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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자금 투자 … 성공하면 매출의 3% 상환, 실패도 OK

중앙선데이 2016.10.09 01:21 500호 6면 지면보기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의 창업축제 ‘DLD 텔아비브 2016’에 꾸려진 인텔 전시관에서 관람객이 ‘스마트 장난감’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인공지능 컴퓨터가 조종하는 탱크와 인간이 맞붙는 게임이다. 이 행사에는 구글·인텔·삼성전자 등 60여 개 글로벌 정보기술(IT)기업이 참여했다. 텔아비브=이소아 기자

론 훌다이 텔아비브 시장(왼쪽)은 개회사에서 “누구든 이스라엘에서 창업하면 세금을 감면하겠다”며 분위기를 돋웠다.



지난달 27일(현지시간) ‘디지털·라이프&디자인(DLD) 텔아비브 페스티벌’이 열린 이스라엘 텔아비브 ‘하타차나 컴파운드’는 선글라스 없이는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햇살이 눈부셨다. 이스라엘의 디지털 혁신과 창업 활성화를 위해 열리는 이 행사에서 스타트업들은 저마다의 잠재력을 뽐내느라 바쁘다.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은 최첨단 기술을 전시하는 동시에 최신 아이디어 사냥에 나선다. 벤처캐피털과 에인절 투자자들은 돈이 될 만한 투자처를 물색한다. 정·재계 인사들은 기업들의 애로사항을 듣고 이를 제도에 반영하려 애쓴다.


대학생 90%가 창업하는 이스라엘

말 그대로 창업 생태계(ecosystem)를 이루는 핵심 주체들이 한자리에 모여 긴밀히 교류하는 하이테크 허브인 셈이다. 론 훌다이 텔아비브 시장은 “이 도시를 전 세계의 창의적인 사람들이 와서 살고 싶은 곳으로 만드는 게 꿈”이라며 행사 시작을 알렸다. 수많은 참가자가 자유롭게 기업 전시관과 스타트업 부스를 넘나들며 증강현실(AR)·가상현실(VR)·사물인터넷(IoT)·드론 등 다양한 첨단 기술을 체험하고 질문하고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삼성전자도 ‘기어 VR’ 등을 활용한 AR 기술을 선보여 큰 인기를 끌었다.



자원과 인프라 모두 빈약한 이스라엘은 국제정치적인 입지도 약하다. 국제사회는 예루살렘을 여전히 수도로 인정하지 않는다. CNN ‘세계의 날씨’ 코너에 보도되는 이스라엘 도시는 텔아비브다. 이런 환경 속에서 이스라엘은 아이디어와 정보를 바탕으로 첨단 기술산업을 키우는 데 국가의 모든 역량과 정책을 모았다. 이스라엘 기업가이자 투자가인 요시 바르디 DLD텔아비브 회장은 “두 사람이 사과 1개씩을 가지고 있다 교환하면 여전히 사과 1개를 갖지만 아이디어 1개씩을 교환하면 2개의 아이디어를 갖게 된다”는 조지 버나드 쇼의 말을 인용했다. 세 아이의 엄마 에리카 딘(38)은 “이스라엘은 아이디어만 있으면 뭐든지 지원된다”며 “인문학을 하면 창업이나 취직이 어렵기 때문에 IT 등 테크놀로지 전공자가 많다”고 귀띔했다.



바르디 회장은 “이스라엘은 좁아서 누가 어떤 기술을 가졌고 어떤 구상을 하는지 다 안다”며 “한 사람이 기회를 잡으려 하면 모두가 나서 도와주는 문화”라고 강조했다. 실제 이스라엘에선 잘나가는 기업인이나 고위 정치인이 자신의 인맥을 활용해 창업자들의 손을 잡고 세계를 다니며 투자를 중개해 주는 일이 흔하다. 10월 현재 미국 나스닥에 상장된 이스라엘 기업은 81개로 미국(2722개)을 제외하곤 중국(90개) 다음으로 많다.



최근엔 특히 여성 창업가 육성에 전 사회가 동참하고 있다. DLD텔아비브의 사전 행사 격인 ‘스타트 텔아비브(창업 경진대회)’도 올해는 여성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세계 31개국에서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여성 창업가들이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겨뤘는데 한국에서 1위로 선정된 심소영 ‘두닷두(Do.Do)’ 대표도 참가했다. ‘뭘 하든 이어 준다’는 뜻의 두닷두는 스마트워치로 룸 관리, 고객 요구 응대, 직원 간 통신 등을 연동시켜 신속한 서비스와 비용 절감을 가능하게 한 호텔 관리 솔루션이다. 심 대표는 “DLD텔아비브 같은 행사에서 1명만 우리 기술을 기억해도 수십·수백 명에게 전파되는 네트워크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이테크 창업강국 이스라엘은 3개의 톱니바퀴가 맞물리며 돌아간다. 첫째, 군대다. 고등학생들은 졸업 뒤 남자는 3년, 여자는 2년인 의무 복무기간 동안 창업의 핵심 자질인 리더십과 팀워크, 위기상황 돌파 능력 등을 익힌다. 특히 최상위권 고교 졸업생들은 영재 군사교육 과정인 ‘탈피오트(Talpiot·최고 중의 최고)’에 뽑힌다. 이들은 명문 히브리대에서 3년간 수학과 물리학·컴퓨터공학을 전공한다. 졸업 뒤 6년간 첨단 기술 분야 군 복무를 마친 뒤 대부분 하이테크 벤처기업가로 변신한다. 매출 1조7000억원에 이르는 세계적인 사이버 보안업체 체크포인트를 세운 길 슈웨드 회장은 “군 복무기간 맡았던 임무에서 보안 아이디어를 얻어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말했다.



