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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적 성취는 탁월, 잘못된 정책의 면죄부 근거 되기도

중앙선데이 2016.10.16 01:15 501호 11면 지면보기

가장 인기 있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는 노벨재단 설문조사, 자료: 노벨재단

올해 노벨 경제학상 공동 수상자인 올리버 하트 하버드대 교수(왼쪽 사진)와 벵트 홀름스트룀 MIT 교수.



올해 노벨 경제학상, 정확히 말하면 ‘알프레드 노벨을 기념하기 위한 경제과학 분야 스웨덴 중앙은행상(The Sveriges Riksbank Prize in Economic Sciences in memory of Alfred Nobel)’ 수상자를 미리 맞힌 이는 없었다. 공동 수상자는 발표 전 후보에도 거론되지 않았던 인물들이었다. 계약이론(contract theory)의 권위자인 올리버 하트(68) 하버드대 교수와 벵트 홀름스트룀(67)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다. 스웨덴 왕립과학원이 밝힌 선정 이유는 이렇다. “두 학자의 이론은 실생활의 계약과 제도를 이해하고 계약을 고안할 때의 함정을 이해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노벨 경제학상이 세상을 구했을까

노벨 경제학상의 후광은 엄청났다. 발음도 어려운 벵트 홀름스트룀과 연세대에 한 달간 석좌교수로 있었던 올리버 하트에게 전 세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그러자 딴죽을 거는 이가 나타났다. 영국 옥스퍼드대의 에브너 오퍼 교수는 노벨 경제학상 발표 직후 미국의 기고 전문 매체인 ‘프로젝트 신디케이트’(박근혜 대통령도 2014년 말 기고한 적이 있다)에 “노벨 경제학상에 문제가 있다”는 글을 실었다. 그는 “노벨상이 주는 후광 효과는 공익을 해치는 정부 정책에 신뢰도를 부여할 위험을 안고 있다”며 “경제 불평등을 심화시키거나 금융위기를 발생시키는 정책도 노벨상 수상자의 이론에 기반하면 믿을 만하다는 인식을 준다”고 주장했다.



오퍼 교수가 이번 수상자 둘을 직접 공격한 것은 아니다. 그는 노벨 경제학상의 ‘정체성’과 ‘권위의 오류 가능성’을 문제 삼았다. 실제로 노벨 경제학상은 그동안 적잖은 비판을 받아왔다. 많은 학자, 특히 좌파 경제학자들은 “노벨 경제학상이 워싱턴 컨센서스(미국식 시장경제 체제의 대외 확산 전략)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는 데 악용된다”고 비판했다. 그 근거 중 하나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의 미국 편중이다. 실제로 1969~2016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78명 중 45명(57.7%)이 미국인이다. 특히 워싱턴 컨센서스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90년 이후부터 따지면 51명 중 34명(66.7%)이 미국 국적이다. 공동 수상까지 감안하면 지난 48년 동안 미국 경제학자는 30번이나 시상대에 올랐다.



[한때는 우파·주류 경제학자가 독식]



노벨 경제학상의 탄생 배경도 여전히 논란거리다. 『비경제학자를 위한 경제학 사전』을 쓴 장 마크비토리 전 레제코(프랑스 경제일간지) 편집장은 “자유주의 경제사상의 핵심인 시카고학파가 아홉 명의 수상자를 배출했다”며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밀턴 프리드먼, 게리 베커 같은 수상자 선정은 노벨 경제학상이 자유주의, 나아가 우파 성향의 상이라는 이미지를 강화했다”고 주장한다. 오퍼 교수 역시 “스웨덴 왕립과학원 내에서 수상자 선정 과정을 장악한 사람들은 중도우파 그룹이었다”며 “특히 선정 과정에서 입김이 가장 셌던 사람은 아사르 린드벡”이라고 지적했다. 아사르 린드벡은 사회민주주의에서 자유주의로 전향을 선언했던 스톡홀름대 교수로 15년간 노벨 경제학상 심사위원장을 지냈다. 오퍼 교수는 “린드벡의 입장은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세계은행, 미 국무부와 일맥상통한다”며 “린드벡류의 주장은 소수의 기업과 금융 엘리트를 살찌우지만 심각한 경제·금융위기를 낳았다”고 주장했다. 물론 이런 비판은 좌파 경제학자들의 단골 메뉴라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다.



린드벡이 심사위원회를 떠난 95년 이후로는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합리적 기대이론으로 케인스를 비판했지만 나중에 시장이 전부라는 신념을 거뒀던 로버트 루커스(95년), 빈곤을 연구한 인도의 경제학자 아마르티아 센(98년) 등이 대표적이다. 신(新)케인지언으로 불리는 폴 크루그먼(2008년)이나 지난해 수상자인 앵거스 디턴 역시 노벨 경제학상이 주류·우파 경제학의 전유물이라는 비판을 무색하게 한다.



[90년대 후엔 수상자 이력 다양해져]



많은 논란에도 노벨 경제학상이 경제학자가 받을 수 있는 최고 권위의 상이라는 데 이견은 없다. 69년 이후 48년 동안 78명이 이 상을 받았다. 이 중 24명이 단독 수상했다. 수상자의 평균 나이는 67세다. 최고령자는 레오니트 후르비치 미네소타대 명예교수로 수상 당시 아흔 살이었다. 최연소 수상자는 선거의 역설을 수학적으로 증명한 ‘애로의 불가능성 정리’로 잘 알려진 케네스 애로 교수다. 수상 당시 51세였다. 여성은 2009년 수상자인 엘리너 오스트롬이 유일하다.



