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그 길 속 그 이야기] 백제를 찾아서…1400년 전으로 떠나는 역사 여행

중앙일보 2016.10.14 00:05 Week& 4면 지면보기
| 그 길 속 그 이야기 <78> 부여 사비길
 
  

10월의 추천길 테마는 ‘유네스코 세계유산과 함께하는 걷기 여행길’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거치는 전국의 트레일 중에서 충남 부여에 있는 사비길을 골랐다. ‘사비’는 부여의 옛 이름으로, 사비길은 백제의 마지막 수도 부여에 있는 백제 유적지를 엮은 길이다. 길 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유적지가 네 곳(능산리고분군, 부여나성, 정림사지, 관북리 유적과 부소산성)이나 있다. 부여시외버스터미널에서 시작해 시인 신동엽 생가~궁남지~능산리 고분군~정림사지~관북리유적~부소산성을 지나 부여시외버스 터미널로 돌아오는 13.4㎞ 사비길을 걸었다. 길은 내내 평탄했지만 유적을 꼼꼼히 살피느라 8시간 가까이 걸렸다.
 
기사 이미지

인공 연못 궁남지는 백제 왕가의 휴식처였다. 634년 처음 만들어진것으로 추정되는 궁남지를 부여군이 1960년대 후반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품다
지난해 7월 유네스코는 충남 공주시·부여군, 전북 익산시의 백제 관련 유적지 8곳을 ‘백제역사유적지구’로 묶어 세계유산에 등재했다. 유적지 8곳은 부여에 4곳(관북리 유적 및 부소산성, 정림사지, 능산리 고분군, 나성), 공주에 2곳(공산성과 송산리 고분군), 익산에 2곳(왕궁리 유적, 미륵사지)이 있다. 부여군은 부여의 거의 모든 백제 유적지를 지나도록 사비길을 설계했다.
 
기사 이미지
부여시외버스터미널에서 300m 떨어진 곳에 시인 신동엽 생가와 문학관이 있다.
기사 이미지
신동엽 시인 생가.

사비길은 부여시외버스터미널에서 시작했다. 이구헌(57) 부여군 문화관광해설사를 따라 한적한 주택가로 진입했다. 단독주택이 늘어선 골목 안에 첫 목적지가 있었다. 참여시인 신동엽(1930~69)의 생가다. ‘금강’ ‘껍데기는 가라’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등을 발표한 신동엽은 부여의 자랑이다. 시인이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소담한 한옥 뒤로 시인의 육필원고와 유품 등을 전시한 문학관이 있었다.

신동엽 생가에서 나온 길은 다시 도로변 인도로 이어졌다. 계백 장군 동상이 서 있는 회전교차로를 지나자 궁남지(宮南池)가 모습을 드러냈다. 634년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인공 연못 궁남지는 백제 왕가의 놀이터였다. 현재의 궁남지는 1960년대 후반 복원된 것이다. 부여군은 ‘궁의 남쪽에 연못을 파고 이십 여 리나 되는 곳에서 물을 끌어 왔으며 주위에 버드나무를 심고 못 가운데에는 섬을 만들었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을 바탕으로 궁남지를 복원했다. 본래 궁남지는 약 3만 평(10만㎡)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하는데, 복원된 것은 1만 평(3만㎡) 규모다.
 
기사 이미지
궁남지 주변 연지에서 본 빅토리아연.
기사 이미지
궁남지 연지에서 본 수련과 물양귀비꽃. 노랗고 작은 것이 물양귀비이다.

궁남지 주변에는 연지(蓮池)가 있다. 2000년대 초반 부여군이 궁남지 주변에 크고 작은 연못을 파 연꽃 1000만 송이를 심었다. 연지의 규모는 약 12만 평(40만㎡)이다. 7~8월에 꽃을 피운다는 대하연은 이파리가 시들어 낙엽처럼 푸석거렸다. 대신 빅토리아연은 아직 푸른색을 띠었다. 지름이 70~80㎝에 달하는 둥글넓적한 빅토리아연잎이 연못 수면에 미동도 없이 떠 있었다.

 
기사 이미지

의자왕 가묘.


