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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500호 기획] 인생 삼모작을 실험하며

중앙일보 2016.10.09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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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봄 텃밭에 가지 묘목을 심고있는 안병영 전 교육부총리. [중앙포토]

정년퇴직한 후 이곳 속초·고성으로 내려와 산 지 꼭 10년이 됐다. 정확하게는 속초에서 1년 반, 그리고 나머지 기간은 이곳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시골에서 작은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내가 서울을 떠날 때, 지인들은 “자네 아마 2년을 견디지 못하고 돌아 올 걸세”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들도 이젠 내가 ‘그곳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나 스스로도 이미 오래전부터 이곳 생활에 나름대로 연착륙했다고 느끼고 있다.

나는 농촌 생활을 시작하면서 가까운 지인들에게 ‘인생 삼모작’에 관해 자주 말해왔다. 같은 땅에 1년에 종류가 다른 농작물을 세 번 심어 거둔다면 삼모작이라고 하는데, 이에 유추해서 우리도 생애주기에서 세 번 다른 일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게 내 생각이다.

간략하게 정리하면, 첫 번째 일터에서 한 30년+ 열심히 일하고, 50대 중반에 이르면 못자리를 옮겨 자신이 평소에 정말 하고 싶었던 일 혹은 보람된다고 생각했던 일을 65세+까지 한다. 이 때 첫 번째 일자리는 대체로 생계와 연관하여 높은 생산성을 추구하는 경성(硬性)의 일이고, 두 번째 못자리는 보다 적성과 보람을 추구하는 연성(軟性)의 일이라고 상정한다. 다음 세 번째는 못자리를 아예 시골로 옮겨 조용히 텃밭을 일구며 ‘자연회귀”자아찾기’로 여생을 보내자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관점은 하나의 ‘원형’ 모형이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이와 연관하여 수 많은 ‘재구성’ 혹은 ‘변형’이 가능하다.

인간의 생애주기를 크게 교육-고용-퇴직 이후로 크게 나눌 때, 우리의 경우 아쉽게도 교육기간이 지나치게 길고, 과(過)투자되는 반면, 고용기간은 너무 짧고 인적자원이 덜 효율적으로 활용된다. 그리고 퇴직 후 긴 여생에 대한 준비가 대단히 불충분하다. 전보다 형편이 많이 나아졌다고 하나 우리 국민들 중 많은 이가 아직도 힘겹고 불안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 그렇다고 앞날이 그리 밝은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인구고령화의 도전은 가위 폭발적이다. 앞으로 10년 후면, 65세 이상 인구가 총인구의 20%를 넘어가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 저출산·고령화가 진전될수록 노동공급의 절대수준이 감소하고 특히 생산가능인구(15~64세), 핵심생산가능인구(25~49세)의 수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와 같은 인적자원의 비효율이 계속되는 경우 지속적인 경제성장이나 삶의 질의 향상은 기대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이처럼 눈앞에 가까이 다가온 미래의 충격에서 벗어나자면, 우리의 생애주기 내지 인생설계를 재구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가난한 노후를 맞지 않으려면, 앞으로 적어도 70세 가까이까지 일해야 하고, 또 그 하는 일이 가능하면 보다 의미 있는 삶과 연결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내 구상의 핵심이다. 이를 위해 우선 노동시장에의 진입 시기, 즉 입직(入職)시기를 가능한한 몇 년 앞당기고, 아울러 노동시장에서의 최종 이탈시기를 지금보다 십수년 늦춰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의 내용을 ‘생계 위주’로부터 점차 ‘가치 지향’으로 옮기는 것이 우리의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어떤 경우에도 일정 수준의 생산성은 유지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개개인의 의지대로 되는 게 아니다. 따라서 인생 삼모작이 사회 전체의 맥락에서 제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생애주기에 따라 다양한 국가 정책들, 즉 교육·고용노동·사회복지 정책들의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고, 사회구조 및 의식의 변화도 이와 궤를 같이 해야 할 것이다.

