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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행’ DVD를 기다리는 까닭

중앙선데이 2016.10.09 00:24 500호 29면 지면보기

나와 손을 맞잡고 선 배우 송지효. 이마 때문인지 괜히 더 친근해 보인다.



지난 수십 년간 나는 눈코뜰 새 없이 살았다. 젊을 때는 연예계 일에 최선을 다했고, 결혼 후에는 가정을 위해 매 1분 1초를 바쳤다. 라이언팍슨 파운데이션 주석을 맡은 후에는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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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을 얻게 된 후 허약해진 몸은 내게 많은 것을 알려줬다. 끊임없이 병원을 들락날락거리는 시간 외에는 어쩔 수 없이 집에서 휴양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이 또한 하늘의 뜻이리라. 반평생을 스스로 혹사하며 살아왔으니 이제 잰 발걸음을 멈추고 앞으로 남은 날들을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계획을 세울 필요도 있을테니 말이다. 그러나 갑자기 한가해지니 이 넘쳐나는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가 큰 과제였다.



결국 나는 평소라면 하지 않을 법한 일들을 하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인터넷으로 예전에 출연했던 영화를 찾아보는 일 같은 것 말이다. 사실 나는 자신에게 엄격한 편이어서 출연작을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분명 연기에 만족하지 못할 뿐더러 하루종일 괴로워할 게 뻔하니 아예 보지 않는 편을 택하는 것이다. 하지만 세월이 이만큼 흘렀으니 생각이 바뀌었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이번 기회에 한 번 도전해보기로 했다.



지난주에 큰맘 먹고 영화 ‘비지추(悲之秋·1980)’를 보았다. 당시 촬영 현장이었던 대만 징통(菁桐)역과 탄광촌에서 고생하던 모습이 눈에 선했다. 고즈넉한 그 시절로 다시 한 번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잠시, 나의 못된 버릇이 다시 튀어나왔다. 어떻게 아직도 보통 관객의 시각으로 영화를 볼 수 없는 건지. 곧 예순이 다 되어가는 데도 아직 포기하지 못한 걸까.



시계를 보니 어느새 자정이었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조금 늦은 시간이긴 하지만 그는 아직 잠들지 않았을 것이다. 이 친구는 밤이 되면 더욱 쌩쌩해지는 방송국 PD니까. 전화를 받은 친구는 깜짝 놀라 물었다. 아픈 사람이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 무엇보다 몸조심해야 한다 등 설교를 늘어놓았다. 그는 예전과 지금은 제작환경이 많이 달라졌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배우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심을 다해 맡은 배역을 연기하고 그 촬영 과정 자체를 즐기는 것이라고 말해줬다. 만약 내가 그걸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한결 편했을텐데. 그렇다. 영화는 여러 사람이 팀을 이뤄 함께 만들어가는 작품이다. 제아무리 출중한 연기를 선보이는 배우라 해도 혼자 거들먹거려서는 결코 작품이 잘 나올 수 없는 법이다.



수다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최근 가장 핫한 영화는 ‘부산행’이다. 많은 사람들이 ‘부산행’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나 또한 영화를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병중이라 사람들이 많은 극장에 갈 수가 없어 DVD 출시만을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는 나의 갈증을 해소해주기 위해 전문가답게 주요 장면을 상세하게 묘사하고 관람 포인트를 짚어줬다. 수화기 너머 “할리우드 중에서도 A급 영화와 맞먹는 수준”이라는 극찬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정말이지 오늘날 한국영화가 올리고 있는 성과는 많은 사람들에게 자부심을 느끼게 한다. 아시아 영화인의 한 사람으로서 괜시리 감동하게 된달까.



친구와 나눈 대화는 마음의 짐을 덜어줬다. 새벽 2시까지 떠드는 바람에 수면에 영향을 끼칠까 두렵긴 했지만, 오랫동안 품어온 번민이 해결됐으니 안심하고 잠들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제 연기, 그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최대한 마음을 열고 동료들과 후배들의 노력이 깃든 영화를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그들이 영화에 대한 나의 꿈과 포부를 이어나가주길 바라면서.



며칠 전 우리 회사에서 동남아 진출을 돕기로 한 슈즈 브랜드 슈펜의 쿠알라룸프르 1호점 개점 행사가 있었다. 한국의 인기 예능 프로그램인 ‘런닝맨’의 히로인 송지효씨를 게스트로 초대했다. 일정이 빡빡해 긴 대화를 나누진 못했지만 노래 ‘원 서머 나이트’ 얘기가 나오니 그녀의 얼굴에 반가워하는 기색이 스쳤다. 역시 이 노래 한 곡이 라이언 팍슨 주석 명함보다 더 널리 통하는 듯 하다. 그녀가 환하게 웃는 얼굴로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봄바람을 불러일으키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예전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나도 이런 때가 있었던가. 가만보니 우리 두 사람은 이마가 제법 닮았다.(이의가 있어도 참아주길.) 마침 그녀는 드라마 촬영 중이라고 했다. TV를 통해 그녀의 연기를 볼 수 있다니 정말 잘됐다. 그때는 절대로 이마가 닮았다는 이유로 그 역할에 빙의하지 않고 온전히 시청자의 입장에서 즐기리라.



 



천추샤(陳秋霞·진추하)라이언팍슨?파운데이션 주석onesummernight7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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