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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게 되면 목숨 걸고 해야 부족하면 수백 번 반복하던…

중앙선데이 2016.10.16 00:45 501호 6면 지면보기
필자는 권혁주씨가 모스크바에서 유학하던 청소년 시절부터 그의 음악 활동을 도왔다. 시차를 계산해서 집으로 전화를 걸면 그는 러시아어로 “알로”라며 하이톤으로 날카롭게 받았다. 하지만 필자임을 밝히면 곧 한국어로 “아, 안녕하세요”라며 온순하고 수줍게 회답하곤 했다. 9세 때부터 그 춥고 황량한 땅에서 콧대 높은 러시아 정통 음악을 배우며 결코 그들에게 지지 않기 위해 몇 곱절 더 열심히 연습했던 그였다. 본인에게는 늘 매우 엄격한 척도를 놓았는데, 마치 자기의 한계가 어디인지 시험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지독했다. 바른 음정 하나, 원하는 소리 하나를 만들기 위해 부족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수백 번 반복 연습할 정도였다. 그는 후배나 제자들에게 “그렇게 해봐. 그러면 안 되는 것이 어디 있겠어”라며 이런 연습 방법을 강권하곤 했다.



2004년 여름, 모스크바에 있는 그와 이메일로 연주할 곡을 상의할 때다. “하게 되면 진짜 목숨 걸고 해야 하거든요.” 이미 모스크바에서 파가니니 카프리스 전곡 연주를 성황리에 마쳤기에 같은 곡을 서울에서도 하자는 제안을 쉽게 수락할 줄 알았는데, 이마저도 그는 무척 신중했다. 당시 19세에 불과했지만, 섣불리 판단하거나 아무렇게나 음악을 대하지 않는 철저한 완벽주의자의 면모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물론 이듬해 3월 카프리스 전곡을 완벽하게 소화해낸 것은 말할 필요도 없겠다.


젊은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를 추모하며

연주뿐만이 아니다. 음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그는 어느 음악가보다 자기 관리가 철저했다. 리허설에는 제일 먼저 나타나는 것으로 유명했고, 앙상블의 어느 포지션에 앉아 연주를 하더라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연주가 끝나면 무심히 가겠다고 인사하고 떠나면서도 꼭 문자로 묻곤 했다. ‘소리 어땠어요? 음악 괜찮았어요?’라고.



대다수 음악가들은 저녁 공연을 마친 후 한밤중까지 잠을 못 이루기 십상이므로 다음날의 시작이 늦다. 하지만 그는 연주가 끝난 다음날도 여느 회사원처럼 아침 일찍부터 또 다른 음악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에게는 음악 연주가 잠이었고, 휴식이었고 양식이었던 모양이다. 그는 음악을 들려주러 지방 어디든 주저하지 않고 찾아 갔고, 누구든 함께 연주하길 원하면 늘 그 자리에 서 주었다.



그의 관심은 클래식 음악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모바일 게임을 시작하면 무조건 최고 등급을 석권해야 했다. 언젠가 마드리드에 연주 갔을 적에는 잠시 짬을 내 축구 경기장에 들러 좋아하는 축구 선수의 유니폼을 사며 행복해 하던 모습이 기억난다. 끝내주는 드러머이기도 했던 그는 한동안 헤비메탈에 심취해 이메일 하단에 “I’m Creeping death”(메탈리카의 ‘Creeping Death’ 가사 중)를 붙여 보내기도 했다. 한동안 하고 있던 눈썹 피어싱은 그나마 얌전한 부위를 선별한 것이었다. 자동차와 운전을 좋아하던 그는 늘 어느 먼 지방연주를 가도 직접 운전해 가곤 했다.



그는 좋아하는 음악가는 있지만 누구를 닮고 싶다던가, 우상으로 여기는 음악가는 없다고 했다. 모든 음악가가 자기만의 개성과 특징 그리고 음색, 표현이 있어야 한다고 늘 말했다. 왜냐하면 세상에 같은 사람은 없으므로. 음악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는 것이니까.



안타깝지 않은 죽음이 세상에 어디 있겠느냐마는 31세의 나이에 갑작스레 먼길을 떠나고만 권혁주씨의 황망한 소식은 많은 음악가, 음악 관계자와 애호가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고 말았다. 부검 결과 급성심근경색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필자에게 묻는다. 이 거짓말 같은 상황이 정말이냐고. 필자야말로 사실이냐고 되묻고 싶은데 정작 누구에게 물어야 할지 가슴이 멘다.



언젠가 프로그램을 상의하면서 그가 이런 말을 했다. 본인이 작곡한 소나타가 있는데 아직은 연주하기 너무 이른 것 같다고. 자신이 흡족함을 느꼈을 때까지 그 소나타는 결코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을 테지만, 그래도 그가 만들었다던 그 음악이 무척이나 듣고 싶다. 뼛속까지 진실한 음악가였던 그가, 그의 음악 소리가, 벌써부터 그립다. ●



 



 



글 박선희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음악사업팀장 parksh1@kumhoasiana.com, 사진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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