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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삭힌 홍어… ‘대통령의 맛집’ 저리 가라

중앙선데이 2016.10.16 00:27 501호 28면 지면보기

백령도산 홍어회. 국내산과 외국산의 가장 큰 차이는 냉동과 생물이다. 외국산은 뼈가 훨씬 억세고 감칠 맛이 떨어진다. 백령도산과 흑산도산의 차이는 전문가도 잘 모른다.



우리나라 사람들을 둘로 갈라놓는 생선이 있다.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주 좋아하고 싫어하는 사람들은 끔찍이 싫어한다. 개인적인 선호를 넘어 서로를 비난하는 도구가 되기도 하고 지역 감정의 아이콘이 되기도 한다. 이런 대상이 되는 생선은 어디에도 또 없다. 독특한 냄새 때문에 이렇게 대접을 받는 생선은 바로 홍어다.


주영욱의 이야기가 있는 맛집 -87- 순라길

향은 학습을 통해 배우고 익숙해 진다. 절대적인 기준에서 좋고 나쁘고가 없다. 내가 익숙하고 인정하는 향이면 좋은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나쁠 뿐, 상대적인 것이다. 열대과일 두리안을 보자.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은 한 입도 못 먹을 정도로 그 향에 거부감을 느끼지만 동남아 사람들은 열광한다. 없어서 못 먹는다.



홍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홍어 냄새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고약한 생선이겠지만 이미 그 향과 맛에 익숙해진 사람에게는 생각만으로도 입에 침이 고이는 맛있는 음식이 된다. 이렇게 상대적이기 때문에 선호 여부를 놓고 폄하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음식은 음식일 뿐이고 홍어는 잘못이 없다.



전라남도에서는 잔칫집에서 홍어가 안 나오면 손님 대접을 못 받았다고 다들 생각한다. 그만큼 홍어가 널리 사랑을 받아왔다. 광주에 있던 우리 고향 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큰 일이라도 치를 때면 준비하는 음식 리스트에서 가장 우선 순위가 홍어였다. 어릴 적부터 이렇게 ‘학습’을 받은 덕분에 어디 가서 홍어 맛 좀 안다고 아는 체 할 수 있게 되었다.



홍어를 삭혀서 먹는 것은 감칠맛을 늘리기 위한 것이다. 냄새는 더 심해지지만 늘어난 감칠맛이 보상을 해준다. 맛있게 잘 삭힌다는 것은 너무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적당히 삭힌 것을 얘기한다. 과하게 삭히면 냄새가 심하다 못해 너무 고약해져서 감칠 맛까지 덮어버리기 때문에 맛을 느끼기 어렵다. 부족하면 감칠맛이 적기 때문에 그냥 가자미와 별 차이가 없다.

▶순라길 서울시 종로구 서순라길 141번지 전화 02-3672-5513 일요일은 쉰다. 규모가 작아서 미리 예약을 하는 것이 좋다. 점심때부터 시작한다. 홍어회 국내산 2인분 7만5000원. 홍어를 ‘못 배운’ 분들을 위해 낙지볶음도 있는데 이게 또 예술이다.



서울은 전국의 맛있다는 음식들이 모두 모여드는 곳이지만 이상하게도 홍어를 잘하는 곳은 찾기 어려웠다. 잘한다고 해서 찾아가 보면 그야말로 무늬만 홍어 전문점인 곳이 대부분이었다. 심지어 ‘대통령의 맛집’ 어쩌고 하는 유명한 곳에도 가봤는데 내 기준으로는 수준이 많이 떨어졌다. 흑산도 홍어(그 비싼!)를 시켰는데 제대로 삭히지 않아서 그저 질기기만 하고 별 맛을 느낄 수 없었다. 돈만 아까웠다. 그러다가 아는 미식가의 소개로 한 곳을 소개받았는데 그곳이 바로 홍어를 ‘제대로’ 하는 곳이었다. 종묘 담벼락 길 옆에 있는 ‘순라길’이다.



이 식당은 1996년에 개업을 했으니 올해로 20여 년이 된 홍어 전문점이다. 이서구(41) 대표가 어머니 김부심(72)씨를 이어 2대째 운영하고 있다. 어머니 김씨의 고향이 홍어로 유명한 흑산도 인근에 있는 암태도라는 섬이어서 자연스럽게 홍어 전문 식당을 하게 되었다.



‘순라길’의 홍어회는 적당히 잘 삭혀진 것이 일품이다. 냄새와 감칠맛의 균형이 잘 잡혀 있다. 어머니 때부터 오래도록 경험을 통해서 쌓아온 이 집만의 내공 덕분이다. 홍어는 외국산과 국내산 두 가지를 모두 쓰는데(물론 가격이 다르다) 국내산은 백령도에서 난 것을 쓴다. 흑산도산이 워낙 유명하기는 하지만 귀한데다가 가격도 너무 비싸서 쓰지 않는다고 한다. 사실 홍어는 한곳에 머물러 있기보다는 넓은 바다를 누비고 다니는 행태가 더 많아서 흑산도산이라고 딱히 더 낫다고 하기는 어렵다.



이 집 음식 맛의 가장 큰 원천은 잘 익힌 김치였다. 홍어회를 시키면 돼지고기와 묵은 김치를 함께 먹는 삼합 형태로 나오는데 김치가 어찌나 맛이 깊은지 삼합의 맛을 훌륭하게 완성시켜 주고 있었다. 홍어의 냄새는 감싸고 맛은 더 풍부하게 살려주는 조연의 역할을 완벽하게 해내고 있는 것이다. 강원도에서 질 좋은 배추를 구해서 김치를 담은 다음에 2년 이상 숙성시켜서 사용한다. 어머니 김씨는 이를 위해 강원도 원주에 작업장과 저온창고를 만들었다. 김치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된장도 담고, 밑반찬도 만들고, 텃밭에서 야채도 기르고 해서 손님상에 올리고 있었다. 대단한 정성, 대단한 노력을 하는 모자합작 식당이다.



이 곳 홍어회는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홍어를 아직 ‘배우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권할 만하다. 일단 냄새가 그렇게 거부감이 심하지 않다. 조금 참고 입에 넣고 씹으면 새로운 맛의 세계가 열릴 것이다. 용감한 자가 미인을 차지하는 것처럼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맛을 영접하려면 용기가 필요한 법이다. 한 걸음만 내디디면 된다. ●



 



 



주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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