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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작가전] Deja vu by system #10. 비명(悲鳴)

중앙일보 2016.10.16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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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성이 눈을 감고 두 손으로 자신의 양쪽 팔을 감쌌다. 오돌토돌 소름이 돋아 있었다. 다시 눈을 뜨고 주변을 보았다. 좀 전의 경비원이 전화기에 대고 상황을 설명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뭐야. 정말, 이럴 리가...’
 
그쪽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니 엎어져있는 사람은 키가 큰 젊은 남자였고, 나뭇가지에 걸려있는 하얀색의 천은 그 남자의 옷가지로 추정됐다. 그의 머리통에서 검붉은 액체와 누런 뇌수가 뚝뚝 떨어져 그의 바로 옆, 반쯤 부러진 화초 아래쪽에 흘렀다. 그의 다리 한쪽은 완전히 꺾어져 반대쪽으로 뒤집어져 있었고, 그 반대쪽 손가락도 제멋대로 으스러져 있었는데, 검지가 하필이면, 재성이 있는 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재성은 숨이 턱 막혀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갑자기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동시에 몸도 심하게 떨렸다. 그쪽으로 시선을 두기 힘들었지만, 당장 확인부터 해야만 했다. 그래야만 살 수 있을 거 같았다. 재성은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그쪽으로 다가갔다.
 
한 걸음 두 걸음, 그리고 바로 앞...
 
재성은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달달 떨리는 손을 뻗어 엎드린 자세로 쓰러져 있는 그 시신의 옷자락을 잡았다. 아직 가시지 않은 따스한 체온의 느낌이 바늘처럼 재성의 살 속으로 파고들었다.
 
‘아.. 아닐.. 거야.’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야? 그것도 추락사하여 온몸의 터지고 부러지고 꺾여 즉사를 한 이것을... 이 비릿한 냄새까지 맡아가며...
재성은 그렇게 죽은 자의 옷깃을 붙잡고 한동안 그대로 있었다.
 
밀려드는 공포와 구역질로 견딜 수가 없었지만, 그보다 더한 격한 감정이 재성의 마음에 커다란 생채기를 내며 파도쳤다. 재성은 손에 힘을 주었다. 시체가 살짝 뒤집어지면서 그것의 얼굴 일부가 보였다.
그와 동시에 두려움, 불안감, 역겨움, 미안함... 그리고 그와 대칭이 되는 희망과 시커먼 이기심까지. 그 양면의 칼날들이 재성의 머릿속에 괴이한 형태로 엉겨 붙어 춤을 췄다.
어쨌거나 당장 확인을 해야만 했다. 두려우면서도 흥분이 되었다. 흥분이 되면서도 슬펐다.
재성은 질끈 눈을 감고 시체를 완전히 뒤집었다. 멀리서 자신을 ‘유리’라고 불러달라던 그 여자의 메아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 역사는 예정이 된 그대로 흘러가야 하기 때문에, 특정 자리에 있는 누군가가 사라져야 다른 누군가가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할 수 있어요.
- 그의 자리가 앞으로 재성님의 자리로 바뀌게 될 겁니다.

 
재성이 감았던 눈을 뜨려는 순간, 뒤에서 귀청이 찢어질 정도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꺄아악!”
 
사람들이 모여든 모양이었다. 재성은 시체의 얼굴을 확인하기 전, 고개를 돌려 웅성거리는 사람들을 먼저 쳐다봤다. 이스트동의 경비원과 웨스트동의 경비원, 좀 전의 금발의 여자. 그리고 다른 구경꾼들... 그들 모두, 끔찍하게 죽어있는 시체를 보고 눈이나 입을 가리거나 비명을 지르거나 쑤군댔다. 그 군상들이 뭉크의 절규 그림을 수십 장 포개놓은 것처럼 어지러웠다.
먼발치에서 핸드폰으로 현장 사진을 찍는 아이들도 보였다. 경비원 중에 한 명이 그 아이들을 제지했다. 사고가 난 줄 모르고 주차장 출구에서 빵빵대는 차량들. 한마디로 아수라장(阿修羅場).
재성은 잡고 있던 시체의 옷자락을 놓았다. 끈적끈적 굳어가는 그의 선혈이 재성의 손가락을 부자연스럽게 했다. 재성은 숨을 크게 들이켜고 시체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순간 뒤통수에 수십 리터의 피가 몰리는 기분이었다.
 
역시 상현...
심하게 훼손이 되었지만, 재성은 그가 상현이란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는 두 눈을 부릅뜬 채로 재성을 노려보고 있었다. 재성은 아무 말없이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리를 지를 힘조차 없었다. 다만 복받쳐 오르는 무언가가 재성의 심장을 강철처럼 움켜잡고 있었다.
 
‘내가 조금 더 일찍 왔었다면, 살릴 수 있었을까? 그랬을까?’
 
상현의 얼굴 위로 눈물인지 땀인지 빗방울인지 허상(虛像)인지 뭔지 알 수 없는 물방울들이 똑똑 떨어졌다. 그 물방울 중에 몇 개가 피로 물들어있는 상현의 눈동자 위를 흘러 마치 상현이 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그 안에서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 재성님의 선택에 따라 그의 자리가 앞으로 재성님의 자리로 바뀌게 될 겁니다.
- 그가 누려온 것들. 그가 앞으로 누릴 수 있던 것들...
- 그 모든 것이요.

