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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 완화하는 대안 될 것” vs “극소수만 혜택받아 효과 없어”

중앙선데이 2016.10.09 01:54 500호 18면 지면보기
해외에서도 사례가 드문 ‘복지 실험’이 국내 지방자치단체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생활임금(Living Wage) 제도다. 생활임금제는 가계 소득과 지출, 물가상승률 등을 고려해 실제 생활이 가능한 최소 수준의 임금을 말한다. 거칠게 말하면, 최저임금으로는 사람답게 살 수 없으니 먹고 살만한 소득을 보장하자는 개념이다.



생활임금제는 2013년 서울 노원·성북구가 처음 도입한 후 다른 광역·기초자치단체로 빠르게 전파됐다. 지난해와 올해 서울·경기·광주 등 6곳의 광역단체가 이 제도를 도입했고, 강원·전북 등 4곳은 내년에 시행할 예정이다. 기초단체를 포함하면 70여 곳이 생활임금제를 도입했거나 도입할 예정이다. 해외에서는 미국과 영국이 이 제도를 시행 중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세 나라 모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소득 불평등이 심한 국가로 꼽힌다. 다른 점이 있다면 미국과 영국은 시민단체 주도로 생활임금제가 도입됐고, 한국은 지자체가 적극적이다.


전국으로 확산하는 복지 실험 ‘생활임금(Living Wage) 제도’ 논란

생활임금제를 시행하는 지자체가 많이 늘었지만 국가적으로 보면 아직 ‘정책 파일럿 테스트(Pilot Test)’ 단계다. 생활임금제를 지지하는 진영의 주장대로 “최저임금제를 대신해 소득 불평등을 해소하고 빈곤을 줄일 대안”으로 자리를 잡을지 미지수다. 이를 반대하는 측에서는 “빈곤 감소 효과는 불확실하고 지방 재정만 축낼 것”이라고 주장한다. 생활임금제를 둘러싼 논란을 쟁점별로 알아봤다.



생활임금은 최저임금을 보완하는 개념이다. 당연히 최저임금보다 하한선이 높게 책정된다. 올해 법정 최저임금은 6030원, 내년에는 7.3% 오른 6410원이다. 올해 기준으로 52개 지자체의 평균 생활임금은 7033원이다. 최저임금보다 1000원 정도 많다. 광역단체 중에는 광주시가 7839원으로 가장 높고 경기도가 7030원으로 가장 낮다. 생활임금이 빠르게 확산하는 것은 도입 자체가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이다. 지자체는 중앙정부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조례를 만들면 그만이다. 생활임금 수준도 최저임금처럼 노·사·정 간 진통 없이 결정할 수 있다. 그런데, 내가 사는 시·도나 시·군·구가 생활임금제를 시행하는지 아는 국민은 그리 많지 않다. 이 제도가 시행된 지 3~4년밖에 되지 않은 탓도 있지만 혜택을 받는 대상이 극소수이기 때문이다.



[생활임금 대상자 최대 5만 명에 불과]



국내외의 여러 선행 연구에 따르면, 생활임금 혜택을 받는 근로자는 임금근로자의 하위 10% 중에서도 2~3% 정도다. 인구가 50만 명인 도시라면 1000~1500명 정도가 대상이다. 이를 한국에 적용하면 어떨까.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임금근로자는 1923만 명이다. 이중 소득 하위 192만 명의 2~3%이면 3만8500~5만7600명 정도가 생활임금 적용 대상이다. 최저임금이 국내 임금근로자의 17.4%(337만 명)에 영향을 주는 것을 감안하면 생활임금 대상이 너무 협소해 사회 전체의 빈곤 감소에 영향을 끼치기 어렵다. 실제로 올해 서울시의 생활임금 적용 대상자는 1039명, 광주시는 389명이었다. 서울시 노동정책팀 관계자는 “지자체나 산하 기관에서 직접 고용하는 근로자에 한정되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성재민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제도가 아닌 이상 사각지대는 있을 수밖에 없다”며 “그럼에도 공공부문에서 소득이 가장 낮은 일자리의 임금을 올린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빈곤층이 아닌 근로자가 수혜 받을 가능성도]



