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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500호 기획] 침착해야 바로 보인다

중앙일보 2016.10.09 09:59
아침 일찍부터 지인에게서 문자가 한통 왔다. 곧 큰 지진이 올 테니 준비하라는 문자였다. 정보의 홍수시대인지라 무엇이 진짜 정보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요즘, 그럼에도 쉬이 무시해버리지 못하는 것은 그간의 지진이 충격이었기 때문이리라.

경주에서 지진이 있던 날, 나는 추석 연휴 프로그램을 위해 방송국 스튜디오에서 녹음 중이었다. 갑자기 스튜디오가 있던 17층이 달달거리며 흔들렸다. 복도에서는 겁에 질린 누군가가 소리를 지르고, 사람들이 좁은 복도를 후다닥 뛰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짧은 순간인데도 나는 ‘지진일까? 전쟁일까?’ 생각했다. 얼른 인터넷을 확인했다. 지진이라는 소식을 접한 후에야 ‘관세음보살’을 부르며 마음을 진정시키고, 대구에 계신 은사 스님께 괜찮은지 전화를 드렸다.

나는 걸핏하면 지진 소식이 있는 일본에서 7년을 살았다. 물론 처음 지진을 겪었을 땐, 강도가 세지 않았는데도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낡은 목조건물에서 책상 밑으로 기어들어가며 ‘애고고, 하필이면 일본 땅에서 생을 마감하는구나’ 싶었다. 그때 문득 생뚱맞게 윤동주 생각이 났던 기억이 난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얼마 후, 나는 꽃을 사들고 윤동주가 다니던 대학에 찾아가 한참을 서성거리다 돌아왔다.

일본에 사는 동안, 크고 작은 지진들을 보거나 겪으며 우리나라가 얼마나 살기 좋은 나라인지를 생각했다. 또 태풍이 올라와 일본 열도를 쓸고 갈 때마다 한국 땅이 역시 좋구나 싶었다. 어쩌면 일본인들은 그렇게 험한 나라에서 살기 때문에, 그토록 남의 땅을 탐냈던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일본의 자연재해는 공포였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일본인들은 나쁜 환경에서 살아남는 법을 일찍부터 터득한 것 같다. 미리미리 대비하고 신속하게 처신하는 이들이었다. 정부는 체계적으로 행동했고 국민은 차분했다. 그들도 처음부터 그러지는 않았겠지만, 지금 그들의 비상대비 능력은 훌륭하다. 일본을 칭찬하는 일은 늘 뭔가 뒷맛이 씁쓸하지만, 그래도 이런 점은 솔직히 부러울 정도다.

한국에서는 최근 지진이 여러 차례 났는데도, 나는 여태 한 번도 비상알림 문자를 받지 못했다. 누구는 몇 분 후에 받았다 하고, 누구는 훨씬 더 뒤에 받았다고 하는데, 내겐 아예 오지도 않았다. 문자 하나 못 받았다고 뭐 큰일 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문자 한통에 국가에 대한 믿음이 오락가락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만큼 국가의 긴급대응 체계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땅이 갈라지고 건물이 무너지는데도 끄떡없는 사람은 없다. 가부좌 틀고 앉아있는 출가자들도 별 수 없다. 놀란 가슴은 머리 깎은 나도 당신과 똑같다. 그러나 이젠 우리 모두 좀 더 차분해질 필요가 있다.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무엇보다 침착해야 한다. 어떻게 대처할지 침착해야 바로 보인다. 그리고 앞으론 제발 국가도 국민도 그때그때 땜질하듯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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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영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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