둘째, 창업 에코 시스템이다. 이스라엘 정부는 28개 부 중 13개 부에 수석과학관실(OCS·Office of Chief Scientist)이 설치돼 있다. OCS는 가장 민감한 돈 문제를 해결해 준다. 우선 ‘트누파’란 프로그램을 통해 창업 전 필요한 자금의 85%를 지원한다. 창업에 성공하면 매출액의 3%씩 상환해야 하지만 실패하면 갚지 않아도 된다. 나머지 자금 15%는 창업 초기 각종 지원을 담당하는 인큐베이터가 맡는다. 벤처캐피털 주도의 컨소시엄으로 이뤄진 인큐베이터들은 스타트업의 지분 30~50%를 받는 조건으로 투자금을 제공한다. 이때문에 이스라엘 대학생의 80~90%가 비용 부담없이 창업에 나서고 있다.



1993년 민관 합작으로 설립한 요즈마펀드는 이스라엘이 자랑하는 창업 지원정책으로 자리 잡았다. 정부와 민간이 스타트업의 리스크를 공동으로 부담한다. 아비 하손 산업자원노동부 수석과학관은 “투자할 섹터나 유망 산업은 민간에서 훨씬 잘 안다. 모든 지원은 바텀업(bottom-up)이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대신 정부는 규제를 완화하고, 원활한 자본 조달 환경을 만들고, 인재를 육성하고, 세금을 깎아 주고, 비자를 완화해 주는 등 인프라에 주력한다. 정부 지원 스타트업들이 족족 실패하면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 하손 수석과학관은 “실패의 정의가 뭐냐”고 되물었다. 그는 “하나의 스타트업이 사업을 접고 거기서 교훈을 얻어 4개의 스타트업을 만든다면 그건 실패가 아니다”며 “긍정적인 자세로 더 많은 리스크를 짊어져야 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고 답했다.



이런 제도와 분위기가 낳은 셋째 톱니바퀴가 ‘후츠파(chutzpa)’ 정신이다. ‘두려움을 모르는 도전정신’ ‘할 말은 하는 문화’ ‘실패해도 괜찮아(OK to Fail)’ 등을 모두 합쳐 놓은 의미다. 이스라엘 일각에선 ‘후츠파가 지나쳐 기술도 없이 자신감 하나로 창업에 달려드는 젊은이가 너무 많아 문제’라는 우려까지 나온다. 그렇지만 무에서 유를 창출해야 하는 창업국가에 없어선 안 될 자질임은 틀림없다.



이 같은 도전정신을 상징하는 인물이 지난달 28일 별세한 시몬 페레스(Shimon Peres) 전 이스라엘 대통령이다. 이스라엘 유력 일간지 하아레츠(Haaretz)는 ‘우리는 고아가 된 느낌이다(Israel will feel orphaned without him)’는 제목으로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의무감이나 예의상 표현하는 슬픔이 아니었다. 그의 사망 소식이 대대적으로 알려진 다음 날, 예루살렘 국회에 놓인 그의 초상화와 운구를 보기 위해 수많은 시민들이 이스라엘 전역에서 꽃을 들고 몰려왔다. 예루살렘에서 만난 리온 소퍼(32·여)는 “이곳에 관광을 오셨다면 미안하지만 오늘은 우리와 함께 슬퍼해 주세요. 나는 지금 아버지를 잃었어요”라고 말했다.



1명의 원로 정치인이 이토록 진심 어린 사랑을 받는 이유는 평생을 국가에 봉사했기 때문이다. 퇴임 후 장관·총리·대통령을 지내며 쌓은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 투자자와 벤처기업을 이어 주고, 손자뻘 되는 젊은이들의 창업을 뒷바라지해 90세가 넘는 나이에도 ‘청년 대통령’이라고 불렸다. 이스라엘 외교부 관계자는 “우리가 끝까지 지켜내야 할 태도는 과감하게 도전하는 정신이라고 역설했던 페레스 전 대통령의 유지(遺志)대로 젊은 창업국가를 이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예루살렘·텔아비브=이소아 기자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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