생활임금의 수혜자는 지자체가 직접 고용하거나 산하 기관에 속한 근로자에 제한되다 보니 ‘빈빈(貧貧) 갈등’을 부추길 가능성도 있다. 기초단체 중 생활임금이 상대적으로 높은 인천 남동구를 예로 들어보자. 남동구의 내년 생활임금은 8245원이다. 이를 주 40시간(월 209시간)으로 환산하면 월 172만3200원이다. 내년에 최저임금을 받는 근로자(월 135만2230원)와 비교하면 월 37만원, 연 445만원 차이가 난다. 남동구 얘기만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생활임금은 최저임금의 120~130% 수준에서 정해진다. 똑같은 일을 하는데 시청이나 구청에 속해 있다는 이유만으로 소득 차이가 벌어지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저소득 근로자 생길 수밖에 없다. 더욱이 내년에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근로자는 313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한국은행). 이에 대해 최봉 서울연구원 연구위원은 “생활임금제를 받지 못하는 근로자의 상대적 박탈감은 분명히 있을 수 있지만 이 제도가 더 확산하면 적용 범위를 넓힐 수 있고 법정 최저임금을 끌어올리는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생활임금제의 적용 대상을 정교하게 설정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8월 광주시는 생활임금을 받는 근로자 389명을 상대로 만족도 조사를 했다. 설문에 응답한 근로자는 174명이었다. 이 중 생활임금을 받기 전 임금 수준에 대해 ‘매우 만족’은 2명(1.3%), ‘만족’은 12명(7.6%)에 불과했는데 생활임금 수혜 후에는 ‘만족’ 이상이 71명(42.2%)으로 증가했다. 광주시 사회통합추진단 송영희 사무관은 “생활임금에 대한 만족도가 매우 높다”며 “단계별로 적용 대상자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조사에서 눈여겨볼 항목이 하나 있다. 설문조사에 응한 174명의 평균 가족 수는 2.9명이었다. 이 중 본인 외에 소득이 있는 가족 수는 1인이 51.5%, 2인이 15%, 3인이 6.6%였다. 또한 자가 소유는 100명(65.8%), 전세는 28명(18.4%)이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4년 기준 광주의 자가점유율은 55.1%다. 다시 말해 광주시의 생활임금 대상자 중 일부가 실제로는 빈곤층에 속해 있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 성재민 연구위원은 “빈곤층이 아닌 사람이 생활임금을 받는 것을 하나하나 문제 삼으면 어떤 복지 정책도 펼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들쭉날쭉한 지자체 생활임금]



생활임금제가 법률이 아닌 지방 조례로 시행되다 보니 지역별로 들쭉날쭉한 점도 문제다. 한국비정규직노동센터가 올 초 32개 지자체를 상대로 생활임금 실태를 조사했더니, 서울시 자치구 간에도 생활임금 대상자 수나 예산이 10배 가까이 차이가 났다. 이에 대해 비정규직노동센터 관계자는 “제도 시행에 임의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단체장의 성향이나 재정 여건에 따라 생활임금제가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단체장이 바뀌면 생활임금제도 따라서 변경될 수 있다는 얘기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생활임금제를 도입한 53개 지자체 단체장의 소속 정당을 보면, 새누리당이 6곳, 야권이 47곳이었다.



생활임금 산정 방식도 제각각이다. 서울시는 내년 생활임금 시급을 올해보다 14.7%(8197원)나 올리기로 했다. 경기도는 12.5%(7910원) 인상했다. 무조건 최저임금의 130% 수준에 맞추는 지역도 있다. 익명을 원한 지자체 관계자는 “생활임금 도입에 대한 지역 사회의 논의 없이 단체장의 공약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도입하는 곳이 적지 않고, 공통의 원칙도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생활임금제를 제대로 이행하는지 검증하는 곳도 드물다. 본지가 6개 광역단체에 문의한 결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을 때 제재를 하는 조례가 있는 지자체는 단 한 곳도 없었다.



[생활임금은 불평등 완화의 한 수단일뿐]



중앙·지방정부가 저소득 근로자의 임금에 개입할 수 있는 수단이 최저임금을 제외하면 사실상 없는 상황에서 생활임금은 그나마 보완재가 될 수 있다. 또한 생활임금이 전국으로 확산하고 제대로 자리를 잡으면 최저임금을 끌어올리는 강력한 촉매제가 될 가능성도 크다. 이에 대해서는 보수·진보 진영의 견해차가 별로 없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이론에 불과하다. 실제로 생활임금이 빈곤과 소득·고용에 어떤 영향을 줄지, 얼마면 충분한지, 민간 부분으로 확산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지, 지방 재정에 영향은 없는지 등에 대한 연구와 검증 작업은 부족하다. 지금처럼 생활임금 인상 폭은 크게 하고 적용 범위는 좁은 방식보다는 인상 폭은 작더라도 대상을 넓힐 필요가 있다는 지적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정치권도 생활임금이 정착하고 확산하는 데 걸림돌로 지적되는 지방재정법이나 지방계약법 등을 개정하는 논의에 나서야 한다. 무엇보다 생활임금은 최저임금을 보완하는 작은 수단, 불평등 해소를 위한 첫걸음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성재민 연구위원은 “생활임금은 빈곤을 해결하는 정답이 아닌 여러 수단 중 하나일 뿐”이라며 “소득 불평들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최저임금을 높이고 근로장려세제(EITC)를 대폭 확대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보니 생활임금이 보완재로 주목을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봉 연구위원은 “제도가 도입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앞으로 실행을 하면서 개선할 필요가 있다”며 “민간 부분으로 확산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생활임금에 대한 공론화가 확산되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태윤 기자 pin2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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