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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찰액 4년 새 3배 껑충 연말에는 더 뜨거워진다

중앙선데이 2016.10.16 01:15 501호 10면 지면보기

모노크롬에서 파생된 단색화는 한국 고유의 미술 사조로 자리 잡으며 최근 경매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한국의 대표적인 단색화들. 1 김환기 ‘19-Ⅶ-71 #209’, 2 박서보 ‘묘법 No.1~81’, 3 윤형근 ‘무제’, 4 하종현 ‘접합 07-20’. [사진 서울옥션]



“탕탕!”


단색화 열풍이 지배하는 미술품 경매

낙찰을 알리는 경쾌한 경매봉 소리. 가을비를 뚫고 경매장을 찾은 200여 명의 경매객 사이에 나지막한 탄성과 탄식이 뒤섞였다. 부러움의 시선은 이내 축하 박수로 바뀌었다. 지난달 27일 서울 평창동 서울옥션에서 진행된 141회 미술품 경매에서 박서보 화백의 ‘묘법 No.1~81’은 11억3000만원에 새 주인을 찾았다. 9억5000만원에서 시작한 경매는 순식간에 1억8000만원의 웃돈이 붙었다. 박 화백은 국내를 대표하는 단색화 화가. 묘법은 흰색의 음영만으로 작가의 정신세계를 표현한 작품이다.



이날 김환기 화백의 작품도 주목을 받았다. 2007년 2억원에 낙찰된 뒤 9년 만에 다시 세상에 나온 점화 ‘15-VII-70 #181’이다. 한국 추상 1세대로 1974년 세상을 떠난 김 화백은 단색화의 시조로 일컬어진다. 그는 지난해부터 한국 미술품의 최고가 기록을 새로 쓰고 있다. 5억5000만원에 시작한 이날 경매에서도 현장 참여자와 국내외의 전화 참여자가 10여 차례 경합을 벌인 끝에 6억3000만원에 낙찰됐다.



단조로움과 무규칙 속에 수행의 철학을 드러내는 단색화. 복잡하고 촘촘한 일상을 사는 현대인의 자기 성찰 욕망을 투영하는 미술 사조다. 50~60년대 서구권의 모노크롬(단색을 사용한 미술 사조)에서 파생됐지만 이제는 한국 고유의 미술로 발전했다. 2011년 뉴욕 구겐하임의 ‘이우환 영혼의 창조전’, 2014년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 특별전 이후 제3세계의 주목할 만한 추상화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물질 간의 관계를 독특한 패턴 미학으로 선보인 일본의 ‘모노하’(物派)에 비견되기도 한다. 한국에서 단색화가 태동한 70년대에는 주목받지 못했지만 40여 년이 지난 지금에야 빛을 보고 있다.



단색화의 달라진 위상은 미술 경매시장에서 잘 드러난다. 지난해 10월 서울옥션 홍콩 경매에서 김환기의 전면 점화 ‘19-Ⅶ-71 #209’는 47억2100만원에 낙찰돼 박수근의 ‘빨래터’(45억2000만원)를 누르고 국내 최고 경매가 기록을 경신했다. 4월과 5월에는 김 화백의 ‘무제(Untitled)’ ‘무제 3-V-71 #203’이 각각 48억6750만원, 45억6240만원에 팔렸다. 6월에도 ‘무제 27-VII-72 #228’이 역대 최고가인 54억원에 낙찰되는 등 계속해서 가치가 커가고 있다.



단색화 열풍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잠들었던 미술품 경매시장에도 다시 활력을 불어넣었다. 국내 양대 미술품 경매회사인 서울·K옥션의 낙찰가 총액은 2011년 532억원에서 단색화가 본격적으로 거래되기 시작한 2015년에는 1746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정상화·하종현·정창섭·김기린 화백 등 인기]



올 연말에도 단색화 경매는 뜨거울 전망이다. 연말에는 여유자금이 경매시장에 몰리는 경향이 있다. 이에 맞춰 박서보·정상화·하종현 등의 기획전이 열릴 예정이다. 큰손이 많은 뉴욕·홍콩의 단색화 선호도 여전하다. 김현희 서울옥션 수석경매사는 “단색화를 중심으로 한 한국 추상미술은 아시아·유럽·미국 등지의 애호가들로부터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통신기술의 발달로 직접 경매장을 찾아야 하는 수고를 덜게 된 점도 단색화 열풍과 미술 경매시장의 성장에 일조했다. 온라인을 통해 세계 어디에서라도 경매 현장을 지켜볼 수 있고 전화로 실시간 입찰을 할 수 있다. 경매회사가 홈페이지에 게재한 작품을 두고 하루에서 열흘까지 경쟁을 벌이는 온라인 경매시장도 활발하다. 경매를 시작하기 열흘 전 출품작 전시회에서 큐레이터로부터 작품의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취미와 재테크를 겸할 수 있는 셈이다.



미술품 경매는 예금·채권은 물론 ‘박스피’(박스권+코스피)에 갇혀 시름하고 있는 주식과 비교해도 높은 수익률이 매력이다. 특히 단색화는 70년대 활약한 화백의 작품들이 꾸준하게 거래되며 5~6년 전에 비해 가격이 2~3배 올랐다. 거래가 잦으면 미술품의 가격은 오른다. 특히 저금리 탓에 투자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하려는 수요가 미술시장으로 꾸준히 유입되고 있다는 전언이다. 박서보 화백의 ‘묘법’은 올 들어서만 가격이 세 번 올랐고, 하종현 화백의 작품도 올 들어 1억원대로 뛰었다. 정창섭·김기린 화백의 작품도 지난 2년 새 50% 가까이 가격이 올랐다.



[저렴하고 안정적인 현대·고미술품도 관심]



다만 “캔버스에 물감만 묻혀도 팔린다”는 이야기가 떠돌던 2000년대 중반과 같은 상황은 아니다. 불황 여파로 최근에는 상품성을 검증받은 작품으로 자금의 쏠림이 심하다. 위험 투자를 자제하는 분위기다. 단색화에 돈이 몰리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모던·고미술을 블루오션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단색화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고 변동성이 낮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 미술에 대한 해외의 관심이 높아진 점도 수익에 대한 기대감으로 이어진다. 이날 경매에서도 단색화보다 전통·현대화의 입찰 경쟁이 치열했다. 1100만원에 시작한 오윤 화백의 ‘할머니’는 4300만원에, 시초가가 1억4500만원이었던 단원 김홍도의 ‘서호방학도’는 5억3000만원에 각각 낙찰됐다. 작자 미상의 ‘백자청화거북형연적’도 시작가 1800만원의 네 배 가까운 6800만원에 팔렸다.



미술품 경매도 안정을 추구하는 경향이 들어서면서 신작보다는 구작이, 생존 작가보다는 타계한 작가의 그림이 더 사랑받는다. 미술 경매시장의 경향과 애호가들이 관심 갖는 그림, 작가의 세계관, 기법 등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 미술품은 정찰제가 아니기 때문에 갤러리보다는 경매를, 작품성보다는 환금성을 따지는 것이 좋다. 10년째 미술품 투자를 해오고 있는 주원 전 KTB증권 대표이사는 “주식처럼 코스닥·벤처기업에 투자하라고 추천할 수 없는 분야”라며 “무명 작가를 발굴하는 것보다 유명 작가의 작은 작품을 염두에 두고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일확천금을 노리고 미술품 경매에 접근해선 안 된다는 이야기다.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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