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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에도 자라는 나무

중앙선데이 2016.10.08 23:33 500호 1면 지면보기
일요일에도 자라는 나무

김 광 규



후박나무 밑으로 굴러온 감 한 개 저절로 땅 속에 묻혀 싹트고 아무도 모르게 조금씩 조금씩 커지면서 담 벽보다 높게 자랐고 올해는 주황빛 열매 주렁주렁 매달렸다온종일 살펴보아도 어느 틈에줄기 굵어지고 잎 돋아나고 꽃 피고 열매 맺는 지 자라나는 짧은 순간들하나도 보이지 않았다추녀 끝보다 웃자란 후박나무가 아래서 올라오는 어린 감나무에게 슬며시 하늘 한 모퉁이 비켜 주는 것도 눈치 채지 못했다가을비 추적추적 내리는 날 쟁반보다 넓은 후박 나뭇잎에 접시보다 좁은 감나무 잎에떨어져 내리는 빗방울들 서로 어울려 빗소리 화음 내면서 귓가에 울려 올 때까지나무들의 아름다운 목금 소리 미처 듣지 못했다 비록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듯해도어느새 10년 동안 사계절 밤낮 가리지 않고주말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무성하게 자라나일요일 아침마다 창밖에서 수런거리며잠든 마음 흔들어 일깨워주는 우람한 갈잎나무 풍성하고 믿음직한 그 모습언제나 변함없이 보고 싶구나


지령 500호 축시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로 유명한?산문시의 대가 김광규 시인이?중앙SUNDAY 발행 500호를 기념해?기고해 온 축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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