궁남지에서 나와 황금 들녘을 관통하는 임도를 따라 40분쯤 걷자 부여읍 외곽의 능산리 고분군에 도착했다. 능산리 고분군에는 무덤 7기와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660)의 가묘가 있었다. 가묘 뒤에서는 무덤 발굴이 한창이었는데, 규모로 보아 왕릉일 가능성이 크단다. 2호분은 538년 웅진(공주의 옛 이름)에서 사비로 도읍을 옮기고 백제의 부흥을 꾀한 성왕(?~554)의 무덤일 것이라고 추정한다. 아치 형태인 2호분의 천장이 성왕의 아버지 무령왕(462~523)의 무덤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능산리 고분군 입장료 어른 1000원, 어린이 400원.

 
기사 이미지
능산리 절터 뒤로 멀리 보이는 산 능선에서는 옛 나성이 한창 복원 중이다.
기사 이미지
의자왕 가묘 뒤에서 또다른 무덤이 발견됐다.


  사비길은 능산리 고분군 서쪽 언덕에서 오석산(166m) 능선을 지나 금성산(124m)으로 이어졌다. 하나 고분군 서쪽 언덕에서 나성 복원공사가 한창이어서 길을 우회해야 했다. 나성은 수도를 보호하기 위해 사비 동쪽 외곽에 약 8㎞ 길이로 쌓은 성으로, 다음달이면 복원작업이 마무리될 예정이라고 했다.

우회로에 이정표는 없어서 스마트폰 지도 애플리케이션을 켰다. 고분군에서 약 1㎞ 떨어진 금성산 등산로 입구까지 우회로는 다음과 같다. 고분군 입구로 다시 나와 서쪽의 가탑2리 마을로 간다. 가탑2리 마을 초입의 동문삼거리에서 직진해 5분쯤 가면 ‘녹원빌라 앞’ 버스정류장이 나온다. 버스정류장 앞 횡단보도를 건너면 ‘금성산’이라고 적힌 사비길 이정표가 보이고 등산로가 이어진다.

 
백제의 마지막 도읍지 사비
기사 이미지

금성산 성화대에서 내려다본 부여 읍내.


금성산 입구에서 정상까지 가는 데는 2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하산 길 성화대(聖火臺)에서 바라본 풍광이 멋졌다. 2000년 부여군은 부여 읍내가 가장 잘 보이는 금성산 기슭에 성화대를 설치했다. 매년 가을 백제문화제 개막 전날이면 성화대에 불을 지피고 제사를 지내 축제의 시작을 알린다. 성화대에 서자 부여읍 서쪽을 휘감아 흐르는 금강부터 정림사지와 부소산이 훤히 내려다보였다.
  
기사 이미지
국립부여박물관에 전시된 연꽃무늬 기와.
기사 이미지
백제 유물 중 최고로 꼽히는 금동대향로. 국립부여박물관에 있다.

금성산에서 내려온 길은 곧장 국립부여박물관으로 이어졌다. 국립부여박물관에는 백제 공예기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백제금동대향로, 봉황의 깃털을 형상화한 기와장식 ‘치미’와 연꽃무늬를 새긴 기와 등 유물 1만여 점이 전시되어 있었다. 무료 입장.

“백제의 아름다움을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고 표현합니다. 이 말이 딱 들어맞는 것이 정림사지 5층석탑이죠.”
 
기사 이미지

국보 제9호 정림사지 5층석탑.


이 해설사가 국립부여박물관에서 500m 떨어진 정림사지로 안내했다. 정림사는 백제의 왕실 사찰로 추정되는 유적이다. 사비로 천도한 성왕은 당대 최고 기술자를 불러 정림사를 짓고 탑을 세웠다. 백제 부흥의 염원이 담긴 사찰은 660년 백제가 멸망할 때 불타 없어지고 5층석탑(국보 제9호)만 남았다.

정림사지 5층석탑은 안정적인 비율과 절제미가 돋보였다. 천천히 탑돌이를 하면서 구석구석 살펴봤다. 밋밋한 돌로 이루어진 탑에 장식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각 층의 지붕 모서리가 하늘을 향해 살짝 들린 모양이었는데, 곡선이 과하지 않고 우아했다. 백제 사비시대의 장대한 시작과 비극적인 끝을 전부 지켜봤을 석탑은 의연한 모습이었다. 입장료 어른 1500원, 어린이 700원.
 