“으아아아!!!”

 
그제야 재성이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그 고함소리는 금세 사람들의 아우성 속에 파묻혔다.
경찰 사이렌 소리가 들릴 때까지, 재성의 몸은 석고처럼 굳어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동안 아무도 재성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경찰들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재성의 양쪽 팔을 붙잡았다. 재성은 그 경찰들과 함께 걸어가면서, 경찰에게 어떤 설명인가를 하고 있는 이스트동 경비원과 아주 잠시 동안 눈이 마주쳤다. 그 옆에는 다른 여러 명의 경비원이 있었다.
 
그렇게 걸어가던 재성은 어떤 아주머니의 격한 울음소리를 들었다. 재성은 경찰차에 오르기 직전, 그쪽을 쳐다보았다. 조금 전 핸드백을 떨어뜨렸던 검은색 옷의 그 아주머니였다. 그녀가 흙바닥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하다가 그 자리에 쓰러져 실신을 하는 것이었다.
 
어머니인가? 저 아주머니에게 상현에 대해 물어봤더라면, 그래서 그 아주머니가 상현에게 전화를 한 통이라도 넣었더라면... 지금 이 사건을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맞다, 청소년수련관 회원 연락망이 동생 소현이에게도 있을 텐데, 왜 엉뚱한 곳에서 그 친구의 번호를 알아내려 했을까? 왜 그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재성은 그런 뒤늦은 후회를 하면서도 그의 머릿속엔 다른 생각도 커져갔다.
 
‘그녀의 말이 맞았어. 그렇다면...’
 
 

* * *
 
 
 
같은 시각, 공원 안.
안내판에는 반려동물 매너에 대한 내용과 공원 내에서 음주 및 흡연을 금지한다는 문구 등이 적혀있었다.
그 안내판 바로 아래의 벤치엔 학근이 그의 친구인 홍현, 상운과 함께 앉아 맥주와 소주를 섞어 마시고 있었다. 그들이 앉아있는 벤치 바닥엔 마구 뱉은 가래침과 담배꽁초, 과자봉지 등이 너저분하게 널려있었다. ‘모범’이란 단어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생활을 하는 그들에게 안내판의 글귀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학근이 빈 맥주 캔 하나를 쓰레기통 앞에 집어던지며 친구 홍현을 쳐다봤다. 홍현이 들고 있는 맥주를 마시지 않고 계속 그 자세로 멍청하게 앉아있는 것이었다.
학근이 홍현에게 짜증을 냈다.
 
“뭐하냐?”
 
“아니...”
 
“우리 서클이 결성된 지 2주년 되는 날이다. 안 즐겁냐?”
 
“어, 마실게.”

 
홍현이 술 한 모금을 억지로 들이키자 학근이 담배를 꺼내 물며 물었다.
 
“얼빠진 사람처럼 표정이 왜 그래? 할머니한테 또 걸렸냐?”
 
오징어 다리를 하나 뜯어 입에 넣은 홍현은 뭔가를 생각하는 표정을 하더니,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실은 좀 전에 이상한 것을 봤거든... 에이, 졸라 찝찝해.”
 
말을 마친 홍현이 들고 있던 맥주를 단숨에 원샷을 했다. 학근이 커다란 콧구멍으로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되물었다.
 
“뭔데 그래?”
 
홍현이 손등으로 입을 닦으며 대답했다.
 
“너희 옆 반에 김재성이란 놈 알지?”
 
“몰라. 시밸... 다 어떻게 알아.”
 
“거 비실비실하게 생긴 놈 있잖아. 보준이랑 같이 다니는 놈 중에.”
 

학근이 눈동자를 굴리다가 손뼉을 쳤다.
 
“아, 그 조용한 놈?”
 
“갤 봤어.”
 
“언제?”
 
“좀 아까 술 사러 갈 때... 바로 요 앞에서...”
 

학근이 게걸스러운 표정으로 홍현의 눈을 쳐다봤다.
 
“아하, 그래? 삥 좀 뜯었냐?”
 
“아니.”

 
그러자 학근이 홍현의 뒤통수를 강하게 내려쳤다. ‘타악’ 하는 소리에 옆에 있던 상운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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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신아, 그걸 그냥 보냈어? 무식한 보준이 새끼 때문에 학교에선 건들지도 못하는데...”
 
홍현이 억울하단 표정으로 학근을 바라봤다.
 
“이야길 끝까지 들어보지도 않고 왜 그래? 그것도 머리를... 짱나게..”
 
상운이 거들었다.
 
“얘 성질 급한 거 몰라? 그냥 본론만 말해.”
 
홍현이 억울하단 표정으로 한숨을 쉬더니, 학근과 상운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놈이 편의점 가는 방향에 혼자 우두커니 서 있는 거야. 그래서 그쪽으로 잽싸게 다가갔지. 근데, 갑자기 무슨 불빛이 번쩍이더니, 그 새끼가... 홀연히 사라진 거야.”

