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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돈보다 자존심…삼성 vs 애플 5년 특허전쟁

중앙일보 2016.10.10 00:01 경제 3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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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치락 뒷치락, 이 전쟁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5년간 지속되고 있는 삼성전자와 애플의 특허 전쟁 말이다. 7일 미국 워싱턴DC 연방순회항소법원 전원합의체의 재심리 판결서 삼성전자는 모처럼 잡은 승기를 뺐겼다. 법원은 “2심 재판부가 검토한 증거들이 타당치 않다”며 2심 판결을 뒤집고 애플의 손을 들었다. 2심은 올 2월 “밀어서 잠금해제, 단어 자동완성 기능 등 애플의 특허 3건을 삼성전자가 침해하지 않았다”고 판결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삼성이 애플의 특허 3건을 침해했으니 1억1960만 달러(1322억원)를 배상하라”던 2014년 5월 1심 판결의 효력이 살아났다.

'밀어서 해제' 이번엔 애플 승리
'둥근 모서리' 소송은 대법원 상고
혁신 기업 누구냐, 양보없는 전쟁

양 사의 특허 전쟁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1차전은 2011년 4월 시작된 디자인 관련 특허 소송, 일명 ‘둥근 모서리’ 소송이다. 2차전이 이번에 재심리 결과가 발표된 사용자 기능(UI) 관련 특허 소송, 일명 ‘밀어서 잠금해제’ 소송이다. 2012년 2월 시작됐다.

두 소송 모두 싸움을 먼저 건 쪽은 애플이다. “삼성은 카피캣(모방꾼)이다. 애플이 원조인 스마트폰 기능과 디자인을 고스란히 베끼고 있다”고 주장했다. 삼성은 맞섰다. “둥근 모서리 디자인이나 밀어서 잠금 해제 같은 기능까지 특허라고 규정하면 후발 주자들은 어떻게 제품을 내겠느냐”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미국서 벌어진 1, 2차 소송 모두 1심서 패했다. “삼성이 애플의 특허를 침해한 게 맞다”고 배심원단은 평결했다. 디자인 소송과 관련해선 9억3000만 달러(1조3333억원)를, 사용자 기능 소송과 관련해선 1억1900만 달러(1322억원)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배심원단이 결론을 내리는 미국의 1심 판결에선 외국 법인이 불리하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특히 두 소송 모두 애플의 ‘고향’인 실리콘 밸리에 위치한 캘리포니아연방법원에서 벌어졌다. 김운호 법무법인광장 변호사는 “배심원들의 감정적 판단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1심에선 자국보호주의가 어느 정도 작용한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며 “그만큼 외국 회사가 미국 법정서 다투기 어렵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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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소법원의 판사 3인이 사건을 다시 들여다보는 2심에서 삼성전자가 상대적으로 유리한 판결을 받은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게 법조계의 풀이다. 1차 디자인 소송을 맡은 2심 재판부는 삼성전자의 배상액을 절반 가까이로(5억4800만 달러, 6088억원) 깎아줬다. 2차 소송의 2심 재판부는 “삼성전자가 애플의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다”며 1심 판결을 뒤집기까지 했다.

양사의 소송은 미국 법원서도 이례적으로 긴 싸움이 되고 있다. 미국선 대법원 상고는 1년에 100건 받아들여질까 말까다. 미국 대법원이 디자인 특허 소송을 심리하는 자체가 122년 만의 일이다. 송재섭 법무법인세종 변호사는 “삼성전자의 대법원 상고와 애플의 2심 재심리 신청이 받아들여진 것, 재심리 결과 2심 결정이 뒤집힌 것 모두 굉장히 이례적인 사건들”이라며 “스마트폰의 시장 규모가 그만큼 크고 많은 이들의 관심이 쏠려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두 소송의 결과는 특허 시장 전체에 큰 파장을 미칠 거란 전망이다. 이 때문에 법학계에서도 큰 논쟁 거리가 되고 있다. 특허의 개념을 얼마나 넓게 잡아야 할지, 선두 주자의 특허권과 후발주자의 개발권 중 무엇을 더 중시해야 할지에 대한 철학적 논쟁이 벌어지고 있단 얘기다. 정상조 서울대 법대 교수는 “특허 청구 범위를 너무 넓게 해석하면 기업의 제품 개발이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며 “삼성전자가 디자인 특허에서 패소한 뒤 미국 20여명의 교수가 이 결론에 반대하는 의견서를 제출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소송은 더 이상 배상액이 문제가 아닌 양사의 자존심 싸움이 돼 가는 모양새다. 한때 후발주자로 불렸으나 지금은 스마트폰 시장 1위인 삼성전자로서는 ‘애플의 카피캣’이라는 오명을 벗는 게 급선무다. 정창원 노무라증권 전무는 “삼성전자가 스마트폰으로 버는 매출과 이익을 따지면 배상액이 타격이라 볼 수 없다. 시장에 미치는 충격도 전혀 없을 것”이라며 “스마트폰 시장에서 기술 혁신을 이뤄낸 회사가 누구인지를 가리는 자존심 싸움이라 보면 된다”고 분석했다.

삼성전자 미국법인은 9일 항소법원의 판결에 유감을 표하며 “대법원 상고를 검토하겠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한편 디자인 특허 침해와 관련한 삼성전자의 최종 배상액을 결정하는 대법원 상고심 판결은 11일에 난다.

임미진 기자 mi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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