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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북한 수재민 구호, 인권 문제로 바라보자

중앙일보 2016.10.10 20:57 종합 35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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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경
사단법인 새삶 대표, 탈북자 출신 약사

지난 추석 연휴 때 나는 같은 탈북자 회원들과 함께 북녘땅이 바라보이는 임진강에서 1박2일을 보냈다. 매년 그랬듯이 서로가 모여 앉아 덕담과 음식을 나눴지만 올해는 왠지 예년보다 공기가 더 무거웠다. 대부분 두만강가 출신인 회원들에게 전해진 물난리 소식 때문이다. 예로부터 불이 지나간 자리엔 먹을 게 있어도 물이 지나간 자리엔 하나도 없다고 했다.

북한 주민은 체제의 희생양
통일은 그들 마음을 얻는 일
북 주민에게 유엔 역할 알린 건
95년 대홍수 때의 항생제 지원
약품·식량 등 인도적 지원은
남한에 대한 신뢰 높이는 길


 두만강 인근이 수해를 입은 건 처음이 아니다. 1994년 김일성의 죽음과 동시에 찾아온 식량배급 단절은 95년 8월 대홍수로 더욱 참혹한 상황을 불렀다. 두 달 뒤인 10월 콜레라가 강타했다. 나는 당시 두만강 인근의 한 병원 약제사로 일하고 있었다. 콜레라 환자가 밀려들어 복도에도 가설침대를 만들어야 했다. 이윽고 출입문 앞까지 병상이 가득 찼다. “일제 때나 있던 콜레라가 웬 말이냐, 나라가 망하려나 보다”라는 환자의 비명 섞인 푸념을 들어야 했다. 이들은 심한 복통과 거듭되는 설사로 체내의 수분 균형이 망가지면서 하나둘 숨을 거뒀다. 수액 담당 약제사였던 내가 이들을 죽이는 듯했다. 내내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의 죄책감을 느꼈다. 그런데도 북한 당국은 외부 세계를 의식해 콜레라를 ‘급성 설사증’으로 바꿔 부르라는 공문을 내려보냈다.

 소강상태인가 하던 96년 봄 강한 열성 전염병인 티푸스가 또다시 찾아왔다. 이 역시 콜레라 쓰나미에 못지 않았다. 가는 곳마다 장티푸스, 파라티푸스, 심지어 발진티푸스가 만연했다. 영양상태가 부실했던 환자들은 고열과 탈진으로 줄지어 숨을 거뒀다. 바로 이때 외부에서 구원의 빛이 찾아왔다. 유엔이 지원한 광범위 항생제였다. 지금 한국에선 항생제에 대한 과민반응이 만만치 않다. 엄마들이 아기 약 처방전을 약국에 들고 와 항생제가 있는지, 빼고 먹여도 되는지를 따져 묻는다. 하지만 북한에선 소량의 항생제도 구하기 어렵다.

   처음 알약으로 공급되던 항생제들은 곧 수액요법으로 환자들에게 투여됐다. 환자 1인당 이 수액 1~2L면 열흘 넘게 고열로 시달리던 환자들도 정상 체온으로 돌아왔다. 0.25% 레보수액 제제 담당인 나는 집에 퇴근 못하고 현장에서 수액을 만들었다. 입원실에서 수액 한두 병을 맞고 퇴원하는 환자들은 종종 내가 있는 주사제제실에 들러 고맙다고 인사했다. 그때마다 나는 “나보다 유엔 약이 당신을 살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 환자들은 “유엔이 대체 뭐하는 데고, 어디에 있는지는 몰라도 내 목숨을 살려준 고마운 기관”이라고 감사해 했다. 이 시기의 유엔 의약품 지원은 사막을 헤매는 환자들에겐 실로 오아시스였다. 또한 유엔을 알리고 고마움을 느끼게 하는 엄청난 효과를 발휘하는 매개체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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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월 두만강 수해는 인근 지역에 막대한 피해를 끼쳤다. 유엔에선 사망 138명, 실종 400명, 가옥 완파 1만7000채, 가옥 손상 1만2000채, 이재민 14만 명이라고 집계했다. 이뿐이 아닐 것이다. 곡식이 무르익는 추수 직전에 물난리가 났으니 논벼와 옥수수 농사를 망쳤다. 수해로 파생될 예측 불허의 수인성 전염병도 속출할 것이다. 또다시 엄혹했던 90년대가 재현될 가능성이 크다. 그 시기의 보균자들이 병균의 숙주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김정은은 수해를 아랑곳하지 않는다. 수해 지역과 멀리 떨어진 핵실험 현장에서 또다시 핵실험을 강행해 세계가 격노하고 있다. 인민보다 정권이 우선인 독재의 속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핵실험을 이유로 수재 지원까지 거부하는 한국 정부의 태도도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김정은 치하의 인민들은 3만 명에 이르는 탈북민들의 부모형제이자 사랑하는 처자인 동시에 언젠가 품어야 할 한민족의 구성원들이다. 수해가 할퀸 산과 들은 김정은의 것이 아니다. 김정은과 북한 인민들을 한 묶음으로 취급해선 안 된다. 어려울 때 북한 인민을 돕는 인도적 지원은 북한 주민의 남한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만큼 북한 정권에 대한 신뢰를 낮춘다.

 몇 달 전 11년 만에 북한인권법이 통과됐다. 관련 부처들이 북한인권센터 등 후속 조치를 진행하느라 바쁘다. 그런데 북한인권법의 취지는 어디에 있는가. 북한 주민의 생존과 건강을 위협하는 수재민 구호를 수수방관한다면 북한 사람들에게 인권법이 어떻게 받아들여지겠는가. 자칫 양두구육(羊頭狗肉)이라는 비판을 받지는 않을까.

 북한 주민은 핵 도발의 주체가 아니라 체제의 희생양이다. 한국이 통일을 추구한다면 북한 주민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어려울 때 돕는 게 그 첩경이다. 90년대 북한 장마당에는 ‘미국에서 보내온 선물’이라고 한글로 쓰인 쌀포대가 흔히 나돌았다. 그걸 보고 평생을 기만당했음을 깨달은 주민이 많다. 나를 살려준 약품과 식량이, 정권이 주적이라고 선전하는 한국에서 보내준 거라는 걸 깨닫는 북한 사람이 많아질 때 통일도 더 빨라질 것이다.

이혜경
사단법인 새삶 대표, 탈북자 출신 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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