주나 경찰관 한 명이 죽으면 주 전역에 비상이 걸린다.



‘제복’ 그룹은 처우도 넉넉한 편이다. 생계 걱정 없이 업무에 전념할 수 있을 정도다. 뉴욕시 소방관은 5년차 이후엔 9만9104달러(약 1억1200만원, 각종 혜택 포함)를 받는다. 올해 미 의회는 직무와 연관된 암에 걸려 퇴직한 소방관들에게 경제적 손실을 보상해 주는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뉴저지의 경력 5년 이상 경찰관의 평균 연봉은 10만 달러가 넘는다. 현역·재향군인들에겐 의료는 물론 주택융자·교육 등 다양한 혜택이 주어진다. 미 법무부는 소방관 등 공공 안전을 위해 일하다 장애를 얻거나 사망한 경우엔 본인이나 유족에게 최대 33만9881달러(약 3억8000만원)의 혜택을 준다.



여론조사는 ‘제복’에 대한 인식을 확인시켜 준다. ‘제복’ 그룹은 매년 미국인들이 뽑은 가장 명망 있는 직업에 속한다. 올해는 의사(1위), 과학자(2위)에 이어 소방관과 군인이 3, 4위를 차지했다. 경찰관도 10위에 올랐다.



영국에서도 ‘제복’에 대한 예우가 남다르다. 아무리 작은 마을에도 가장 눈에 띄는 곳에 참전기념비가 있고 그 아래엔 늘 전사자를 기리는 꽃인 개양귀비가 놓여 있곤 한다. 1·2차 세계대전은 물론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 관련 행사에 엘리자베스 2세 등 왕실 가족이 출동하는데 대표적인 게 11월의 전사자 추모일이다. 두 차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전했던 해리 왕자가 상이용사를 위한 국제적인 체육대회(Invictus·인빅투스)를 주도하기도 했다.



올 7월 프랑스 티에발에서 열린 솜강 전투 10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제러미 코빈 영국 노동당 대표의 태도가 논란이 됐다. 티에발은 솜강 전투에서 목숨을 잃었으나 시신을 찾지 못한 대영제국 군인 7만2000여 명의 이름이 새겨진 곳이다. 영국으로선 각별할 수밖에 없는 장소다. 이날 행사에 프랑스에선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 영국에선 윌리엄 왕세손 부부와 데이비드 캐머런 당시 총리가 자리했다. 코빈 대표는 사전에 통보하지 않은 채 행사장에 모습을 보였는데, 이미 기념식이 시작되고 나서 10분 후였다. 이후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모습도 목격됐다고 한다. 예의 논란을 불러일으킨 이유다.



최근엔 보수적 성향의 테리사 메이 총리가 보수당 전당대회에서 “영국 군인들이 앞으로 전쟁터에서 벌어진 일로 송사에 걸리는 번거로움이 없도록 하겠다”고 다짐한 일도 있었다. 이라크전에서 영국 군인에 의한 가혹 행위 주장이 제기되고 이후 잇따른 소송으로 이어졌던 일에 대한 반발이다.



군인뿐만이 아니다. 경찰·소방관 등 다른 ‘제복’들에 대한 존중도 남다르다. 여론조사기관인 입소스모리의 올 초 발표에 따르면 경찰의 신뢰도(68%)는 근소하게나마 성직자(67%)를 앞선다.



이는 유럽 전반의 분위기이기도 하다. 독일 시장조사 연합(GFK Verein·2014)이 세계 27개국을 대상으로 32개 직군에 대해 신뢰도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경찰을 신뢰한다는 의견이 세계적으론 63%인 데 비해 유럽에선 71%에 달했다. 소방관의 경우 신뢰도가 93%에 달했다. 올랑드 대통령이 테러리스트에 의해 살해당한 경찰 부부 추도식에 직접 참석하기도 했다.



 



 



뉴욕·런던=이상렬·고정애 특파원i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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