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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다니엘의 문화탐구생활] 독일인의 몸에는 맥주가 흐른다

중앙일보 2016.10.09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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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의 몸에는 피 대신 맥주가 흐르고 있다’는 말이 있다. 내가 보기에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 그만큼 맥주는 독일인의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특히 매년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다.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州)에 위치한 뮌헨에서 ‘옥토버 페스트’가 열리는 것. 이 맥주 축제는 해마다 9월의 셋째 토요일에 시작돼 10월의 첫째 일요일에 끝난다. 이 시기에는 세계 각국의 수많은 관광객이 독일로 모여든다. 그렇다면 왜 독일 맥주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걸까? 그리고 독일 사람들은 어떤 이유로 맥주를 즐겨 마시기 시작했을까?

‘독일인이 맥주를 발명하고 처음으로 마셨다’고 주장하고 싶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맥주와 비슷한 음료는 고대 문명의 발상지인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이미 수천 년 전부터 존재했다. 이집트 사람들은 빵가루와 물을 섞어 발효해 마셨고, 영국 켈트족 부유층은 오늘날의 밀맥주와 흡사한 음료에 꿀을 넣어 마셨다. 독일인은 중세 시대부터 맥주를 마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에는 심지어 아이들도 맥주를 마셨다고 한다.

알코올 함유량이 지금처럼 높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맥아즙을 끓였으므로 박테리아가 거의 없어, 질 나쁜 일반 식수보다 훨씬 더 안전한 수분 섭취가 가능했다. 그뿐 아니라 맥주는 ‘유용한 빵’이라고도 불렸다. 맥주를 마시면 포만감이 생겨 배가 부르다는 이유에서였다. 보통의 독일 농가에서도 맥주를 만들었지만, 맥주 판매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곳은 다름 아닌 수도원이었다. 맥주 판매 수익금은 주로 수도원 운영에 사용됐다. 한편 수도사들은 겨울철 추위를 버티기 위해 맥주를 마시며 체온을 높이기도 했다. 이러한 까닭에 현재 여러 독일 맥주 브랜드 로고에는 수도원 혹은 수도사가 그려져 있다.

독일 맥주는 4000종이 넘는다. 지역마다 고유의 맥주도 있다. 그중 제일 맛있고 유명한 맥주는 밀맥주가 아닐까 싶다. 특히 밀맥주는 바이에른주에서 생산된 것이 유명하다. 맥주의 도시답게 매년 이곳에서는 옥토버 페스트가 열리고, 제일 맛있는 맥주도 구입할 수 있다. 왜 바이에른 지역의 맥주 맛이 훌륭햐나고?

이는 ‘맥주순수령(Reinheitsgebot)’ 덕분이다. 정확히 500년 전인 1516년에 귀족 빌헬름 4세가 만든 법이다. 이 법에는 맥주를 어떤 가격으로 팔아야 하는지 제시돼 있으며, 무엇보다 ‘맥주에 홉·보리·물 외에는 아무것도 들어가면 안 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독일에서는 아직까지도 대부분 500년 전의 맥주순수령에 따라 맥주를 만들고 있어 변함없는 맛과 품질을 유지 중이다.

다시 옥토버 페스트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옥토버 페스트는 1810년 바이에른주 귀족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만들어진 축제다. 현재와 달리 처음에는 경마 페스티벌이었다. 이 축제가 대중적인 인기를 끈 이유는 일반 백성의 참석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당시 경마 행사를 관람하러 온 백성들의 숫자는 무려 4만 명에 달했다.

누구든 마음껏 맥주와 와인을 마실 수 있는 자리였던 것이다. 이후 옥토버 페스트가 몇 차례 이어지면서 경마를 대신해 다 함께 즐길 만한 오락 시설이 늘어났다. 그때부터 더욱 많은 사람들이 이 축제에 모여들었다. 그러나 옥토버 페스트는 많은 위기를 겪기도 했다. 1980년 축제 도중 잔디밭에서 터진 폭탄으로 인해 열세 명이 숨지고 수많은 관람객이 다쳤다. 테러의 목적과 범인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으며, 2004년부터 다시 수사 중이다. 만취한 사람들 사이에서 싸움이 일어나기도 하고, 공공장소에서 문란한 행동을 벌이는 이들도 늘었다.

이러한 문제들이 계속되자, 가족 축제로 알려진 옥토버 페스트는 ‘대중의 만취’라 불리기도 했다. 이후 뮌헨에서는 옥토버 페스트의 분위기 개선과 이미지 변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일례로 2005년 ‘조용한 잔디(Ruhige Wiesen)’란 정책을 도입해 오후 6시까지는 전통 음악만 연주하도록 했다. 음악은 85dB(데시벨)을 넘으면 안 된다. 이런 정책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옥토버 페스트를 마음 편히 즐길 수 있다. 옥토버 페스트에는 해마다 약 600만 명이 방문하고 있으며, 매출은 10억 유로에 달한다.

독일 맥주의 역사, 맥주 순수령, 옥토버 페스트를 보면 독일인의 삶에 맥주가 얼마나 중요한 의미인지 알 수 있다. 독일인은 맥주를 한 번에 많이 마시는 것보다 한 잔씩 자주 마시는 것을 선호한다. 특히 시원한 밀맥주를 좋아하는데, 특별한 이벤트가 있을 때는 여섯 병도 넘게 마시곤 한다. 혹시 독일 맥주를 즐기고 싶다면 뮌헨으로 떠나 보시라. 그곳에서 독일인 친구를 사귀고 맥주를 함께 마신다면, 독일인에게 맥주가 어떤 의미인지 생생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다니엘 린데만  독일 사람? 한국 사람? 베를린보다 서울의 통인시장에 더 많이 가 본, 이제는 한국의 다니엘! 1985년생 소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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