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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빽스트리트저널] ⑭ 제발 어질러 놓고 살아라

중앙일보 2016.10.10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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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콘서트』라는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적이 있었죠. 책이 잘 팔리니까 『경제학 콘서트2』『경제학 카운슬링』등의 후속작이 계속 번역돼 국내에 소개됐는데요.
 
 이 책의 원제는 The Undercover Economist이고, 저자 팀 하포드는 같은 이름의 칼럼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매거진에 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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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이 사람이 새 책을 내서 주요 내용을 들여다 봤는데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리정돈은 할 필요가 없다. 어질러 놓고 살아라’는 것입니다.
 
 정말 어이없지 않습니까^^ 어렸을 때 부모님이 ‘책상 정리해라, 방 정리해라. 그래야 공부 잘 한다’ 하지 않았나요. 양말 벗어서 교과서 위에 던져놓은 아이에게 ‘그래, 너 참 잘했다’ 할 수는 없을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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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리 얘기를 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런데 300페이지가 넘는 책 속에 ‘누가 이런 연구를 했을까’ 싶을 정도로 세상의 온갖 정리정돈 관련 연구 결과를 다 집대성해 놨습니다. 참 괴짜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는데요. 
 
 하포드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엉망진창(mess)’이라는 것은 실제로 주변 정리를 안해서 너저분한 상태 뿐 아니라 ▶과거와의 단절 ▶정형화된 길이 아닌 다른 길로 가는 것 ▶예상치 못했던 조합 ▶맥락의 변경 등을 가리킵니다.
 
 부엌의 식재료나 식기류를 정리하는 건 쉽습니다. 하지만 e메일이나 전자문서 같은 것을 정리하는 건 또다른 문제입니다. 이런 것들을 정리하려고 새로운 시스템을 생각하고 개발하는 것이 더 힘듭니다.
 
 하포드는 “정리정돈을 잘하는 사람들은 ‘선제적 정리(premature filing)’의 딜레마에 빠진다”고 말합니다. 머리를 쥐어짜서 e메일을 카테고리별로 정리하는 것보다 그냥 필요할 때 검색해서 찾는 게 낫다는 겁니다.
 
 하포드가 제시한 한 연구결과는 런던 지하철 파업에 대한 내용입니다. 파업이 시작되자 승객들은 평소 출근길과는 다른 길을 찾아야 했습니다. 파업을 하지 않은 노선이나 다른 대중교통 수단은 밀려든 추가 승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죠.
 
 그런데 정작 파업이 끝나고 나서도 승객 20명 가운데 1명은 파업 때문에 찾아낸 불편한 새 길로 계속 출근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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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 어질러 놓은 어린이의 방 [뉴욕타임스]


 하포드는 정리정돈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는 점을 충분히 인정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우연과 혼란이 더 이득이 되는 경우에도 애써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정리’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왜 사람들은 항상 정리정돈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하포드는 두 가지 추론을 제시합니다.
 
 하나는 어질러 놓으면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좋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정리정돈과 효율의 상관관계를 잘못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하포드는 “책상 위가 지저분할 때는 보통 그 책상 주인이 가장 바쁘거나 일을 가장 많이 할 때”라며 “일을 많이 한 게 원인이고 책상이 지저분한 게 결과인데 우리는 보통 책상이 지저분해서 일이 잘 안된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합니다.
 
 하포드는 강조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정리해야 하는 것보다 항상 더 체계적으로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업무나 조직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을 때 실망하거나 자책감을 느낍니다.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엉망진창인 상태야말로 우리가 가장 효율적으로 일하고 있을 때인지도 모릅니다.
 
 박성우 기자 bla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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