 
그러자 상운이 기가 막힌 듯 웃었다.
 
“이 새끼, 망가진 가로등이라도 보셨나? 번쩍? 크크.. 뭔 헛것을 보고 지랄을 하세요?”
 
“헛것이 아니라고!”
 
“그럼 뭐냐?”
 
“첨엔 나도 착각인 줄 알았어. 근데...”
 
“그럼 그놈이 그 자리에 다시 나타나기라도 했냐?”
 
“으, 응! 그놈이 다시 나타난 거야.”

 
학근이 새 맥주 캔을 따다 말고 빈정댔다.
 
“아, 그러니까... 그놈이 너님 앞에서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셨쪄요? 우리 홍현 님이 소환술 익히셨쪄요?”
 
상운이 담뱃불을 붙이며 말했다.
 
“개웃기네, 무슨 귀신이냐?”
 
그러자 홍현이 신경질을 버럭 냈다.
 
“아, 쌍! 그러니까 들어보라고! 갑자기 멀쩡한 사람이 사라지니까 얼마나 황당하겠어? 나도 그냥 착각이겠지 싶었어. 하지만, 그 옆 컴컴한 곳에서 뭔가가 튀어나올 것도 같고 심장이 쫄깃쫄깃해서 미칠 거 같은 거야. 그래서 그 자리에서 담배를 얼른 하나 꺼내 물었지. 진정 좀 하려고...”
 
“근데?”

 
학근과 상운이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며, 홍현을 바라봤다. 홍현이 헛기침을 몇 번하더니 이야기를 계속했다.
 
“3분이 지났는지, 4분이 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두 번째 문 담배를 마지막으로 빨고 바닥에 막 버리려고 하는 중인데, 내 앞에 뭔가가 또 번쩍이는 거야. 그리고 사라졌던 그놈이 다시 나타났어. 순간 깜짝 놀라 숨도 못 쉬고 있는데... 그때, 그놈이 날 쳐다보는 거야.”
 
“그래서?”
 
“그 담은 몰라, 나도 모르게 도망을 쳤으니까... 시발, 그 새끼 눈 흰자위가... 졸라..”
 

이야기를 듣던 학근과 상운이 킥킥대며 웃었다. 학근이 솥뚜껑만한 손바닥을 치켜들더니 다시 때리려는 시늉을 했다. 홍현이 그걸 피하자 학근이 큰소리로 말했다.
 
“야 이 빙신아.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그러니까 이상하단 거 아냐?”

 
그때, SNS 알림 소리가 들렸다. 상운의 폰이었다. 상운이 실실 웃으며 담배꽁초와 가래침을 연이어 바닥에 퉤 뱉고는 핸드폰 화면을 터치했다. 그리고 잠시 후, 상운의 얼굴이 굳어버렸다.
 
“헉, 이게 뭐야?”
 
학근과 홍현의 시선이 일제히 그의 핸드폰 화면으로 쏠렸다. 홍현의 핸드폰 화면에 머리가 터져 피가 줄줄 흐르고 있는 사람과 그 사람의 옷깃을 손으로 붙잡고 있는 또 다른 누군가가 찍힌 사진 한 장이 올려있었다.
 
“가만있어봐, 이 새끼, 그 새끼 아니냐?”
 
“줘봐.”

 
홍현이 상운의 핸드폰을 빼앗아 두 손가락으로 사진을 확대했다. 그 사진 속의 인물은 조금 전에 홍현이 보았던 재성이 분명했다. 더욱 확대를 하니 사진 속의 재성의 눈은 홍현이 공원에서 마주치면서 봤던 그 삼백안(三白眼)과 같았다. 홍현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맞아, 이 눈동자... 내가 본...”
 
상운이 홍현을 쳐다봤다.
 
“근데, 이 새끼가 대체 여기서 뭐하는 거야?”
 
사진 밑에는 ‘드림아쎄즈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문구가 있었다.
그 문구를 본 학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드림아쎄즈? 그거 저기 사거리에 있는 졸라 비싼 주상복합 아냐?”
 
“그럴걸?”
 
“좀 전에 바로 요 앞에서 봤다며?”
 
“확실해!”
 
“드림아쎄인지 뭔지 그 아파트는 여기서 차를 타고 가야 하잖아?”

 
상운이 시계를 보며 말했다.
 
“그래도 시간이 꽤 흘렀으니...”
 
상운의 핸드폰 시계를 보는 동안, 상운의 SNS를 통해 또 다른 사진이 올라왔다. 클릭을 해보니 경찰과 함께 걸어가는 재성의 사진과 함께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었다.
 
[ 빅뉴스! 쓰러져 있는 건 다산고 박상현라고 함. 투신했음. 사망추정. ㅠㅠ 근데, 경찰 옆에 쟨 누구임? ㅋ ]
 
“뭐, 사망?”

 
핸드폰을 보고 있는 세 사람은 황당한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상운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박상현이라면...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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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동국대학교 교육학과 졸업
공포 미스터리 창작 전문 작가 그룹 언더 프리(Under Free) 부대표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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