노벨 경제학상은 사후(死後) 수상이 없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존 메이너드 케인스, 앨프리드 마셜, 소스타인 베블런, 어빙 피셔 등도 이 상을 받았을지 모른다. 버블 붕괴를 연구한 하이먼 민스키도 마찬가지다. 물론 이들이 아니더라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의 면면은 화려하고 전 세계 정치·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현대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폴 새뮤얼슨(1915~2009)이 대표적이다. 70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새뮤얼슨은 시카고학파의 본산인 시카고대를 나왔지만 케인스 이론에도 정통했다. 그래서 나온 게 신고전학파의 미시적 시장균형 이론과 케인스의 거시경제 이론을 접목한 ‘신고전파 종합이론’이다. 이 이론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 정부 정책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새뮤얼슨의 학문적 라이벌이자 ‘신자유주의자들의 예수’로도 불리는 밀턴 프리드먼(1912~2006)은 6년 뒤 노벨상을 받았다. 그의 이론은 미국 닉슨·레이건 정부를 비롯한 많은 국가에서 경제정책의 근간이 됐다. 이렇듯 70년대에는 정치적 성향이 뚜렷한 경제학자들이 주로 받았는데 결정적 사건이 74년에 벌어졌다. 그해 공동 수상자는 자유주의 경제학자인 프리드리히 하이에크(1899~1992)와 국가의 역할을 강조하는 스톡홀름학파의 대부 군나르 뮈르달(1898~1987)이었다. 정부의 역할에 대해 상반된 견해를 가졌던 두 학자가 같은 해에 함께 상을 받은 것이다. 노벨 경제학상이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균형을 잡는 데 이용됐다는 비판이 일면서 폐지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미국 케네디 정부에서 경제고문을 지낸 로버트 솔로(1924~) MIT 명예교수의 성장 이론 역시 각국의 경제성장 정책에 대거 반영됐다. 벤 버냉키 전 연방준비제도 의장과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조셉 스티글리츠, 폴 크루그먼 등이 그의 제자다. 솔로 교수는 87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50년대 기존 경제학이 다루지 않았던 인간 행동과 사회 현상에 대한 경제학적 연구 분야를 개척한 게리 베커(92년 수상) 전 시카고대 교수의 이론 역시 각국 사회정책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밖에 단기 투기성 외환거래에 부과하는 토빈세를 제안한 제임스 토빈(81년 수상) 전 예일대 교수, 시장을 장악한 소수의 대기업을 어떻게 규제해야 하는지 이론적으로 밝히면서 노벨위원회로부터 “우리 시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학자”라는 평을 받은 장 티롤(2014년 수상) 프랑스 툴루즈1대학 교수, ‘경제학계의 테레사’로 불리며 후생경제학의 진일보를 이끈 아마르티아 센(98년 수상) 하버드대 교수, ‘인간은 제한적으로 합리적’이라는 연구로 심리학자로는 처음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대니얼 카너먼(2002년 수상) 프린스턴대 교수 등도 큰 업적을 남긴 경제학자로 꼽힌다.



[스티글리츠·실러·디턴 등 영향력 커]



노벨 경제학상의 권위에 대중적 인지도를 바탕으로 세계 여론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도 적지 않다. 주류 경제학을 비판한 책 『불평등의 대가』로 잘 알려진 조셉 스티글리츠(2001년 수상), 필립스 곡선의 오류를 지적하며 현대 거시경제학의 이론적 기반을 닦았다는 평을 받는 에드먼드 펠프스(2006년 수상), 2000년부터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폴 크루그먼(2008년 수상), 『비이성적 과열』과 『야성적 충동』을 통해 버블이 끼는 원인과 경제학의 오류를 지적한 로버트 실러(2013년 수상), 『위대한 탈출』 등 빈곤과 불평등 연구로 유명한 앵거스 디턴 등이다.



학문적 업적을 떠나 영화로 더 유명해진 이도 있다. 94년 비협력적 게임이론으로 수상한 존 포브스 내시다. 영화 ‘뷰티플 마인드’의 실제 인물인 내시 교수는 노벨재단 웹사이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수상자 1위에 올라 있다. 지난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물론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의 위대한 업적만 기억되는 건 아니다. 『블랙스완』의 저자인 나심 탈레브는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 직후 “잘못된 경제이론이 노벨상이라는 권위를 인정받아 널리 퍼지면서 금융위기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탈레브가 지목한 인물은 90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한 포트폴리오 이론의 대가 해리 마코위츠와 머턴 밀러, 윌리엄 샤프, 그리고 옵션의 가치를 결정하는 공식으로 97년 공동 수상한 로버트 머턴과 마이런 숄스 등이다. 특히 로버트 머턴과 마이런 숄스가 월가의 큰손인 존 메리웨더와 손잡고 세운 롱텀캐피털매지니먼트(LTCM)가 무리한 투자 방식으로 98년 파산하면서 두 학자는 물론 노벨 경제학상의 권위에도 치명상을 입었다.



 



 



김태윤 기자 pin2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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