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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사 없이 착수한 하명수사 한계 vs 열악한 수사환경 탓

중앙선데이 2016.10.09 01:15 500호 10면 지면보기

검찰은 롯데그룹 비자금 의혹 수사를 위해 두 차례에 걸쳐 총 32곳을 압수수색했다. 지난 6월 14일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이 서울 서초구 롯데건설 본사에서 압수품이 담긴 상자들을 옮기고 있다. [뉴시스]



지난 6월 10일 오전 검찰 수사관 200여 명이 서울 소공동에 있는 롯데 정책본부·호텔·백화점과 잠실에 있는 롯데시네마 등 주요 롯데 계열사에 들이닥쳤다. 신격호(95) 총괄회장과 신동빈(61) 회장의 집·집무실을 포함해 수색장소는 모두 17곳이었다. 압수물은 트럭 7대 분이었다. 롯데그룹은 모든 행사를 취소했다. 수뇌부가 급히 모여 대책을 논의했다. 지난해 가을부터 검찰 안팎에서 “곧 시작한다”는 소문이 무성했던 롯데 수사의 시작이었다. 검찰의 최종 목표는 제2롯데월드 인허가 비리라는 관측이 나왔고, 정·관계 인사들을 겨냥한 비자금 수사로 나라가 들썩일 것이란 전망도 무성했다.


포스코 수사 재판된 롯데그룹 수사

그로부터 3개월21일이 지난 지난달 29일 롯데그룹에 안도의 미소가 퍼졌다. 이날 새벽에 서울중앙지법은 신동빈 회장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했다. 검찰은 영장을 청구하면서 ‘횡령성 배임’이라는 용어로 신 회장의 죄를 강조했지만 법원은 “법리상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이유로 구속 필요성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신 회장은 “그룹의 미흡한 부분을 책임지고 고치겠다”는 말을 남기고 유유히 서초동을 떠났다. 검찰은 보도자료까지 내며 “피의자의 변명에만 기초한 기각”이라고 반발했지만 구속영장을 다시 청구하지 못하고 있다.



경보는 요란하게 울렸지만 일찌감치 열대성 저기압으로 변해 버린 태풍과 같은 수사가 됐다. 검찰의 성적표는 초라하다. 총수 일가 중 구속 기소된 사람은 신영자(73) 롯데장학재단 이사장뿐이다. 롯데 면세점 입점 등과 관련해 여러 업체에서 35억원을 받았다는 신 이사장의 주요 혐의는 방위사업 수사부가 군납 비리를 수사하다 찾은 개인 비리다.



검찰은 신 총괄회장과 사실혼 관계인 서미경(57)씨를 지난달 불구속 기소한 데 이어 신 총괄회장과 장남인 신동주(62)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도 곧 불구속 기소할 계획이다.



검찰은 신 전 부회장과 서씨에겐 별다른 업무도 하지 않고 롯데 계열사의 등기이사란 이유로 각각 400억원대와 100억원대 급여를 챙긴 것에 횡령죄를 적용했고 이들에게 급여를 지급한 것으로 보이는 신 회장을 횡령의 공범으로 보고 있다. 신 회장의 다른 혐의는 서씨 등이 운영하는 롯데시네마 매점에 일감을 몰아주고 롯데 피에스넷에 유상증자를 하면서 다른 계열사에 1250억원대의 손해를 끼쳤다는 것(업무상 배임)이다.



그러나 신 전 부회장은 부당급여 수령의 고의성을 부인하고 있고, 일본에 머물고 있는 서씨는 소환에 불응했다. 신 회장의 계열사 부당지원 혐의는 경영상 판단이 개입된 행위에 대한 배임죄 인정에 조심스러운 최근 판결 경향을 고려하면 입증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검찰이 뒤늦게 찾아낸 롯데건설의 수상한 돈의 용처는 오리무중이다. 그나마 입증이 수월해 보이는 건 차명으로 보유하고 있던 일본 롯데홀딩스 지분 6.2%를 서씨와 신 이사장 등에게 증여하면서 세금을 포탈했다는 신 총괄회장의 혐의 정도다.



수사의 예봉은 지난 7월 19일 강현구(56) 롯데홈쇼핑 사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돼 롯데홈쇼핑 재인가 로비 의혹에 대한 규명이 난항에 빠지면서 꺾였다. 2006~2007년 롯데케미칼이 소송을 통해 253억여원의 세금을 돌려받은 것을 사기로 보고 지난 8월 기준(70) 전 롯데물산 사장을 구속했지만 현직 허수영(65) 사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사건을 신 회장과 연결 짓지 못했다. 8월 26일 이인원(69) 부회장의 자살 이후 수사는 사실상 동력을 잃었다.



검찰 안팎에선 “8개월간 계속됐던 포스코 수사와 닮은 먼지떨이식 수사”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고검장 출신 변호사는 “충분한 내사도 없이 하명에 따라 수사 착수와 방향을 정하다 보니 별다른 성과 없이 수사가 장기화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부장검사는 “칼을 깊이 넣었는데 안에 아무것도 없으면 그대로 빼야 상대가 죽지 않는데 ‘당해 봐라’ 하는 식으로 칼을 비틀며 빼니까 기업이 치명상을 입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명→내사 부족→먼지떨이’라는 흐름은 비자금의 용처 확인이나 정·관계 로비 의혹 규명에 필요한 결정적 증거 획득 실패로 이어졌다. 수사팀 관계자는 “현금으로 관리한 비자금의 용처는 계좌 추적에서 나온 게 없고 정·관계 로비나 제2롯데월드 인허가 문제는 구체적 제보나 팩트 없이 의혹에서 시작한 건데 수사를 더 치고 나갈 동력을 얻지 못했다”고 말했다.



수사 실패 원인을 박근혜 정부의 검찰 인사나 2013년 4월 중수부 폐지 이후 특수수사 능력의 질적 저하에서 찾는 이들도 있다. 서울의 한 부장검사는 “특정인과 가까운 이너서클이 실력과 무관하게 특수라인을 좌지우지하니 수사력이 떨어지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다른 고검장 출신 변호사는 “중수부 폐지 이후 생긴 대검 반부패부와 반부패특수단이 컨트롤타워 기능을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검찰도 할 말은 있다. 갈수록 물증 확보가 어려워지지만 ‘플리바게닝(유죄협상제)’ 등 진술 증거 확보를 도울 제도는 도입될 기미가 없는 등 수사 환경이 악화되고 있다는 불만이다. 지난해 7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압수수색 영장에 기재된 혐의와 무관하게 수집된 증거는 모두 불법 증거”라는 판결을 내렸다. 일단 배임·횡령 혐의로 발부받은 영장으로 기업을 압수수색해 얻은 자료에서 다른 혐의의 단서를 찾아가는 수사 관행에 제동을 건 것이었다. 롯데수사팀 관계자는 “10년 전만 해도 일단 압수한 자료는 다 열어 보고 출력했지만 지금은 휴대전화 200대를 압수하면 200명을 불러 참여시켜야 한다. 압수물의 70%도 검토하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임장혁·현일훈 기자im.janghy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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