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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갑질을 탓하기 전에

중앙일보 2016.10.09 20:07 종합 31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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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리
부장·라이프스타일 데스크

지난 주말 저녁 커피 맛있고 분위기 좋다고 소문난 서울 청담동의 한 카페에 갔다. 영업시간을 30분쯤 남겨둔 오후 7시30분이었다. 계산대 앞에 놓여 있는 메뉴를 보고 ‘핸드 드립’ 디카페인 커피를 주문하려 했지만 이미 주문 시간을 넘겼다는 답이 돌아왔다. 메뉴상에는 물론 매장 어디에도 ‘핸드 드립 커피 주문은 더 일찍 마감한다’는 안내는 없었다. 그저 핸드 드립 방식으론 커피 뽑는 시간이 좀 더 걸리니 그런가 보다, 하고 나 혼자 짐작할 뿐이었다. 할 수 없이 다른 커피를 시켜서 마시고 있는데 갑자기 “우웅~” 하는 진공청소기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카페 문 닫는 시간은 아직 15분쯤 더 남아 있었지만 카페 종업원들이 분주하게 매장 정리를 시작한 것이다. 누구는 계산대 옆 매대에 가서 판매용 커피 병을 하나둘 치웠고, 누구는 커피머신 커버를 씌웠고, 또 다른 누구는 시끄럽게 진공청소기를 돌렸다. 영업 마감시간인 오후 8시가 되기도 전에 손님이 카페에 있든 말든 조금이라도 일찍 퇴근하려고 부지런을 떠는 게 분명했다. 누가 나가라고 쫓아낸 건 아니지만 불편한 마음에 뜨거운 커피를 급하게 털어넣고 얼른 나올 수밖에 없었다.

청담동의 잘나가는 카페라는 공간적 차이를 제외한다면 사실 이런 경험은 별로 드문 일도 아니다. 회사 앞의 오래된 밥집에선 아무리 정해진 주방 마감시간이 있어도 그날 홀 서빙하는 종업원 기분에 따라 10~20분 정도는 일찍 주방을 닫아버리기 일쑤고, 영업시간이 분명 오후 9시30분까지라고 적혀 있는데도 9시15분이면 벌써 출퇴근 복장으로 갈아입고는 아직 집에 안 가고 남아 있는 테이블 손님을 노골적으로 쳐다보며 ‘빨리 좀 가자’고 채근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허름한 밥집뿐 아니라 때론 서울의 특급호텔 레스토랑에서조차 비슷한 일을 겪기도 한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하루 종일 얼마나 시달렸으면 저럴까 한편으론 이해가 가면서도 손님 입장에선 솔직히 언짢을 수밖에 없다. 10분 더 먹고 덜 먹고의 문제가 아니라 손님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를 침해당한 것이기 때문이다. 음식 주문 시간이나 영업 마감시간은 식당이 손님과 한 약속이다. 그런데도 적지 않은 한국의 식당들이 정작 지켜야 할 이런 서비스 원칙은 무시하는 대신 고객에게 억지 웃음과 불필요한 친절을 제공하느라 과도한 감정노동에 시달린다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진상 부리는 갑질 고객도 문제지만 손님 권리에 무신경한 ‘을질’도 지금쯤은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안혜리 부장·라이프스타일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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