기사 이미지

관북리유적. 백제 사비시대의 궁궐이 있던 곳이다.


정림사지를 빠져나온 길은 부여읍 북쪽 부소산으로 이어졌다. 부소산(96m)은 사비의 중심지로 남쪽 기슭에 왕궁이, 능선에 부소산성이 있었던 자리다. 왕궁터가 발견됐다는 관북리 유적을 먼저 들렀다. 관북리 유적은 너른 잔디밭처럼 보였다. 허허 벌판에 건물 터와 우물 터, 도로의 흔적만 쓸쓸하게 남아 있었다. 무료 입장.
 
기사 이미지

부소산 삼충사는 백제 말 충신의 영정을 모신 곳이다. 왼쪽부터 성충, 흥수, 계백의 영정이다.


부소산에서 그나마 옛 산성의 흔적을 볼 수 있었다. 백제 말 충신 성충(?∼656), 흥수(?~?), 계백(?∼660)의 영정을 모시는 사당인 삼충사를 지나 샛길로 들자 길옆으로 높게 쌓은 흙더미가 보였다. 산성의 흔적이었다. 부소산성은 진흙과 마른 흙을 층층이 쌓아 만든 토성으로, 돌을 쌓아올린 조선시대의 남한산성이나 수원 화성과는 확연히 달랐다. 토성의 흔적은 부소산 초입 삼충사에서부터 부소산 가운데에 있는 누각 반월루까지 약 300m 이어졌다.
 
기사 이미지

부소산 자락에서는 옛 토성의 흔적을 따라 걸었다.


부소산 북쪽에 부여의 대표 명소 낙화암(落花巖)이 있었다. 사비길이 낙화암을 거치지 않아 길에서 살짝 벗어났다. 반월루에서 하산하지 않고 북쪽 기슭의 산책길을 따라 1㎞쯤 걸어갔다. 백제가 멸망하는 순간 수많은 궁녀와 부녀자가 이 절벽 위에서 금강으로 몸을 던졌다고 했다. 적에게 능욕당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한 것이다. 지는 해를 받아 온통 금빛이 된 금강은 1400년 전 그날의 일을 모두 잊은 듯 고요히 흘렀다. 부소산 입장료 어른 2000원, 어린이 1000원.
 
기사 이미지
고란사.
기사 이미지
금강에서 유람선을 타면 낙화암을 더 잘 볼 수 있다. 오른쪽에 절벽 같은 수직 바위과 낙화암이다.
기사 이미지
낙화암 위에서 바라본 풍경.
기사 이미지
부소산의 아늑한 숲길.

부소산에서 나온 길은 금강변의 구드래 조각공원에 닿았다. 조각공원에서 다시 1㎞를 더 걸어 사비길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인 부여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부흥의 꿈과 망국의 한을 고스란히 품은 고대 도시로 떠났던 시간 여행이 비로소 끝이 났다.

 
● 길 정보
기사 이미지

장원막국수에서 파는 편육.

기사 이미지

장원막국수의 메밀 막국수.


서울에서 부여까지는 자동차로 2시간 20분쯤 걸린다. 부여 사비길은 시작점과 종착점이 모두 부여시외버스터미널이기 때문에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에 편리하다. 서울남부버스터미널에서 오전 6시 30분부터 오후 9시까지 부여행 버스가 1시간에 평균 3회 출발한다. 숙박시설은 부여군시설관리공단이 운영하는 백제관을 추천한다. 궁남지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에 있는 한옥 숙박체험 시설이다. 041-832-2722. 1박 5만원부터. 구드래 조각공원 근처의 장원막국수는 부여 사람이 즐겨 찾는 맛집이다. 돼지고기 편육 1만7000원, 메밀 막국수 6000원. 041-835-6561. 부여군 문화관광과 041-830-2220.

글=홍지연 기자 jhong@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먼지알지 런칭 이벤트
공유하기
광고 닫기

미세먼지 심한 날엔? 먼지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