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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정권 vs 탁신세력 갈등, 정치불안 장기화 예고

중앙선데이 2016.10.16 01:21 501호 7면 지면보기

15일 푸미폰 태국 국왕이 안치된 방콕 왓 프라깨오(에메랄드 사원)로 향하는 조문행렬. 전국에서 몰려든 조문객들로 인근 도로가 종일 혼잡했다. [AP=뉴시스]



지난 13일 푸미폰 아둔야뎃 태국 국왕이 서거했다. 1946년 즉위 후 재임 70년이 지났으니 세계 최장기 재위 군주였다. 왕실 사무국은 30일간 공공기관에 반기를 게양하도록 하고 축제를 금지시켰으며 애도 기간인 1년 동안 공무원들이 상복을 입도록 했다. 구체적인 장례 일정은 발표하지 않았다.


푸미폰 국왕 사후 태국, 어디로 가나

국왕 서거 후 쁘라윳 짠오차 총리는 차기 왕위 계승자는 마하 와치랄롱꼰(64) 왕세자가 될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왕세자의 청에 의해 일정 기간 애도 기간을 거쳐 즉위 과정을 밟기로 했다고도 했다. 지금처럼 왕위가 공석인 상황에서는 왕실 자문기구 추밀원 의장인 쁘렘 띤술라론(96) 전 총리가 일시적으로 섭정을 하게 된다.



푸미폰 국왕의 장남인 와치랄롱꼰은 1924년 제정된 왕위계승법에 따라 72년 왕세자로 책봉됐다. 왕위계승법은 남성 후계자만을 인정하고 있지만 74년 개정된 헌법은 여성도 후계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태국에서는 그간 와치랄롱꼰 왕세자의 왕위 계승을 회의적으로 보는 이가 많았다. 공식적으로 세 차례 결혼한 왕세자는 여성 문제가 복잡하고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다. 그런 왕세자의 부정적 이미지가 바뀌기 시작한 것은 2014년 쿠데타 이후였다. 쿠데타 실세들이 왕세자를 지지하고 이미지 쇄신에도 적극 나섰기 때문이다.



쿠데타를 성공시킨 것은 항상 왕세자 편에 섰던 시리낏 왕비의 근위대 출신들인 ‘동부 호랑이 파벌’이었다. 쁘라윳 총리를 비롯해 현 군사정권 실세들이 모두 이 파벌에 속해 있다. 이들은 집권 후 자전거 타기 등 몇 차례 이벤트 행사를 통해 젊고 효심 깊은 이미지의 왕세자 띄우기에 나서 후계구도를 공고히 했다.



하지만 군부의 지지를 업고 국왕에 취임하더라도 와치랄롱꼰의 지위가 확고해지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는 즉위 후 그의 아버지와 같은 정치·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 확실하며, 또 반복되는 쿠데타와 취약한 정치상황 속에서 정치적 균형자의 역할을 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태국의 정치불안은 오랜 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정치불안 요인은 다양하지만 우선 왕세자를 항상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쁘렘 추밀원 의장과 추종 세력들의 존재를 들 수 있겠다. 81년부터 8년간 총리를 지낸 쁘렘은 푸미폰 국왕의 심복이었으며 원조 보수의 수장 격인 인물이다. 또 그는 태국에서 가장 막강한 인적 네트워크(왕실·군·관료·재계)를 갖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쁘렘은 80년대 이래 군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반왕세자 세력의 중심에 서 있었다.