현재 이른바 ‘베이비붐 세대(1955~63년생)’의 은퇴가 한창이다. 이들이 직장을 떠나는 연령대는 인간의 생애주기에서 가장 돈이 많이 드는 시기다. 더욱이 이들 세대는 퇴직 후 30년이라는 긴 세월의 여생을 예상해야 하는데, 이들 중 많은 이가 ‘준비되지 못한 노후’를 걱정하는 형편이다. 게다가 그 ‘마지막 10년’은 의료비 폭발시기이다. 따라서 오래 산다는 일 자체가 자칫 많은 이들에게 공포이자 질곡이 되기가 십상이다.

세 번째 못자리는 귀촌해서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이다. 70이 가까워지면, 복잡하고 생활비 많이 드는 대도시를 떠나 그윽한 자연의 품에서 보다 단순하고, 마음을 비운 삶을 영위하자는 것이다. 시골은 심신 건강에 좋고, 인생을 관조하고 자아를 찾을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자연이 안겨주는 미학과 정신적 여유, 마음의 평화가 우리의 삶을 더 없이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 또한 시골에서는 주거비용과 생활비가 적게 들고, 작은 농사를 하며 텃밭만 가꾸어도 반자급자족 수준의 삶이 가능하므로 경제적으로도 크게 유리하다. 그런가 하면, 그곳은 인생의 마지막 단계를 영성적으로 준비하기에 더 없이 좋은 터전이기도 하다. 개인적 경험으로는 시골살이가 주는 가장 큰 장점은 스스로가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시골에서는 알량한 체면이나 하찮은 명예에 개의치 않아도 되기 때문에, 내키지 않는 일을 할 필요가 없고, 남이 짜놓은 스케줄에 쫓길 일도 없다. 늙마에 세속의 늪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특히 지식인들, 지적·예술적 작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자연의 품은 엄청난 영감의 원천이자 창조의 샘이다. 자연은 사람을 생각하도록 만드는, 그것도 깊게, 그리고 치열하게 생각하게 만드는 신비의 힘이 있다. 나는 여름에 농사짓고, 겨울에 글 쓰는 비교적 단순한 생활리듬에 따라 사는데, 농한기 몇 달 집중적으로 작업하면서도 1, 2년에 책 한권씩 내고 있다. 내가 서울에서 부대끼고 살았다면 이게 가능했을까. 이는 한여름 땀 흘리며 농사할 때, 문뜩 문뜩 떠올랐던 숱한 영감들이 가을빛에 영글어 만들어 낸 수확물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세 번째 못자리도 앞의 못자리들에 못지않게 다분히 생산적이라고 믿는다.

인생 삼모작을 논의하며, 꼭 덧붙이고 싶은 얘기는 새로운 못자리에 진입하기 전에 적어도 10년 전부터 미리 충분하고 치밀하게 인생의 다음 막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친구들로부터 ‘시골 가서 살자고 자네 처(妻)를 어떻게 설득했어’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이에 대한 내 대답인 즉, “정년 10년 전부터 거의 매일 정년하면 나는 서울에서 더 못살아, 시골에 갈 거야를 주문처럼 되뇌였네. 그랬더니 지성이면 감천이라더니 결국 세뇌가 되던데”다. 무릇 새 못자리를 마음과 정성을 다해 정밀하게 준비해야 한다.

아울러 인생 삼모작의 성공을 위해서는 앞선 못자리에서 터득한 지식과 기술, 그리고 온갖 삶의 체험들, 그 빛과 그림자를 최대한으로 동원해서 새 삶을 개척해야 한다. 내 경우 역시 대학과 정부에서 쌓은 다양한 학습들, 거기서 움텄던 숱한 통찰들, 그리고 회한들이 세 번째 못자리의 기름진 토양이다. 어차피 인생은 평생학습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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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영 전 부총리겸 교육인적자원부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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