쁘렘은 여성도 후계자가 될 수 있다는 74년 헌법에 따라 시린톤 공주가 왕위에 오르기를 희망했었다. 하지만 도중에 추대 적기를 놓치고 고령에 병약해지자 이런 중차대한 일을 추진할 정치적 동력을 상실했다. 쁘렘은 현재 2014년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세력과는 반탁신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위해 전략적으로 협력하고 있지만 아직도 그가 왕세자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바꾸었다는 구체적인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또 다른 불안요인은 시린톤 공주와 군부 내 지지세력들이다. 현 군사정권 실세 그룹이 왕세자를 지지한다고 해서 전 군이 일사불란하게 따를지는 미지수다. 공주는 육사 교수로 재직 중에 수많은 군 장교를 길러내 큰 정치적 자산을 갖고 있다. 또 군은 공주 지지파뿐 아니라 탁신 지지파(타한 땡모(수박 군인)·겉은 녹색, 속은 빨간색이라는 뜻), 쁘렘과 동맹 세력(‘동부 호랑이 파벌’ 이외의 일정세력) 등으로 분열돼 있는데, 때가 되면 이들이 수면 위로 나타나 정치적 행동을 할 가능성이 있다.



현 군사정권의 지속성 여부도 눈여겨봐야 한다. 태국에선 내년 말 총선이 치러질 예정이다. 군사정권은 총선 후 임명직 총리를 통해 정당정치를 무력화시켜 자신들의 권력을 공고히 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푸미폰 국왕이라는 큰 버팀목이 사라진 마당에 군부의 뜻대로 된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가장 큰 정치불안 요인은 왕세자와 군부, 탁신 세력의 관계다. 왕세자가 군부의 지지를 얻어 왕위에 오르더라도 탁신 세력의 지지 없이는 자신의 지위 보장이나 정국 안정은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왕세자는 원래 탁신 친나왓 전 총리와 가까운 사이였다고 한다. 총리에 오르기 전인 90년대 탁신은 시리낏 왕비와 낭비벽이 심해 항상 금전적으로 어려웠던 와치랄롱꼰 왕세자 두 사람에게 많은 기부를 했다고 알려진다. 그래서 집권 초기에는 시리낏 왕비 정치세력의 지지를 받았지만 푸미폰 국왕은 이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2001년 말 한 외신은 왕자와 탁신 간의 부적절한 금융거래를 보도해 태국 정부로부터 왕실모독죄로 기소 위협을 받았다. 이 매체는 또 2002년 초 탁신이 왕실 일에 간섭하고 와치랄롱꼰과 거래하는 것에 국왕이 짜증을 냈다는 내용을 보도하기도 했다.



2006년 쿠데타로 탁신이 물러난 후에도 왕세자는 탁신 세력을 지지했던 것으로 정치권에 알려져 있다. 2013년 11월 잉락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옐로셔츠 세력의 대규모 시위 때는 자신의 휘하 ‘끄롬 타한 마핫렉 랏차완롭 락사 프라옹’(보병연대)을 잉락 친나왓 총리 경호를 위해 파견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국민적 지지를 얻지 못한 왕세자로서는 동북부와 북부 농민, 도시 빈민층의 지지를 받고 있는 탁신과의 제휴가 절실할 수 있다. 하지만 왕세자를 차기 국왕으로 추대한 것은 현 군부 실세들이다. 그러니 이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군사정권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왕세자를 통제하에 두려고 할 것이다. 탁신과 친탁신 레드셔츠 세력들도 왕세자의 정치적 처신을 유심히 지켜볼 것이다. 왕세자는 현 군사정권과 탁신 세력 사이에서 정치적 균형자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며, 결국 그를 이용하려는 정치세력들의 경쟁은 정국을 불안하게 만들 것이다.



긍정적인 전망도 없지 않다. 결점 많은 왕세자의 등극이 장기적으로 태국의 순수 입헌군주제의 제도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분석이 그것이다. 72년 왕세자에 오른 후 지금까지 왕세자의 자질은 후계 문제의 중요한 쟁점이 됐다. 하지만 왕세자의 자질을 후계자의 자격으로 과도하게 거론하는 것은 정치·사회적 영향력이 막강했던 푸미폰 국왕과 같은 (비정상적인) 입헌군주에 대한 기대감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역설적으로 차기 국왕이 푸미폰 국왕과 같은 영향력을 갖지 못하는 경우 입헌군주제 제도화와 정치 발전에 기여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김홍구 부산외국어대 동남아창의융합학부 교수hongkoo@buf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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